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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11화 (1)희망은 한 방울의 소주에도 있었다

스님을, 똘라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나는 가물가물했다. 사수 역시 먼 기억을 더듬는 표정이었다. 얼토당토않은 방식으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 넷은 한참 서로를 바라보았다. 분명한 사실, 우리는 오랜만이었다.


스님과 똘라가 제단 앞에 꿇어앉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보다도 정교한 한국어 발음으로 이국의 스님이 염불을 외는 사이, 똘라는 경찰모를 벗고 영정 앞에 절을 했다. 두 번. 상주에게도 절을 해왔다. 한 번. 그러곤 두 팔을 크게 벌려 상주를 껴안으려 했지만, 워낙 몸집 차이가 큰 상주의 품에 쏙 안겨오며 말했다.


"흘러가게 두자. 적당한 죽음이란 없으니까. 이르지 않은 죽음이란, 없으니까."


첫 조문객을 맞는다는 긴장감. 그들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압박감. 사시나무 떨듯 첫 맞절을 마친 상주의 널따란 등을 똘라는 짧고 굵게 토닥여주었다. 우리나라 장례식 문화까지 흡수한 똘라는 이제 틀림없는 한국인이었다.


도다리의 절친인 똘라는 캄보디아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오기 전 쭉 캄보디아에서 살았는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심장마비로 엄마를 잃었다. 캄보디아에서 알아주는 명문대, 생 먹고살 걱정 없다는 의대였다. 남은 건 돈 많이 벌어 효도하는 일뿐이었다. 그 대학에 합격하겠다고, 그 대학에 합격했다고, 유독 엄마에게만 맹독성 해파리처럼 속을 내비쳐왔다는 걸 똘라는 엄마가 죽은 뒤에야 깨달았다.


부질없는 삶에 질려버린 스무 살 똘라는 대학을 포기하고 스님이 되겠다는 아빠를 따라 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우발적이었다. 아빠는 그대로 스님이 되었지만, 똘라는 스님이 되는 것 또한 포기했으니까. 가만히 들어앉아 절밥만 먹었더니 좀이 쑤셨다. 그 공부를 어찌했을까, 머리에 녹이 슬었다. 남은 생이 단 하루뿐이어도 이렇게 기름기 없이 살 순 없었다. 결정적으로 몰랐다. 캄보디아에서 여자는 스님이 될 수 없다는 걸. 똘라는 도망치듯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빠의 나라에서 엄마를 잃었으니, 엄마가 그리워하던 엄마의 나라에서 무언가를 찾기로 했다. 고향을 뒤로하고 사랑을 좇아 캄보디아로 떠나올 때, 엄마가 그곳에 남겨두었을 그 무언가를. 일생을 즉흥적으로 살아온 아빠는 마음 바뀌면 언제든 돌아오라며, 이제부터 내 집은 바로 이 절이라며, 엄마의 손때가 새카맣게 오른 캄보디아 집을 헐값에 처분해 유학 자금을 쥐여주었다. 그게 16년 전이었다. 똘라는 그렇게 한국으로 향했다. 아마도 내가 도다리 혹은 고도리를 발음하며 말을 텄을 그즈음……


"식사하시지요."


스님의 염불이 끝나자 사수가 말했다. 드디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염불에 입술만 달싹이다 물러난 게 벌써 몇 번째였다. 다리가 저린지, 노스님은 근 한 시간여 만에 똘라의 부축을 받으며 제단 앞에서 물러났다. 그사이 나는 상주 대기실에 들어와 어둠 속에서 잠깐 호흡을 멈추었다. 쌕쌕 대는 자아의 숨소리를 확인했다. 도로 빈소로 나와 상주 자리에 앉으려는데, 내 기척을 느낀 똘라가 눈을 길게 감았다 뜨며 멀찍이서 눈인사를 해왔다. 그러곤 사수 곁에 자리를 잡았다. 똘라는 상주를 내버려 두었다.


"서둘렀는데더……  이 시간이네혓…… 넘 늦었쪄……?"


사수의 손등손을 겹치며 똘라가 말했다. 평소에 스님,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보다도 유연하게 한국어를 구사해온 똘라는 말꼬리에 과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뭔가 애쓰는 티가 역력했다.


