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3)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도다리는 그의 가족사진 속 작은 여자아이가 마치 자신인 것 같았다. 인형을 안은 아이는 입이 귀에 걸린 채 웃고 있었지만, 그 뒤에서 키를 낮춘 엄마 아빠의 입은 어디에 걸리지 못하고 앙다물려 있었다. 인형은 상표가 그대로 달린 토끼 인형이었는데 세 식구 몸을 다 가릴 정도로 커다랬다. 토끼의 두 귀 사이에 작은 점처럼 동동 뜬 세 식구의 얼굴. 아빠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떠나올 때 공항에서 급히 찍은 사진인 듯하다고,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코끝을 훔쳤다. 도다리는 인파 속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갔다. 제단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되었다는 유일한 가족사진. 가까이에서 본 그것은 엇나간 초점 안에서 부옇게 흔들려 있었다. 급속도로 부패가 진행돼 끝내 밝혀지지 못했다는 그의 사인처럼. 그가 버려진 시간은 과연 사흘뿐이었을까. 그의 죽음은 도다리를, 도다리의 오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박봉과 반비례하는 고강도 업무가 특징이라는 그곳. 그래서 오늘도 살아 있는 내가 기적이라는 기업 평가 댓글이 즐비한 그곳. 인수인계도 끝나기 전 직원들이 그만두는 탓에 365일 인력난에 허덕인다는 그곳. 취업 사이트에서 믿고 걸러온 '외국인 노동자 센터'란 곳에 도다리는 이력서를 넣었다. 경쟁이랄 것도 없어서 당일 합격했다. 정규직인데 월급은 아르바이트 수준이라니…… 잠깐 멈칫하기도 했지만 도다리는 첫 출근 날부터 백방으로 뛰었다. 외국인 노동자계의 신, '캄보디아 불교센터'의 스님보다 유명해지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도다리는 밤마다 빌었다. 그들이 죽어서 옆 건물의 스님을 찾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살아서 자신을 찾아오게 해달라고. 바로 옆집, 한 끗 차이라고. 다만, 한때 크리스천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도다리는 신께 빌지 않았다. 성당을 비롯한 종교 기관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도다리의 기도는 독실한 신자의 방언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염병할! 퇴근해 잠 좀 자려는데 천장을 떠다니는 이국의 얼굴들이 있어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게 자람 보육원 천장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옆에 애가 있어도 어르신이 있어도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염병할! 도다리는 마치 숨 쉬듯 기도했다. 그래도, 도다리는 양심은 있었다. 욕은 안 된다고, 어떻게든 보고 듣고 배운다고, 사수가 산증인 아니냐고, 애들 앞에서 염병할,은 묵음 처리했다.
도다리는 예수님을 사랑했다. 얼마 만에 배출한 자발적 크리스천이냐며, 오래전 훈풍 수녀회 일동이 내건 플래카드가 지금도 보육원 복도에 나풀나풀했다. 말단 사원 도다리는 그 플래카드를 벌써 한 달 넘게 보지 못했다. 취업과 동시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덥석 발을 들인 정규직의 세계는 용광로였다. 그곳에선 뛰지 않곤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빨간 날 근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 선택 사항이었지만 특별히 주어지는 선택권은 없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염병할! 도다리는 기가 막혔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건수는 오히려 빨간 날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다리는 빨간 날에도 출근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작정하고 해야 할 일이었다. 자립방에서 연애만 하기로 작정한 그때에 버금가는 참으로 주체적인 결정이었다. 성당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사수의 열린 교육에 힘입어 성경책은 주로 베개로 썼다. 그래도 예수님과는 차마 멀어질 수 없어, 퇴근한 도다리는 천주교 채널을 보다 잠들곤 했다. 광고는 어쩌자고 그렇게 재밌는지…… 졸린 눈으로 금테 두른 성경책 광고까지 보고 나면 새벽 두 시는 기본이었다. 설교 중간에 잠들어버리는 날이 늘어갔다. 나중엔 설교만 들으면 잤다.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도다리는 또다시 작정했다. 티브이를 팔아버리기로. 티브이 판 돈으로 바닥을 드러낸 쌀을 사기로. 미뤄진 급여가 입금되는 최후의 그날까지 스스로 밥을 짓고, 그걸 아껴 씹기로. 지금에서, 지금을 살기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범접할 수 없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님은 반드시 이해해주실 거였다. 앞으로 자신이 천주교 채널을 보지 않아도. 그 시간에 내 이웃을 둘러보아도. 예수님보다 그 이웃을 더 사랑해도. 인생이라는 짧은 소용돌이 안에서, 사는 날까지 내 이웃을 사랑하다 죽는 날까지 잠깐 예수님을 나 몰라라 해도.
