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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Apr 25. 2024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13

어두울수록 더 밝은 빛_웃으면 복이 온대, 웃자

사람은 그렇다고 한다.

바람을 느끼고, 꽃을 보는 것은

내 안에 바람이 있고, 꽃이 있어서라고.


내 안에 바람이 있어야 바람을 만나고

내 안에 꽃이 있어야 꽃을 만난다고.




하루아침에 희귀난치 질환자가 되곤, 세상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였

피어난 봄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도 무심함 그보다 못한 감정으로 이면 꽃이지 그게 무엇이냐고 마음에 꽃이 피지 않았던 시간을 잠시 흘려보냈다.


내가 일어서야 한다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픈 남편과 아픈 큰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꿋꿋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는데, 그것이 한순간 무너지니 물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다. 머리로는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을 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가장 가까이 내 곁을 둘러보니

사랑하는 그와 나의 아이들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고, 다가와있던 어둠은 그들의 빛에 떠밀려 저 멀리 밀려나는 것 느껴졌다.


그 빛에 의해 눈앞에 형형색색 물들인 과 봄의 풍경을 다시 볼 수 있고, 내가 서있는 곳이 포근한 땅이라는 것, 올려다보며 기도를 했던 하늘이 여전히 거기에 있음 보였다.


그리곤 들었던 생각은.

아!

이 얼마나 감사한가, 감사의 마음이었다.


질병이 있는 것을 빨리 알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큰 탈이 났을지도 모를 시간 잘 넘어가 이 정도임을 감사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그와 큰아이를 돌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핑계 대지말자

작년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정신없이 바빴다.

아이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뭉근히 반응하는 큰 아이와

어디든 좋다고 호응하는 둘째.

좋으면서도 진지하게 반응하는 셋째.

넷째는 '오예~'를 연신 외다.


아빠는 병원일정과 회사일로 열외였고,

막내에게 좀 더 크면 나중에 하기로 했던 일들을 나의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일들을 몰아서 해줌으로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냈다.


계곡, 워터파크, 놀이동산, 테마동굴, 기차여행을 다녀왔고, 방학에 개봉하는 가족영화와 어린이 영화를 관람하며 시원하게 더운 여름을 즐겼다. 그리고 아빠까지 포함한 완전체로는 방학초와 말에 바다로 여행을 다녀왔다.


바쁘다는 것, 아빠가 아프시니 안된다고 못 박았던 것들은 그저 핑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안되면 '나'라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었음에도 함께하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워 혹은 미안한 마음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양보해 달라 이해해 달라 요구했다. 그런데 나에게 뇌졸중이 다녀가고 질병을 얻고 보니, 지금 지나는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며 나뿐만 아니라 가족 중 누구라도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지난여름방학은 아이들과 내게 진한 추억들을 가득 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여러 시련이 덮쳐왔지만 그것을 시련이라고 암울하게 느끼는 것도 마음이고,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마음이다.


그 아픈 시련들 우리에게 드리워진 어둠이라고 느끼는 것도 마음이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것일 뿐이라 생각하며 지금부터 더 행복하자 더 사랑하며 살자고 나를 다스리는 것도 마음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거였다.


반복된 안 좋은 일들은 더 진하고 깊게 어둠을 드리웠지만, 빛은 더 환하게 밝혀준다. 어두운 밤하늘일수록 작은 별이 더 환히 빛나듯이.




웃으면 복이 온대. 웃자


모야모야병은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후후 불어먹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애초에 식혀서 미지근할 때 먹어야 한다. 후 부는 호흡으로 뇌혈류로 가는 혈류량이 떨어지면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허혈증상이나 말이 우둔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큰 아이와 겨울에 둘이서 국밥집을 간 적이 있다. 뜨끈하게 나온 국밥을 앞에 두고 한참을 수다 떨고 이젠 좀 식었을까 한술씩 뜨는데, 둘이 하고 있는 행동이 웃겨서 빵 터졌다.


개별접시에 국밥을 떠내고, 거기에서도 한 숟가락을 떠서는 손부채 하고 있는 아이와 접시에 있는 국밥을 식히느라 계속 뒤적거리는 내가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말도 없이 한참을 깔깔거렸다. 겨울철 국밥 뜨끈한 맛에 먹는데, 다 식은 미지근한 국밥으로 만들고 있는 우리가 왜 그리 웃겼는지. 그래, 웃자. 어차피 받아들여야 할 거 웃어버리자 했다.




친구야, 울지 마

내가 아프기 전 2월에 만났던 친구를 가을의 어느 날 만났다.

전화는 꾸준히 했지만, 나의 상황과 사정을 전화상으로 알리지 않았었다.

만나자마자 친구는 다이어트 성공했구나 하며 축하를 해줬다.

아무래도 그사이 마음고생을 조금 했던 탓에 살이 좀 빠져 보였나 보다.

친구의 축하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잠깐 멈칫하다 그 축하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주변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나는 꽤나 덤덤하게 얘길 하며, 평생 함께 가야 할 친구가 하나 생겼다고 말을 전하는데 친구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소녀 감성인 거야? 울지 마. 나이가 들면 이렇게 어깨동무하고 가야 할 친구가 생긴다고 울 엄마가 그러시더니, 좀 더 빨리 찾아왔더라고. 이렇게 빨리 알게 돼서 약 먹으며 관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울지 마라~"


나는 그렇게 나의 아픔을 눈물로 받아주는 친구를 달래주고 돌아왔다.




살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들이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허락하신다.

내가 삶에 덜 무르익었을 때, 이 말씀들을 나의 상황에 연결시켜 생각하다 보면 그토록 잔인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살다 보니, 겪다 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말씀임을 깨닫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젊은 날 깃털처럼 가벼운 삶의 무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무겁고 힘겨운 느낌이지만, 젊은 그날엔 나 혼자였다면 지금은 그와 아이들이 함께 있음으로 몇 곱절의 힘이 함께하고 있음을 안다.


지나온 시간들 속에 나는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른으로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불꽃 하나가 둘이 되었고. 다시 여섯이 되면서 꺼지지 않을 커다란 불꽃으로 피어나 어둠이 진하게 드리워져도 드리워진 어둠을 밝히는 우리가 될 거라는 것을,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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