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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May 02. 2024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14

에필로그

내 나이 스물둘.

그 당시 내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꿈꿨던 삶과 지금까지 지나온 나의 삶은 전혀 다른 길이다.


첫 직장에서의 사표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의 하나의 갈림길을 제공는지도 모른다. 사표를 내면서 내가 가고 싶은 꿈을 찾아 나서겠다고 선택했으나, 그 길은 아니라는 듯 교통사고로 꿈은 그저 꿈이 되었고. 선택하지 않은 길,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었음에도 내 삶의 전환점은 어디쯤 이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내 그 자리다.


지금에 와 나의 삶을 회고하며 글을 쓰면서 돌아보니, 가보지 못한 길이 생겨났고, 커다란 돌부리와 갈라진 구덩이가 군데군데 있어  평탄하지 않은 굴곡 많은 을 지나온 것 같다.


이것이 진정 신이 계심으로 인한 신의 뜻이거나 시험에 들게 한 것이라면, 나의 의지로 어려운 길을 찾거나 굴곡 많은 길을 찾을 리 없고, 어쩌면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부족하여 직접 경험하면서야 배우는 작은 그릇이어서 그런 아픔들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상상했던 삶은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탄탄한 길을 그대로 나아가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배를 채우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구매해 채워 넣는 삶으로 정해진 길을 따라가며 종착지까지 도착하는 것이었지만, 살다 보니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미 닦아진 길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 50이 되어서야 돌아보며 느끼고 있다.


남편이 투석을 하고, 큰 아이가 모야모야병으로 뇌수술을 하고, 내가 모야모야병 환자가 되기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 바닥을 딛고 일어서고, 불어온 폭풍에 휘청거리다 다시 발 닿는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지나온 날들은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정신없는 하루의 안녕조차도 감사할 뿐이었다. 막막하다 여겼던 그 시간들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지금은 또 어느새 그 안에서 평안을 찾고, 형형색색으로 물들 아름다운 봄의 빛을 마음껏 즐기며 여름의 태양을 조금씩 맛보는 중이다. 주변을 둘러볼 작은 여유도 생겨난 시간, 가슴의 한가운데에 기도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끌어안고 매일을 지난다.


시련이라 여기고 힘겨웠다 여기면서도 지나간 그 시간 속에 대체 무엇이 있었는지, 과연 힘겨운 역경과 고통만이 있었던 것인지 돌아보고 싶었고 당시를 돌이키며 글을 쓰다 보니, 그 안에는 고통만이 따르지 않았음을. 웃음도 있고 행복도 있고 사랑도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힘겨움이 있었기에 웃음과 행복과 기쁨과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오며 렇게 비축된 힘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을 이끌어주고 있음을 알아간다.


나만이 희생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 날들도 있었다. 그 희생이라는 것, 누가 희생을 강요한 것이 아님에도 세상을 차갑게 바라보던 그날들엔 '왜 나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짊어졌었고. 그 짐은 나만이 아닌 그와 아이들 때론 주변분들도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어쩌면 분담하여 짊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날의 삶을 돌아본다는 것. 이 또한 그만큼의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하며 그 결과로 평안한 지금의 시간을 지나고 있음에 감사하다.


처음엔 사 남매의 엄마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무겁다. 나는 힘들다. 나는 여유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쫓기듯 살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아이들이 내게 주는 행복과 기쁨과 사랑은 몇 배로 돌아옴을 느꼈고, 한 아이마다 품고 있는 행복은 다 다르며 기쁨 또한 그러했다. 아이들을 보며 환히 웃으며 살 수 있었고 친구들보다 어린 자녀를 키우기에 어린 자녀의 엄마로 더 젊게 살아갈 수 있음을 안다. 물론 젊은 엄마로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달리 흰머리카락과 관절의 아픔이 실제 내 나이를 몸소 느끼게 해주고 있긴 하다. 마음과 함께 몸도 더디 나이 들어가면 참 좋으련만.


나의 형제는 오자매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결혼해 살아가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며, 각 집안에 잘잘한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많이 말씀하셨던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라는 속담을 가져 쓰신 것을 들으며, "엄마, 그래도 우리가 여럿이어서 웃음도, 기쁨도 더 많으셨죠? 저는 그렇던데~?" 했더니, 어머니는 "그럼~ 그렇다마다" 하시며 웃으셨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줘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어머니가 지나가신 길을 나도 이렇게 지나간다. 어머니는 딸 다섯. 나는 딸 셋, 아들 하나.


브런치 작가로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다. 브런치에 올리는 첫 글로 어떤 글을 써 볼까?

세상 따뜻한 글.

오자매의 추억시간.

취미로 가끔씩 써보는 창작시.

책과 함께하는 사유.

일기.


여러 생각들이 오가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펼쳐놓고 싶었다.


처음엔 내가 가진 상황, 어찌 보면 암울하게만 보일지 모를 이 상황이 '누군가에겐 힘을 내며 살아갈 수 있는 밑돌이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열어 보이게 됐다.


누구에게나 좌절과 시련은 찾아오기에, 그런 분들께 자신의 상황이 힘들다고 좌절하거나 지쳐하며 끝으로 몰리는 것 같다고 쓰러지지 마시라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힘내시라

내면의 힘을 보시라

주변의 빛을 보시라

신은 회복할 힘도 반드시 주시니 기다림의 끝에 일어서시라


아픔이라는 것. 떨어져 있는 제3자의 아픔보다 내 손 밑의 가시가,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더 아프다. 많은 고비를 겪었다고 얘기하는 나의 사연은 사연일 뿐 어쩌면 결코 밑돌이 될 만큼의 가치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이 글을 썼던 처음의 마음가짐은 그러했다. 브런치북 소개에 남겼듯이.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이 글들은 나를 위한 위로의 글이 되었으며, 나를 위한 힘을 키우는 글이 된 것 같다.


지나왔던 날들 속에 나의 감정과 있었던 일들을 적어내면서 당시엔 내가 찾지 못했던 빛과 희망과 행복과 사랑들을 찾아내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받아들이고 나서야 힘을 낼 수 있고, 내면의 힘도 보이며, 주변의 빛도 느끼는 것을. 그냥 스쳐 지나간 시간인 줄 알았던 것이 신이 회복할 힘을 주시는 시간이었음을 내가 느끼며 받아들이고 나서야 다.


여전히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이 글을 통해 어둠 안에서도 빛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길 바라며, 혹은 밑돌로 딛고 일어서시길 바라지만 그 바람이 쉬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도 해본다. 그저 나의 바람일 뿐.


다만 명확히 글을 쓰고 느낀 것이 있다.

그리고 그 느낀 것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픔의 시간을 지나오셨던,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계시던, 자판을 누를 힘 또는 스마트폰을 터치할 힘이 있으시다면, 그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잠시라도 찾으실 수 있다면, 마음에 약간의 틈이라도 있으시다면, 글을 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을 씀을 통해 분명 그 힘겨움 안에 존재하는 힘과, 의지와, 빛과 희망을 찾으실 거라고. 아무리 진한 어둠도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13화까지 연재된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브런치북을 마무리합니다.

모든 분들의 가정에 안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동안 저의 사연과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각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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