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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10화 (2)네 엄마는 가짜야

아직 앞니도 빠진 때였지만, 그때도 나에게 인생이란 …… 얄궂은 거였다. 사수에게 일생일대의 질문을 던진 그날 저녁, 나는 보육원 마당 구석에 앉아 얼마 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앞니를 혀로 밀었다 당겼다 하며 상념에 젖어들었다. 결국 할머니란 말인가…… 그러다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 질문엔 답이 없을 수 없다는 걸. 계산은 오래전에 끝났고 답은 이미 나왔다는 걸. 게다가 그 답은, 사수가 아닌 내게 있었다는 걸.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내 안과 밖을 잇는 어떤 끈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투두툭둑. 어떤 오누이는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해가 되고 달이 되었다던데…… 하늘의 그 누군가는, 오누이의 엄마를 잡아먹은 천벌 받을 호랑이한테도 동아줄 비슷한 걸 내려주긴 했다던데…… 내가 보기에 하늘에는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저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 아찔해졌다. 앞니가 흔들리기 이전의 세월을 되짚어보니, 사수는 나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낳을 수 없는 사람, 그게 사수였다.


그 증거는 첫째,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면 결혼하고, 사람과 사람이 결혼하면 배 속에 아기가 생기고, 배 속에 아기가 생기면 그 사람과 사람은 엄마와 아빠로 변신하고, 아기는 엄마 배 속에서 점점 커지다가 때가 되면 태어난다는 걸 나는 도다리 부부를 통해 진작에 배운 참이었다. 솟아오르던 도다리의 배가 어느 날 훅 꺼져버려서 꽤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애드벌룬처럼 부풀 거라더니.


둘째, 보육원에서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아기가 태어났다. 그때마다 사수는 그 핏덩이들을 내 동생이라고 소개해주었지만, 내 엄마이자 그 아기들의 엄마여야 하는 사수의 배는 애드벌룬은커녕 풍선껌만큼도 부푼 적이 없었다. 단 하루도. 그건, 사수가 그 아기들을 낳은 엄마가 맞긴 하지만 배 속이 아닌, 다른 어떤 속으로 그 아기들을 낳았다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그 아기들을 끌어안을 때 사수가 짓는 표정이나 몸짓은 천벌 받을 호랑이 같은 가짜 엄마는 흉내 낼 수 없는 진짜였기 때문이다. 사수는 아기를 안고 꾸벅꾸벅 졸기도 했는데, 특히 그 모습은 사수가 아침저녁으로 광을 내는 피에타상을 떠올리게 했다. 곤히 잠든 아들을 끌어안고 눈을 감아버린 성모 마리아 님…… 그런 성모 마리아 님도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솔직히 꾸벅꾸벅 졸다 입을 이따만큼 벌리고 잠들어버리는 사수보단 덜 피곤해 보였다. 이따금 들리는 말로는 성모 마리아 님도 아들인 예수님을 배 속이 아닌 다른 속으로 낳았다던데…… 어쨌든 이런 식이라면 나 역시 사수의 배 속이 아닌 다른 속에서 태어났을 가망성이 컸다. 사람은, 엄마 배 속에서 커지다가 태어나는 거라고, 막 솟아오르기 시작한 자기 배를 가리키며 도다리가 가르쳐줬었는데…… 그럼 설마…… 나는 사람이 아닌 걸까……? 하지만 나는, 사수가 끌어안는 그 아기들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셋째, 사수는 날마다 피에타상에 광을 내다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어서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공공연히 말해왔었는데, 나는 사수 남편 코빼기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빠 코빼기를. 내 아빠여야 하는 예수님은 그림이나 조각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 어느 각도에서 봐도 나와는 전혀 닮지 않은 먼 나라 사람이었다. 자식은 엄마랑도 닮고 아빠랑도 닮는 거라고 고대로가 가르쳐줬었는데…… 나는 내 엄마여야 하는 사수랑은 거의 안 닮았고, 내 아빠여야 하는 예수님과는 아예…… 하여튼 그랬다. 때문에, 벽에 걸린 예수님 그림을 올려다보며 우리 주 예수는 눈에 보이진 않아도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는 슈퍼맨과 같은 분이라고 중얼거리곤 하던 사수의 혼잣말은 덩달아 나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사수의 혼잣말이 떠오른 순간, 슈퍼맨이 내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가슴이 뛰었지 그건 진짜 순간의 기적일 뿐이었다. 슈퍼맨 역시 나라 사람이었다. 결정적으로 넷째, 보육원 아이들은 엄마 혹은 할머니를 사수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건, 보육원 아이들이 사수를 엄마 혹은 할머니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일 수밖에 없었다. 사수는 사수일 뿐이니까.


'네가 엄마라고 믿으면 나는 언제나 네 엄마란다.'


"거짓말! 사수는 거짓말쟁이야!"


나는 마당에 벌렁 드러누워 발을 굴렀다. 머릿속에선 앞니가 흔들리기 이전의 세월이 빠르게 되감겼다. 나는 분했다. 사수는 내게 엄마로 연결된 게 분명하다고 꾸역꾸역 믿어온 그 세월이. 누군가가 스치듯 흘리고 간 그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입 안으로 주워 담던 그날부터였다. 혀 아래로 끅끅 신물이 고이는 날이면, 그 말은 빨간 김치 한 점에도 화르르 불이 붙는 무른 내 입 안을 깨진 유리 조각처럼 굴러다니곤 했다. 나는 재가 되어버린 혀를 굴려 발음해보았다. 네 엄마는 가짜야.


마당 구석에서 땅바닥을 구르는 나를 발견한 사수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분노에 찬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다리를 꼬곤, 발 하나를 건들건들 떨며 불량한 자세로 사수를 쏘아보았다. 여느 때 같으면 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회초리를 찾는 시늉부터 했겠지만 사수는 빙긋 웃곤, 수녀복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한 부분이 거칠게 찢겨 있었지만 방금 적어 방금 접은 것처럼 깨끗했다. 나를 배 속으로 낳은 엄마의 편지. 그건, 꼭 김이 나는 하얀 밥 같았다.


"직접 읽어보렴."


나는 낯빛을 싹 바꾸고 일어나 편지를 펼쳐보았다. 사수는 거꾸로 들었다며 편지를 뒤집어주려 했지만, 나는 정중히 앞니를 드러내며 거절했다. 직접 읽으라니, 자음과 모음을 막 구분하기 시작한 지금 실력으론 어차피 무리였다. 그보다도, 내용이 어떻든 아무 상관없었다. 나는 입을 헤- 벌리고, 꼬부랑꼬부랑 뒤집힌 그 글씨들을 한 자 한 자 두 눈으로 따라 써보았다. 그러는 내내 혀로 밀지도 당기지도 않았는데 앞니가 저절로 들썩들썩했다. 헤- 벌어진 입 안으로 밀려드는 세찬 바람이 흔들리는 앞니를 더욱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치!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처럼 울기만 할 줄 알고? 나는 눈을 부릅뜨며 편지를 끝까지 따라 써 나갔다. 이가 실컷 흔들려야 그 자리에서 새 이가 돋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몇 개의 이를  벌써 갈아 치웠으니까. 처음 이가 흔들렸을 때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얼마나 숨죽여 울었는지…… 그보다도, 이제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엄마 부자였다. 배 속 엄마, 다른 속 엄마를 다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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