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운 스님이 바로 수저를 들었다. 반전이었다. 스님은 눈물이 많았지만 오래 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양한 방식의 죽음을 숱하게 목격해온 내공일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분위기를 뒤집었다. 정점을 달리던 식구들의 울음소리가 치이익- 수그러들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가도 모를 맛입니다……?"
스님이 채소탕 건더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국물은 한약을 마시듯 원샷해버렸고, 건더기는 한입에 털어 넣었다. 스님은 대충 씹은 건더기 또한 물 세 컵과 함께 마셔버렸다.
"나무 관세음보살……"
어떻든 사발을 비워낸 스님을 향해 대장 조리사가 수줍게 합장했다.
"와우! 여전하네요! 이 육개자앙……"
앞에 놓인 육개장 국물을 맛본 똘라가 말했다. 똘라 역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었지만 그쳐지지 않는 눈물까지 어쩌진 못했다. 똘라가 연신 눈가를 문질렀다. 그 바쁜 아침,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듯한 아이라인이 관자놀이까지 번졌다. 한 솥단지가 기본인 대장 조리사표 '다리 목 육개장'은 도다리에 의해 여기저기로 퍼져나갔고, 도다리가 싸다준 그것을 16년 넘게 먹어온 이가 바로 똘라였다. 수저를 내려놓은 똘라가 육개장이 담긴 사발을 저-쪽으로 밀었다.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 그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서 나만 모르고 다 아는 또 다른 이야기를…… 스님이 물을 한 컵 더 따라 입 안을 헹구며 그런 똘라를 쓰디쓰게 바라보았다.
K- 유학 생활에 젖어 들어가던 똘라는 엄마의 나라에 홀딱 빠졌다. 한국은 화려하고 편리했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이런 곳에 있을 거였다. 그러다 스님을 처음 본 건 오늘은 어디를 기웃거려 볼까, 고민하다 거의 한 시간을 검색해 들어간 커피숍에서 요즘 인기라는 라떼를 막 주문했을 때였다. 한국어 발음에 묻어나는 귀가 번쩍 뜨이는 억양. 그것에 묻어오는 고향의 향취. 똘라는 저쪽 대형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고국의 스님. 언제나 웃으며 인터뷰하는 날이 올까요, 하며 스님이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살아서 나를 찾는다면 좋겠지만…… 드물지요…… 이곳을 20년 넘게 지키고 있지만, 그들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캄보디아 불교 센터를 찾는 노동자들의 국적은 오히려 다양해졌습니다. 이젠 캄보디아만의 문제가 아닌 거지요."
이어지는 스님의 이야기에 똘라는 갑자기 목이 탔다. 자연스럽게 앞에 놓인 컵을 들어 안에 든 걸 벌컥벌컥 들이켰다. 원샷해버린 건 어느새 차게 식은 라떼였다. 곧 가슴께가 얼얼해졌다. 카페인에 취약한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커피를 두 모금 이상 마시면 으레 감수해야 하는 반응이었다. 이 두근거림이 끔찍해 커피라면 고개부터 젓고 보는 똘라였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최신 유행 라떼를 주문하고 말았다. 인터뷰를 이어가는 화면 속 스님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한 캄보디아인 노동자가 일터에서 쓰러졌다. 그를 발견한 네팔인 노동자가 그를 향해 뛰다가 후진하는 지게차에 치였다. 캄보디아인 노동자의 위장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부풀어 있었는데, 그게 터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한국인 고용주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 발뺌했지만, 캄보디아인 노동자의 휴대전화에는 그동안의 고통이 떨리는 음성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파. 아파서 못 머거. 바빠. 일 바빠. 하스피톨 앙대. 돈 마나. 수술 돈 마나. 싸장님 말해써. 가불 앙대 개새끼야. 처음 개새끼 몰라. 마음 갠차나. 지금 개새끼 아라. 마음 아파. 싸장님 개새끼……"
두 노동자는 구급차를 기다리다 현장에서 죽었다.