"늦긴…… 일러도오…… 너무 이르지요오……"


멍한 눈으로 창밖을 응시하며, 사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똘라가 고개를 떨궜다.


오밤중에 찾아온 조문객에게 너무 이르다니…… 사수의 발언엔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지만, 이르지 않은 죽음이란 없다고 상주를 다독이던 똘라는 사수의 '일러도오…… 너무 이르지요오……'의 속뜻을 꿰뚫은 듯했다. 일러도 너무 이른 그들의 죽음을. 오래전 엄마의 죽음을 겪은 똘라지만 그것으로 죽음에 대한 항체가 생긴 건 아닐 테니까. 나의 오늘에서 그러했듯 나의 내일에 미리 가 있는 이. 그 이만 빼고 다 있는 나의 오늘. 가장 당연한 이의 가장 비틀린 내일, 죽음. 천년만년 살 줄 알았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똘라에겐 여전히 허망함, 그뿐일 터였다. 우리가 수없는 연습으로도 끝내 정복하지 못할 단 하나, 그건 그 허망함이 아닐까.


'다음에 봐!'


똘라와 마지막으로 만나던 , 우리가 나눈 끝인사를 나는 기억해 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늘 그래왔으니까. 홀연 세상을 떠나버린 그들과 똘라의 마지막 날, 그들 역시 자연스레, 그랬을까.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다. 그다음이 이런 방식일 거라곤 그들 역시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리 없어도 놀 건 놀아야지, 이러려고 버는 건데, 다음에 만나면 뭘 먹고 마실까. 친구와 실컷 놀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들 미리 그런 이야기뿐이었을 테니까. 우리는 늘 그래왔으니까.


한국에 온 지도 도다리와 절친이 된 지도 16년. 그사이 똘라는 한국에 귀화해 경찰 공무원이 되었다. 캄보디아 국어인 크메르어 외사 요원으로서 주로 심문 조사나 긴급 전화 통역 업무 등을 맡고 있다. 귀화 전에는 도다리 부부와 함께 보육원에도 종종 왔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이 된 뒤 더 만나기 힘들어졌다.


지워진 줄 알았는데 깊이 파고들어 새겨져버린 순간 있다. 어린 시절 적어낸 장래 희망 같은 순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을 땐 이미 늦어버린 첫사랑 같은 순간. 내가 가장 나였던, 순간. 격변의 1 겨울방학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그날 밤 나는 똘라를 굉장히 오랜만에 만났다. 못 본 그사이 나는 똘라보다 커져 있었다. 많이 컸네, 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똘라는 쌩하니 돌아서고, 나는 인사가 그게 전부라는 것보다 똘라의 정확한 발음에 매우 놀랐다. 똘라가 서둘러 돌아선 건, 어디선가 웅얼웅얼 들려오는 미지의 소리 때문이었다. 저쪽 구석에서 도다리가 뭐라고 뭐라고 말하며 똘라를 향해 다급히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도다리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똘라는 "오케이!" 라고 외치며 도다리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갔다. 보육원 평상에선 두 친구의 술자리가 한창이었다. 계절의 의미가 무색하게 달아오른 그들의 코끝. 긴 겨울밤, 잠든 보육원 아이들 다 깨울 듯 쨍하게 잔 부딪히는 소리. 바닥에 깔린 초록 병 위로 함부로 던져지새로운 초록 병. 한 병, 두 병, 세 병…… 평생 죄짓지 않고 살겠다는 각오로 경찰이 되었는데 만날 남의 죄나 해명하면서 사는 게 웃기지 않냐고, 그 밤의 끝에서 똘라는 결국 강소주를 나발 불며 자조했다. 죽도록 취한 이 밤, 머나먼 타국에서 밤이면 밤마다 고국의 진로골드를 그리워하던 엄마가 못 견디게 보고 싶다고. 그래도 엄마의 나라에서 꿈에 그리던 경찰이 된 건 다 네 덕이라고, 똘라는 도다리에게 경찰모를 푹 눌러 씌우곤 그대로 평상에 엎어졌다. 살을 에는 추위에 손에 입김을 쐬며 밤하늘에 빼곡한 별을 세던 나는 똘라의 작은 머리를 들어 내 허벅다리에 받쳐주었다. 도다리는 알아서 똘라의 허벅다리를 베고 쓰러졌다. 그날은, 겨울방학 내내 연락이 두절된 내게 그 아이가 가슴 시린 장문의 문자를 보내온 날이기도 했다.


