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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03. 2020

그녀 품에 안기기 위해 #3

  강아지에게 한 달에 150만원 들어간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닭은 그저 사람이 먹을 용도로 튀겨대면서 강아지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보다 더 지극정성이라니……. 그러나 나는 치솟는 화를 눌러 끄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와 논쟁을 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진짜로 중요한 건 마음이죠.”


  그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얘기란 말인가. 돈 얘기로 굴욕감을 안겨주고선 바로 마음 타령이라니. 그녀의 내면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라고 왜 애인을 두고 싶은 마음이 없겠어요. 마음 한 구석에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남자와 만나게 되면…… 좋은 건 처음 한두 달뿐이더라고요. 이후로는 서로 생각이 부딪치고, 사소한 것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피곤한 날들이 이어지더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외로움이 묻어나왔다, 희미하게나마. 그것은 나에게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 


  “우리 사랑이가 좋은 건 바로 그거예요. 서로 부딪칠 일도 없고 신경전을 벌일 이유도 없으니까요.”


  그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끄응, 끄응, 하며 낮은 소리로 애교를 부렸다. 


  “맞아요, 저도 겪어봐서 알지만 항상 그게 문제더라고요.” 나는 기꺼이 그녀의 생각에 장단을 맞추었다. 그리고 열두 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을 보며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니까…… 유미 씨도 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고…… 돈벌이가 한 달에 150 정도여도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녀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제가 충분히 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묘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임이 분명한 도구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처럼 순종하면 된다는 건가요?”


  그녀가 지그시 나를 쳐다보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네, 바로 그거예요. 그것 말고는 남겨진 방법이 없어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좋아요. 그렇게 할 게요.”


  나는 대답했다. 남겨진 방법은 그것 말고는 달리 없다고 나 또한 결론을 내렸다. 마흔 넘어서 만난 사람들 중에 노총각을 다섯 명, 노처녀를 두 명 알고 있다. 그녀까지 하면 세 명이다. 그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떠올려 본 적이 있는데, 자의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고 가급적이면 자기 뜻대로 하려는 성향들이 강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성향은 공고해진다. 그러니 결혼이니 연애니 하는 것과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전적으로 나를 상대방에게 맞추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그녀의 품에 포근히 안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나는 가슴에 깊이 새겼다.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그렇게 되진 않을 거예요, 잘 아시다시피.”


  그녀가 차분하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듯 나는 말하고 있었다.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겠죠. 1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고 한 달도 안 걸릴 수도 있고…… 간절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최대한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예요.”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아, 오늘은 됐어요. 뜻깊은 시간이었으니 그냥 가세요.”


  그녀가 손을 훼훼 내저었다.


  “그래도 술값은 계산을…….”


  내가 지갑에서 돈을 빼내려고 하자 그녀가 눈을 부릅떠 보였다. 그것은 간혹 사랑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그쳐, 하며 주의를 줄 때의 표정과 같았다. 나는 고분고분한 표정이 되어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끄응, 끄응, 애교 섞인 신음을 내보이고 싶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변화된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그녀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애완견 종류’부터 검색했다. 나는 지금껏 애완견에 관해 너무 무지했다. 사랑이가 어떤 종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선은 사랑이와 같은 종의 애완견부터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강아지의 행동을 면밀히 살피고 그와 똑같이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빠른 시간 안에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그녀 품에 안기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다른 남자가 나타나 사랑이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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