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각화 Apr 11. 2024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09

신이 내게 단단한 아내에 이어 단단한 엄마가 돼라 한다

폭풍이 몰아칠 때 잠시 쉴 틈이 주어진다면.

앞서 지나간 폭풍을 복구하고 회복할 틈이 주어진다면.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왜 자꾸 폭풍이 몰아치느냐 하늘을 원망해야 할까.


잠시나마 쉴 수 있었고, 지나간 폭풍을 완벽히 복구할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함께 의지하며 나아갈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손을 잡고 회복해 나아갈  있도록 내어준 그 시간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 다.




남편이 투석을 한 지 2년 반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힘들었지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렇게 살아가면 되겠구나 싶은 우리 가족만의 삶의 방향과 패턴이 만들어졌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어머니께 도움받았던 '돈'과 관련된 빚을 정리할 수 있었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아가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불안정한 곳만 보면 어떻게 살지? 싶다가도 이내 잘 유지해오며 살아온 시간들에 힘입어 다시 안정감을 찾고 살아가던 어느날.. 매일을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또 한번의 힘겨운 시간이 다가왔다.


큰 딸에게 닥쳐온 어둠

큰 딸의 중학교 3학년.

그림에 특기가 있던 아이라 예술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했다. 아이의 생각과 엄마, 아빠의 생각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꿈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혹시 모를 자신의 훗날 진로 선택에 있어 고등학교를 예고로 좁혀가지 말고 일반고등학교로 가서 마지막 진로선택에 있어 그때도 자신의 꿈이 그 방향이라면, 전공 선택을 미술계통으로 나아가기를 권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뜻에 맞춰 중3 1학기까지 성적관리를 우수하게 잘해주었다. 기특하게도. 하지만, 이런 생각들 초자 욕심이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중3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첫날, 토요일.

큰아이가 방에서 걸어 나오면서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고 거실 매트에 뒹굴듯 쓰러지며 웃는다. 다치겠다고 조심하라고 하니,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오른손이랑 오른발이 힘이 안 들어가서 그런 거라며 깔깔거렸다. 아이의 발음이 명확하지 않게 들려 다시 묻기를 했는데, 잠시 후 어? 괜찮네? 하며 일어서서 앉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혹시나 이런 적이 또 있었는지, 꼬치꼬치 물었더니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고 답을 했다.


중2 때, 선생님 생신 파티 준비를 한다고 풍선을 불다가 잠깐 팔에 힘이 빠졌다가 돌아왔었고, 중1 때, 학교 체육대회 준비를 하며 단체 줄넘기 할 때도 픽 쓰러졌었다고 한다. 그것이 어떤 증상이라 생각을 안 했었기에 집에도 얘기를 하지 않았었고, 단순히 자신의 실수로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고만 생각을 해서 잠깐 앉아있다가 일어섰었다고 한다.


아이의 증상을 들어보곤 이상하다는 생각이 계속 이어져 남편과 주말 간 상의를 하고 월요일 오전에 거주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개인 신경과/신경외과에 아이를 데리고 찾아갔다. 증상을 들으시더니 갸웃하시는 선생님. 바로 CT를 찍자고 하셨다. 증상만으로 뭐라 말할 수 없고 우선 찍어보고 말씀을 드리겠다며...


조영제를 넣고 뇌 CT를 찍곤 결과를 기다렸다. 사실 내가 신경과를 찾아간 건 간헐적이지만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뭔가 신경이 눌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일자목이나 거북목 같은 이유로 경추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아이의 이름이 호출되고 보호자만 들어와 면담하라 하셔서 의사 선생님을 뵙는데, 언젠가 들어본 병명을 말씀하셨다.


모야모야병

뉴스에서 한 여대생이 괴한(개그맨)에게 쫓기다가 쓰러져 뇌졸중이 되었었는데, 그 여대생이 앓고 있던 병이 모야모야병이라고 해서 알게 되었었고,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던 그 병을 언급하셨다. 바로 의뢰서를 써줄 테니 검사가 가능한 인근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의뢰서를 받아 들면서도 설마 아니겠지, 여긴 개인병원이니까 잘못 보셨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인근 도심의 종합병원으로 바로 갔다. 의뢰서와 가져온 영상을 판독하시더니 입원검사를 권하신다. 사실 이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정확히 알고 가자는 의미겠지라고만 생각을 했다.


방학이니 입원하여 검사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직장이야 어머니들께 3일간 보강으로 다음에 해드리기로 하고 수업을 모두 미뤘고 검사는 낮에 있으니 내가 지켜보다가 밤에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이니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기본적인 검사 외에 뇌 MRI/MRA, 뇌혈관조영술, SPECT검사 등을 3일간 하였다. 아이는 뇌혈관조영술을 많이 힘들어했다. 대퇴부로 관을 삽입해서 조영제를 넣어가며 그 관을 뇌까지 올려 영상을 찍는 것이라 허벅지는 국부마취를 하지만 검사가 끝나고 5시간 정도를 아예 못 움직이게 모래주머니로 누르고 묶어둔다. 잘못하면 혈관이 터지고 혈전의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라 했다. 중3. 다 큰 것 같아도 어리디 어린아이. 그래도 그것을 해냈고, 다음날은 핵의학분야의 SPECT검사. 하고 나서는 어지럽고 얼굴이 덜덜 떨리는 그 검사를 구역질을 참아가며 아이는 또 해내었다. 퇴원하던 날. 병실에서 내려와 외래처럼 진료실에서 보자는 담당의를 뵙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확진이었다.