누군가에겐 일상에 불과한 그것을 누리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들. 어디에나 있는 그들. 엄마의 심장이 오래전부터 고장 나 있었다는 걸, 똘라는 엄마가 눈앞에서 죽어가도록 몰랐다. 엄마의 죽음은 설마, 하며 지나쳐온 순간들의 결과물이었다. 네깟 게, 의사? 똘라는 엄마를 다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머저리 같았다. 야간에 일해야 돈이 된다고, 타국의 일터에서 밤샘 근무를 자처하던 엄마. 스님들 팔자가 부럽다는 아빠에게 나는 늘어지게 늦잠 자는 당신 팔자가 부럽다며 한숨짓던 엄마. 그날도 새빨간 눈으로 아침에 퇴근한 엄마는 딸의 대학 입학식에 참석하려다 학교 문턱에서 잠들었다. 영원히. 언제나 마주하던 얼굴로, 깨끗하게.
똘라는 스크린 속 스님을 수소문했다. 우발적이었다. 병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일터로 향하는 영혼들을 위해 당장 뭔가를 하고 싶었다. 스님을 찾는 건 맛집 검색보다 쉬웠다. 국적 불문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스님은 이미 유명 인사였다.
간판 글씨가 대부분 벗겨져 있어 여기가 거기가 맞는지 재확인을 거듭했다. 캄보디아 불교센터에 들어선 똘라는 기함했다. 인터넷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허름한 외관에 처음 놀랐고, 스님의 청빈함에 쭉 놀랐다. 스님의 방에는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꿈에 나올까 무섭게 녹이 슨 불상 하나와 다리마다 편평한 돌을 괴어 균형을 맞춘 자그마한 좌식 책상, 그곳에 어지러이 쌓인 서류 더미가 다였다.
"스님,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을까요?"
똘라가 서류 귀퉁이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전문 통역사가 없어 센터 운영에 애로가 많긴 합니다만. 허허허……"
스님 앞에 선 똘라는 한국 욕부터 선보였다. 스님은 개새끼를 비롯한 갖가지 한국 욕을 찰진 크메르어로 직역하는 일류대 출신의 언어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방대한 양을 오로지 엄마에게 배웠다니. 아이고 부처님, 아이고 부처님, 하며 하마처럼 입을 벌리고 웃었다. 똘라는 하마처럼 웃기만 하는 스님에게 비밀 병기인 영어 욕도 선보였다. 하지만 멋쩍게 정수리를 긁을 뿐 스님은 일류대 출신에게 선뜻 통역을 맡겨오지 않았다. 똘라는 그날의 커피숍을 떠올렸다. 사비를 털어 추모식을 치르는 건 예사지요, 하며 대형 스크린 속에서 스님은 그날도 가만가만 정수리를 긁었었다. 대부분의 인력을 봉사 단체에서 조달 중이라는 스님은 안정적 급여를 지급하며 정직원을 고용할 형편은 아닌 듯했다. 도울 일이 있을까요, 라고 물어야 했나. 똘라는 아차 싶었다. 스님은 유명한 만큼 가난했다.
똘라는 캄보디아 불교센터를 자주 찾았다. 자발적이었다. 스님은 각국의 노동자들과 함께 병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느라 늘 바빴다. 센터에는 복도에까지 서류가 쌓이기 시작했다. 무심코 집어 든 서류의 번역은 오류투성이였고, 그것을 바로잡자마자 똘라는 다른 서류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스님을, 그들을, 스스로를 돕기 시작했다.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머리에 가슴에 기름기가 돌았다. 이런 자신을 본다면, 엄마가 가장 기뻐할 것 같았다. 유독 노곤한 일과를 마친 날이면 똘라는 엄마와 대작하는 꿈을 코스처럼 꾸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나서는 스님이 걱정되어 따라나선 한 추모식에서 똘라는 스무 살 동갑내기 도다리를 처음 만났다. 툭하면 대작하자고 불러내는 친구를. 엄마를 능가하는, 친구를. 자신의 꿈을, 꿈으로만 두지 않은 그 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