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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03. 2020

그녀 품에 안기기 위해 #1

  그녀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희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강하게 끌렸다. 강하게 끌렸다는 점을 이십대나 삼십대에 대입해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사건에 불과하다. 심심하면 한 번씩 출몰하는 현상 아닌가. 그러나 나는 사십대하고도 끝자락이고 미혼이다. 삼십대 후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여자를 만나 연애라는 걸 해보는 게 점점 아득해졌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들면서부터 돈벌이가 시원찮아지자 더욱 그렇게 되었다. 연애의 기억은 전설처럼 까마득해지고, 설령 나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난다한들 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있을지조차 심히 걱정이 될 지경이다. 손잡는 법, 키스하는 법부터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할 판이다. 언제부턴가 몸이 시들해지는가 싶더니 마음마저 시들해졌다. 이제 웬만해서는 의욕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를 보는 순간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잿더미에서 확, 하고 불꽃이 피어오른 것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천변의 산책로에서였다. 일이 없을 경우 나는 종종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나서 천변을 거닐곤 했다. 어떤 여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다. 그거야 물론 처음 보는 장면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는지는 천변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게 자주 보아왔던 광경이고 그저 무심히 지나치곤 했건만, 그녀의 모습에 내 시선은 붙들렸다. 끈에 연결된 그녀의 강아지처럼.


  왜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녀를 본 순간 오래전에 읽은 단편소설의 제목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안톤 체호프의「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그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또한 알 길이 없다. 그 의문을 풀고 싶어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찾아 읽어봤지만, 의문만 더 증폭될 따름이었다. 하긴 세상일이라는 게 명확한 인과관계에 따라 연결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나는 보이지 않는 끈에 연결된 개가 된 것처럼 그녀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고, 그녀가 근방에서 통닭집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날 이후로 나는 그곳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아는 사람과 술 마실 일이 생기면 나는 되도록 그녀의 통닭집으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함께 마실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갔다. 가까이에서 힐끔힐끔 지켜본 결과 그녀는 삼십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애인도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곳을 자주 가게 되었다.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곁에 늘 가까이 있는 존재는 사랑이였다. ‘사랑이’가 강아지 이름인 모양이다. 튀김 기계와 주방 사이에 사랑이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 하는 틈틈이 그녀는 사랑이를 돌보았다. “우리 사랑이 배고픈가 보구나.” 하면서 먹이를 주고,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날 시간이야.” 하면서 씽긋 웃어 보이는 식이었다.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닭을 튀기고 계산을 하는 것이었고, 술과 안주를 나르고 치우고 설거지 하는 일은 이십대 중반의 여직원이 맡았다. 그녀는 손님이 많지 않을 때면 가끔씩 단골손님의 자리로 와서 말벗이 되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품에는 어김없이 사랑이가 안겨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볼작시면 어처구니없게도 질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몇 번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독신이고 애인도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할 생각도, 애인을 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런 채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게 봄이 막 시작될 즈음이었는데 벌써 가을이었다. 나는 사흘에 한 번꼴로 그녀의 통닭집에서 술을 마시곤 했다. 처음엔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시들해졌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한단 말인가, 하고 나는 때때로 탄식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개월이 지나면 내 나이는 오십이 된다.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해야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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