모야모야병 확진.

지금 아이의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이 모야모야병 때문이라고 하신다. 아이의 뇌 MRI를 보여주시는데, 왼쪽 중대뇌동맥이 막혀있고, 좌뇌의 굵은 혈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작은 혈관들이 산소와 혈액을 공급하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왼쪽이 막혔으니 이대로 두면 우측 편측 마비가 된다고 했다. 아이의 꿈은 미술계통이다.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우측 마비라니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듣고 서있는 내가 얼마나 멍청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바쁘게 사느라 아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서 이 지경이 되는가 싶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눈앞이 캄캄해져 있는 내게, 의뢰서를 써줄 테니 빅 5 병원에 가서 수술 상담을 하라고 하신다. 최대한 빨리 움직이라고. 아이들은 진행속도가 빠르며, 그것과 상관없이 저 약한 혈관이 터지면 큰일 날 수 있다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남편과 상의를 했고, 그날로 회사에 사정사정해서 퇴사를 했다. 어머니들께는 전화드리며 큰 아이 건강해지면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다시 돌아갈 거란 생각은 솔직히 안 했던 것 같다. 이제 나의 아이들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또 다른 폭풍이 몰아치는 것에 다른 어떠한  고려 없이 아이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것이 당시는 최우선의 고려사항이었다.



모야모야병은 뇌혈관의 큰 말단부 혈관이 막히면 혈관의 특성상 막힌 혈관을 대신해 일을 할 아주 가느다란 혈관들이 마치 담배연기가 피어나듯 모락모락 생겨나 막힌 혈관을 대신해서 일을 하게 되는 희귀성 질환이다. 생성된 혈관이 워낙 얇기 때문에 아이들의 경우 뜨거운 라면 국물을 먹으려 후후 불 때, 혈액과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반대 측 손발의 힘이 빠지는 일과성 허혈성 증상이 나타나게 되며, 풍선이나 피리를 부는 등의 행동에도 그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불안정한 심호흡으로 증상이 발생하는데, 워낙 혈관이 얇기 때문에 터지게 되면 그것이 뇌졸중으로 되어 마비가 되며 영구 장애를 남기게 되는 질병이다. 그리고 대체로 양측 모두 발생하는 경향성을 가지지만 특이한 경우 편측으로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 이렇게 상담을 갔고, 가장 빨리 수술이 될 수 있는 병원 그리고 모야모야병에 정평이 나있는 수술 실력과 자상하게 아이를 대해주신 삼성서울병원 선생님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삼성서울병원에서 중3 여름방학이 끝나던 날에 말라 들어간 측 뇌혈관을 심어주는 간접문합술의 방법으로 개두술을 받기로 했다. 다행이랄까. 아직까지 우리 아이는 우측 뇌의  혈관들은 정상적 범주라 하셨기에, 왼뇌만 수술을 하기로 . 


개두술이라니.. 그간 너무나 건강하게 잘 지내던 아이에게 이게 무슨 일인지,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의료진이 수술 전날밤 수술부위를 체크하고 그 부분을 이발하러 오셨던 순간, 그리고 수술받으러 들어가는 아이의 침대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꿈이기를 바랐다. 다리가 후들거려 간신히 보호자 대기실로 걸어가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기까지 말이다.


수술시간 4시간가량.

아이이름옆 수술 중이라는 전광판의 불이 참으로 오래도 켜져 있었다. 내 느낌엔 하루를 넘기는 것 같았던 시간... 의료진의 호출에 깜짝 놀라 일어서니,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이동한다고 했다. 우선 수술은 끝났다는 말에 안도했고,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들어가 보니, 핏주머니를 달 머리에 붕대를 감았지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보며 집도의 선생님께 연신 감사합니다라고만 되뇌었다. 할 줄 아는 말은 그것뿐인 사람처럼...


정말 감사하게도 하룻밤 중환자실의 생활을 마치고 다음날 일반 병실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수술은 잘 되었고, 열흘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퇴원을 다. 매사에 조심하라는 말씀과 지금은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일상생활이 회복되도록 살피라고 하셨다.


기간 동안 어린 자녀들은 남편과 큰 시누이가 돌봐주어 무탈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큰일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 삶 속에 늘 감사함이 따르는 많은 분들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나도 깊게 느끼며 지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족에게 거친 언사를 해대던 남편도 그 시간을 지나며 감사하는 마음을 크게 느꼈던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시누이의 도움의 시간 뒤부터 그가 누님들과 형에게 양대 명절에 연락드리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것을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지나간 폭풍에서 강인하고 단단한 아내가 되기를 신이 주문하셨다면, 갑자기 큰아이에게 짙게 깔렸던 어둠의 시간을 지나면서는 신께서 내게 강하고 단단한 엄마가 돼라 주문하시는 거라 생각을 했다.


그날들을 지나며, 가장 기본적인 바람이라 여겼던 것이 결코 기본적인 바람이 될 수 없음을 알았고 그것은 가장 큰 소원임을 알게 됐다.


'건강'


우리들의 앞날 항상 건강하기를~ 지금도 여전히 가장 큰 소원인 건강 말이다.


그로부터, 1년 그 이상의 시간동안 큰아이에게 성실함이라거나 모범생이라는 말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이전 08화 아득한 어둠 속 그 안에서도 꽃은 피어난다-0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