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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Apr 15. 2024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10

믿음과 감사의 시간_내가 가진 아픔은 세상의 많은 아픔의 하나일 뿐

병원을 다녀보면 모두가 환자다.

아픈 사람이 넘쳐난다.

아픈 사람이라 하면 나의 남편만 바라봤던 시간들. 그의 곁을 지키는 나와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여겼던 시간들. 어떻게 이런 삶이 있느냐 한탄했던 시간들이 한순간 감사의 시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큰아이를 간호하면서 말이다.


자녀가 아프고 병실에 있으며 둘러보니 어느 사연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고, 어둠의 벽에 갇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그 안에서 희망을 찾고 빛을 보며 감사와 웃음의 시간들로 이겨나가는 모습에, 내가 가진 아픔_우리 가족이 가진 아픔은 그저 이 세상에 많은 아픔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정작용_믿음과 감사의 시간


큰아이의 수술이 성공적이라 하셨고, 수술한 지 열흘 만에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병원에서 주신 약은 진통제 하나였다. 두통이 당분간 이어질 거라는 말씀과, 스트레스 관리와 일상 회복에 전념을 하고 2주 뒤 외래로 만나자는 말씀으로 퇴원 시 당부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적어도 2주간은 등교하지 않기를 권고하셨고, 학교에 제출할 의사 선생님의 소견서를 받아왔다.


병원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 많이 힘들어했다. 병원처럼 자신에게 집중된 관리가 되는 환경이 아니기도 하고, 의료진이 없는 곳에서의 일상이라는 것이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두통에 시달리고 수술부위로 바람이 드는 것처럼 시려해서 2주간은 집안에서 거동하는 것이 다였다. 모야모야 환우 카페에 가입을 하고 의료진으로부터 받은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들을 얻어가며 아이를 간병했다.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하고 돌아와 힘들어하는 남편도 있었지만, 그는 안정을 찾은 상태이기도 했고 스스로도 자신이 아빠이기 때문에 아이를 향한 마음이 더 커져 그는 자신을 스스로 잘 관리해 주었다.


환자가 자신 스스로를 관리하고 돌보는 것이 보호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된 시간이다. 지나치게 자신을 관리하는 남편을 보며, 가끔씩 내가 떠올렸던 '자기밖에 몰라.'라는 생각에서, '옆에 기대지 않고 자기 스스로 관리해 주니 너무 고마워.'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으니까.


2주간의 시간을 지나며 아이는 웃음도 찾고 대화도 하며, 여전히 어린 해맑은 동생들을 안아주기도 하는 등 예전의 큰아이 모습을 찾는 듯했다. 외래가 잡혀있던 날, 의사 선생님도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시며 추가적인 힘 빠짐이나 그런 것은 없었는지 체크를 하셨다. 잘 회복되고 있으니, 학교생활을 시작은 하되 힘들면 조퇴하고 절대 울거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게 잘하라는 당부도 해주셨다. 그리고 극심한 두통이 이어지거나, 손발의 힘 빠짐이 이어지면 무조건 응급실로 와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수술 후 집에서 회복을 하는 동안 추가 증상이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 등도 없었기에 학교로의 복귀가 바로 가능할 줄 알았지만,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머리 수술을 하고 중3 학생의 학과생활로의 복귀라는 것. 그 자체가 스트레스이니 말이 될까. 남은 중3 생활은 '등교-조퇴/늦은 등교-하교' 이렇게 하루 2~3시간 수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성실하다거나 모범적인 학생은 될 수가 없었고, 아이가 가고자 했던 예술고등학교 입학도 내려놓아야 했으며, 일반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시경쟁에 노출되지 않는 일반고라는 건 없고, 다만 아이가 하고자 했던 미술계통 특성화반이 1개 반 구성된 집 근처 일반고로 선택을 했다. (일반고는 일명 뺑뺑이인데 특정학교를 선택했다는 의미는, 아이가 앓고 있는 모야모야병은 희귀 난치질환이라 고등학교 우선순위 배정 대상이다. 그래서, 해당 학교를 선택했고, 우선배정받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하고 여전히 아이에겐 불안정했던 시간. 미술 특성화반 1학년 1반으로 배정된 아이. 1학기까지는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낑낑거렸고, 여전히 등교-조퇴의 시간으로 지냈지만 미술 담당을 하셨던 담임선생님의 배려와 관심, 끈기로 아이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아이에겐 힘이 되었고, 자신의 진로를 미술계통으로 나아가는 것에 힘을 실어주는 선생님 덕분에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 자신의 삶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빼면 행복이 사라질 거라는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나와 남편에겐 우리들이 키워냈던 아이가 무너지지 않고 일어설 거라는 믿음, 분명 자정작용으로 아이는 원래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찾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의 믿음만으로 다시 가고자 했던 꿈으로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심어주고자 했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선생님의 관심으로, 선생님의 관심 어린 끈기로 아이는 더 빠르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다.


고 1 담임 선생님은, 2학년 때는 부담임을 맡으시며 우리 아이를 다시 예전의 아이로 만들어주셨다. 미술반 대표로 학생 강연에 서게 하며 자신감을 끌어올려주셨고, 시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를 유도하여 시화부문, UCC부문, 주제별 개인 작품 등에서 1, 2등의 결과를 얻게 하셨다. 고2를 마치며,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면서, "할 수 있어, ○○아. 꿈을 잃지 마!"라고 응원해 주셨던 마지막 편지는 꿈으로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 남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라는 메시지에, 자신의 삶의 모든 방향과 의지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와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만난, 세상에 더없이 감사드려야 할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 아이에게는 당연하겠지만, 우리 가정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엄마로서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을 만났다. 다시 떠올려도 강단진 표정과 카리스마, 그 내면의 따뜻함과 절대 놓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의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러한 힘 덕분에 지금 아이는 대학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디자인의 길을 배워나가고 있고, 어느새 대학교 4학년이다. 모야모야병으로 수술하고 이 병은 완치가 없다 하며 여전히 1년에 한 번 뇌 MRI를 찍으며 관리하고 살아가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좋아하는 일을 진로로 선택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희망적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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