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2)그곳에 있기에 그것임을 알아보았던
한국에 이런 곳이 있나, 싶게 황량한 곳이었다. 도중에 찻길이 끊겨 걷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자 멀리 막사가 보였다. 헉헉대며 도착한 막사 뒤로는 벌통이 까마득히 줄 서 있었다. 스님과 똘라는 동시에 손차양을 세워 보이지 않는 그 끝을 헤아려보았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노동자는 말벌에 쏘여 죽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 중에는 꿀벌을 공격하는 말벌을 제거하는 일도 있었는데 말벌 떼가 꿀벌이 아닌, 휴식 시간에 막사에서 잠깐 눈을 붙이던 그를 공격했다. 막사 문은 닫혀 있었고, 천장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아래에 놓인 이끼 낀 양동이에선 빗물이 찰랑거렸다.
죽은 노동자는 검은 피부의 앳된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한국에서 자라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그 생존의 증거가 없는 투명 인간이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이름은 무언지, 유치원은, 학교는 다녔는지,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아이가 산속에서 말벌에 쏘여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추측할 만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벌통 주인은 이 첩첩산중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를 앞세우고 흑인 남녀가 찾아와 아이의 부모인데 딱 사흘만 거둬달라고 애원해 거둬준 죄밖에 없다고 큰소리쳤다. 아이가 죽은 날이 꼭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는 그의 주장에도 증거는 없었다.
훗날, 태어나 세상에 남긴 유일한 사진이 수사 기록 속 죽은 자신이었던 그 아이를 잊지 않은 신입 경찰 똘라는, 아이의 부모가 벌통 주인과 고용 관계에 있던 불법체류자였고, 그들도 오래전 아이처럼 말벌에 쏘여 죽었다더라는 소문을 확보했다. 하지만 다시 찾은 사건 현장은 황무지로 변해버렸고, 치매에 걸린 벌통 주인은 아이는 물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똘라는 확보한 소문을 가슴에 묻었다. 아이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영영 불법이 되었다.
"고통받은 자, 모든 고통을 내려놓길."
"어서 가요, 스님. 저기……"
똘라는 아이의 추모식 내내 저쪽 나무에 매달린 벌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을 에워싼 말벌들이 삼엄하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가쁜 숨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스님과 똘라, 참석 인원 둘뿐인 추모식. 무명의 위패 앞에 한 아름 국화가 놓였다. 제단과 위패가 국화에 포옥 파묻혔다. 자기 몸집만 한 국화 다발을 안고 첩첩산중을 찾은 이는 땀범벅이 된 도다리였다.
"아놔…… 끝났어요? 혼자이실까, 부리나케 뛰었는데……"
서둘러 추모 의식을 마친 도다리가 말했다. 도다리 역시 홀로 추모식을 치를 스님이 걱정되어 따라나선 모양이었다. 스님은 늘 그래왔듯 여러 매체에 이 노동자의 죽음을 알렸지만, 말벌 떼와 함께 지낼 게 뻔한 추모식에 따라나선 이는 없었다.
"언제 한잔해요! 난 도다리. 이름이 어떻게 돼요?"
똘라는 도다리와 통성명했다. '어디서 왔어요?', 국적보다 이름을 먼저 물어온 최초의 한국인. 똘라는 초면임에도 마치 고국의 소꿉친구처럼 허물없이 다가오는 도다리에게 놀랐다. 한국은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하는 나라였다. 똘라의 혈관에선 엄마가 나눠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빠만 빼다 박아버린 똘라의 외모는 똘라 자신의 눈에도 오직 동남아시아인이었다.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동남아시아인을 일반화하는 시선은 빈번했다. 그건, 여자인 그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따가운 시선을 느낄 때마다 똘라는 당연한 수순처럼 주문을 외었다. 행복해, 행복해, 나는 행복해. 그 시선 안에서 똘라는 뭉뚱그려졌다. 집안의 가난과 맞바꿔진 인질, 혹은 영주권을 목표로 한국인 남자에게 거짓 사랑을 속삭이는 사기꾼, 둘 중 하나로.
그날의 커피숍. 최신 유행 라떼를 기다리며 인터넷 세계를 헤매던 똘라는 고개를 떨궜다. 관련 영상과 기사가 넘쳐났다. '대한민국 영주권 취득하자마자 갑자기 자유를 찾겠다고 집 나간 동남아시아인 아내를 찾습니다' 라는 문구를 클릭한 참이었다. 영상 속 한국인 남편은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과 변조된 음성으로 엄포를 놓았다. 어차피 둘 중 하나였고, 지금도 둘 중 하나다. 네가 돌아오면 다 살고 아니면 다 죽는다. 가장 먼저 죽는 건, 가난한 네 고향 식구들이다. 똘라는 캄보디아 고향 집을 떠올렸다. 비가 새고 쥐가 끓던 그곳을.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라고, 사랑 그게 밥 먹여주냐고, 그곳에서 이국의 소주를 벗 삼아 새하얗게 밥을 짓던 엄마를. 가끔은 새카맣게도……
*
흰 국화에 꿀벌 하나가 별처럼 박혔다. 사위가 어둑어둑했다. 산속 어둠은 한순간에 짙어진다며 스님이 바로 앞장을 섰다. 똘라는 스님을 뒤따라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 보니 곳곳에 비탈이 많았다. 서둘러야 할 듯했다.