빨간 날에도 자발적으로 일하는 도다리에게 있어 이제 예수님의 부활이란 순 뻥이었다. 예수님은 애당초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된 거 스르르 눈감아버리면 그만이었을 깜깜한 무덤 안에서, 예수님은 죽어도 잠들 수 없어 사흘 동안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버텼을 것이다. 십자가가 아무리 무거워도, 살고 봐야 하니까. 내가 살아 있어야 뭘 사랑해도 사랑할 수 있는 거니까. 이 순간, 목숨 바쳐 신을 사랑하는 이보다 목숨 다해 자신을 사랑하는 이가 결국 살아남는 거니까. 그런 뒤에야 비로소, 신의 말씀대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여, 어쨌거나 사는 날까진 세계의 내로라하는 어떤 신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겠노라, 아는 사람 다 모아놓고 떠들썩하게 무교를 선언한 도다리였다. 그래도, 도다리는 양심은 있었다. 작정했으므로 도다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등에 진 십자가를 이따금 추스르며, 지금도 어디선가 예수님은 바쁘게 이웃들을 사랑하고 있을 거라는 걸. 내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 또한 살아 있다는 걸.
허름한 외국인 노동자 센터와 그보다 더 허름한 캄보디아 불교센터는 야트막한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스님과 도다리는 16년 가까이 같은 분야에서 일해온 동료였다. 빈소 입구에 얌전히 놓인, 별 무늬 빼곡한 주황빛 지팡이는 죽기 얼마 전 도다리가 스님에게 건넨 선물이었다. 스님 다리가 갑자기 덜덜거린다고, 두 개가 한꺼번에 그런다고, 사수 다리는 괜찮냐고, 함께 간 대형마트 지팡이 코너에서 도다리는 내게 꼬치꼬치 캐물었었다. 곧 아기 낳으러 가면 얼마간 못 볼 수 있으니 낙낙한 패딩 한 벌 사준다더니…… 그날 우리는 스님의 최고급 지팡이만 샀다. 지팡이 색상을 고민하는 것 같길래 나는 중후한 갈색을 추천했는데 도다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스님 승복보다 더 쨍한, 아예 야광 기능이 탑재된 주황색을 골랐다. 지금보다 더 잘 보이라고.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열 자식 안 부럽습니다. 여기가 극락입니다."
감격한 스님은 그날도 야광 기능을 켰다 껐다 하며 아이처럼 눈물을 쏟았었다. 그러므로 조금 전 스님이 먼저 소리 내어 운 것은 전혀 어리둥절할 일이 아니었다. 자식과 동료와 친구와 이웃을 동시에 잃어버린 그였다.
"나무아미…… 나무…… 나무…… 으으으흐흑흑……"
스님이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스님의 울음은 웃음처럼 쉽게 전염되진 않았지만 서서히 고조되며 빈소 곳곳으로 침투되어 갔다. 빈소 식구들이 하나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훔쳤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다던가. 스님의 작은 흐느낌에서 시작된 그들의 울음은 갈수록 웅장하고도 서글픈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 틈에서 나는 별수 없었다. 마스크 안이 움찔움찔 달아오르고, 눈엔 금세 눈물이 고였다. 아래턱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떨림을 따라, 닷새 넘게 기른 수염 끝이 마스크 안쪽을 반복적으로 스쳐 지났다. 꺼끌꺼끌 꺼끌꺼끌. 흑, 흑, 으흑, 맞다, 너 거기 있었지. 어제도, 그제도, 조금 전 신명 나는 성가 리듬에 맞춰 나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달싹했을 때도. 꺼끌꺼끌 꺼끌꺼끌. 그곳에, 그대로.
식구들의 하모니가 절정에 다다랐다. 별수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껏 꺼끌거렸다. 꺼끌꺼끌 꺼끌꺼끌. 잊을 만하면, 굳이 먼저 안부를 물어오는 그것과 함께. 꺼끌꺼끌 꺼끌꺼끌.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라기엔 좀 그렇고…… 딱히 친하지 않은, 한마을에 사는 먼 이웃쯤이라기엔 조금의 모자람도 없는 나의 일부와 더불어. 꺼끌…… 꺼끌…… 꺼끌꺼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