- 엄마 아빠랑 슬픈 영화 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보내. 너 왜 내 연락 안 받아? 혹시 어디 아파? 설마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지? 잘 들어. 그렇다고 해도 난 너만을 사랑할 거야.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을 거야. 네가 죽어도 놓지 않을 거야. 네 무덤이 아무리 멀어도 찾아갈 거야. 특히 명절 때나 네 제사 때, 나한테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무조건 갈 거야.  렇게 빨리 갔냐고, 네 무덤에 엎드려 잔디를 쥐어뜯을 거야. 그렇게 한참 울다 힘없이 집으로 돌아올 거야. , 사랑이니까. 너도 날 사랑한다면 꼭 답장 줘. 오늘까지. 안 그러면 나, 확 삐져버릴 것 같으니까. 죽어버릴 것도 같으니까. 내가 죽어버린 그땐, 우리의 사랑도 이따위 약속도 다 소용없으니까……


사랑, 사랑, 사랑…… 밤하늘을 가득 메운 그 아이의 사랑에 나는 찡 눈물이 돌았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시 외우기 수행평가 땐 '윤동주'라는 시인의 이름만 되풀이하다 땀을 바가지로 흘리며 실패했는데, 이 대목이 언제 내 가슴에 새겨진 걸까. 제목 모를 그 시가 술술술 흘러나왔다. 도저히 맨 정신으론 버틸 수 없어서, 빈 소주병과 함께 널브러진 그들 몰래 나는 혀끝에 소주를 대보았다. 할짝, 할짝, 할짝할짝…… 소주는 진저리가 쳐질 만큼 썼지만, 알코올에 진심인 그들의 증언대로 다디단 뒷맛이 있었다. 이 맛에 술 마시는구나. 끝내 배신하지 않는 맛. 그건, 사랑의 맛이었다. 나는 배시시 웃음이 났다. 희망은 한 방울의 소주에도 있었다.


한쪽은 짠. 한쪽은 쩔 모이. 그날 잔을 맞댄 두 친구에게서 터져 나오던 각자의 건배사. 가장 고달팠던 오늘 일을 불콰한 얼굴로 털어놓은 뒤부턴 슬금슬금 '원샷'으로 통일되던 그들의 건배사. 똘라는 지금, 밤새 그 건배사를 나누던 친구의 영정 사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똘라의 눈이 새빨갰다. 어쩐지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상주가 그러면 안 될 것도 같아, 나는 상주 자리에서 두어 발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그들의 우정에 예를 갖췄다.


제단 앞에 다다른 똘라가 술잔 가득 술을 따랐다. 그날처럼. 찰랑찰랑한 술잔을 사진 속 친구를 향해 높이 들어 보이며 똘라는 쩔 모이, 쓰게 웃었다. 그날처럼. 그러곤 자기가 원샷했다. 그날처럼. 초보 상주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저걸 원샷해야 하는지, 입만 대야 하는지, 혹은 더 마셔야 하는지, 뭘 어째야 하는지…… 저쪽에서 정지 화면처럼 똘라를 주시하던 사수가 급히 손을 흔들며 제단 쪽으로 뛰어왔다. 그사이 한 잔에서 그친 똘라가 더는 술을 따르지 않고 힘없이 돌아서자, 사수는 뭔가를 말리려던 그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되돌아갔다. 초보 상주는 알아챘다. 한 잔 이상은 안 되는구나…… 그리고 알아챈 다른 하나. 돌아서는 똘라의 얼굴 위로 도다리가 자주 짓던 특유의 표정이 비슷하게 스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크으으으- 비워낸 술잔에 바로 술을 채우며 도다리가 짓던 표정. 내일 출근해야 되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앞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놨다 하던 도다리가 결국 크으으으- 술잔을 비워내며 짓던 표정. 똘라는 그 표정 그대로 빈소 밖으로 나갔고, 나는 멀어지는 똘라를 내버려 두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아니까. 똘라는, 지금 한잔 더 하고 싶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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