곧 가파른 경사가 나타났다. 똘라가 비탈길에 막 발을 들인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저만치 앞서가던 스님이 놀란 듯 멈칫했다. 똘라는 황급히 뒤돌았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사람의 형태가 어렴풋했다. 뒤따른다던 도다리였다. 도다리는 넘어진 듯했다.
도다리는 넘어지면서 말벌 집이 대롱거리는 그 나무를 강하게 충격한 듯했다. 집에서 쏟아져 나온 말벌들과 보초를 서던 말벌들이 새카맣게 뒤엉켜 윙윙거렸다. 고요한 산속을 찌르는, 무수의 날갯짓이 퍼붓는 섬뜩한 주파수에 똘라는 불쑥 식은땀이 났다. 말벌 떼는 납작 엎드린 도다리의 몸 위에서 한국 사극 속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의 곡선처럼 날뛰었다. 똘라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나무아미…… 나무…… 나무…… 뛰어! 뛰어!”
스님이 소리쳤다. 도다리가 조금 일어서는가, 싶더니 또다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벌 떼의 주파수가 더욱 거칠어졌다.
“먼저 가세요! 어서!”
도다리가 도로 땅바닥에 엎드리며 소리쳤다. 몰아치는 날갯짓의 주파수를 뚫고, 떨리는 도다리의 목소리가 깊은 산속에 메아리쳤다. 똘라는 이를 악물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곤, 턱뼈 아래로 고여오는 시큰함을 떨어냈다.
“스님! 나중에 봐요!”
스님에게 소리치며 똘라는 뛰었다. 스님이 곧장 모국어로 뭐라고 뭐라고 욕을 했지만 자세히 알아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똘라는 뛰어야 했다. 희미하게, 땅에 얼굴을 묻고 꿈틀꿈틀 기어 오는 도다리가 보였다. 앞으로. 앞으로. 배밀이하는 아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두 팔로.
처음부터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그 험한 산길을 어떻게 올라왔을까 싶을 만큼. 더구나 넘어져버렸다. 다쳤을지도 몰랐다. 균형이 무너진 다리로 그 가파른 비탈을 혼자 내려간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혼자 두기엔 너무도 향기로운 사람이었다. 그걸 그새 까먹고 이만큼 멀어졌다니. 망설였다니. 똘라는 뛰는 내내 자신이 끔찍했다.
도다리가 닿을 듯 가까워졌다. 새파랗게 질린 도다리의 얼굴이 저녁 어스름보다 짙었다. 속도를 줄이며, 똘라는 도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말벌 대다수는 집이 대롱거리는 나무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만, 일부는 느릿느릿 땅을 기는 인간의 속도에 맞춰 집안의 기둥뿌리를 뒤흔든 침입자를 끈질기게 경계하고 있었다. 한 무리의 말벌 떼가 침입자 도다리의 머리 위에서 우글거렸다.
도다리는 앞을 살필 여력이 없는 듯했다. 똘라가 땅에 엎드릴 때 내지른 비명을 그녀는 듣지 못했다. 도다리는 땅 위를 헤엄치듯 필사적으로 나아갔다. 똘라는 자신을 그대로 지나치는 도다리의 한쪽 발목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날갯짓의 진동이 고막을 찢는 듯했다. 발목을 잡힌 도다리가 놀란 듯 뒤돌아보았다. 어둠 속 도다리의 얼굴이 눈물로 번들거렸다. 똘라는 낮은 자세 그대로 조금씩 몸을 움직여 도다리 앞에 등을 내밀었다. 간신히 허리를 세운 도다리가 똘라의 등 위로 쓰러졌다. 땀에 젖은 똘라의 등을, 도다리의 자그마한 두 가슴이 무지근하게 눌러왔다. 쿵쾅쿵쾅쿵쾅 똘라의 등을 타고 도다리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도다리의 두 다리를 단단히 휘감으며 똘라는 벌떡 일어섰다. 엄마만큼 가벼웠다.
“꽉 잡아요!”
똘라는 뛰었다. 전속력으로.
이제 똘라가 믿을 건 자신의 두 다리뿐이었다. 늘어진 엄마를 업고 교문 밖으로 무작정 내달렸던 똘라였다. 구급차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
벌이 날고 국화가 흐드러질 때, 똘라는 겸허히 한잔한 뒤 가슴에 묻은 그 소문을 꺼내보았다. 기억 속 그 기억을 다시 한번 기억에 새겼다. 신원 미상인의 수사 기록지. 그 첫 장에서 형체가 사라진 채 사진으로 누운 아이. 벌떼가 삼켜버린 작은 아이. 하나의 동그라미로 부어오른 아이의 몸. 그곳에 있기에 그것임을 알아보았던 아이의 손. 두 손. 꿀을 따며 벌을 쫓고 벌을 쫓다 꿀을 땄을 작은 손. 이 땅 어딘가에 서서 하나, 하나, 엄마 아빠와 맞잡았을 손. 아이의 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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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발견2>에서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