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by 박민아

첫 방문에 실망한 식당으로 다시 가야 하는 날이 있다. 선택지는 많지 않은데 집밥은 먹기 싫은 날. 그럴 때는 패자부활전을 열어야 한다.


어느 날은 쌈밥이 먹고 싶다. 흰 쌀밥을 상추 위에 얹고 매콤하게 양념 된 돼지고기를 함께 곁들이는 것. 청양고추가 있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관계없다. 그래도 상추나 깻잎은 있어야지. 가끔 적겨자나 치커리를 주는 식당도 있다. 그럼 참 좋다.


이 식당은 결혼 초 남편과 함께 돼지갈비를 먹으러 갔다가 실망한 후 다시는 가지 않는 곳이었다. 심지어 우리는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냄새만 좋네. 다들 속고 있는 거야.”라며 흉을 봤다. 안 가면 그만인데 왜 그랬을까? 근데 정말 냄새는 기가 막혔다. 배가 불러도 그 냄새만 맡으면 식욕이 돌았다. 나는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식당에서 쌈밥을 팔고 있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줘, 말아? 점심 한 끼 망치는 일만큼은 하기 싫다. 그렇지만 오늘은 혼자니까 맛이 없어도 나 혼자만 감당하면 되는 일. 일단 도전해보기로 한다. 점심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식사하고 있는 사람이 제법 많다. 둘 중 하나였다. 실제로는 괜찮은 식당이었거나, 아니면 손님들 모두 점심 정도는 썩 맛있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앉아있거나.


5가지의 밑반찬과 뽀얀 미역국. 상추와 깻잎, 청양고추까지 듬뿍. 동공이 흔들렸다. 정갈하고 맛깔스러워 보이는 반찬이 나를 유혹했다. 얼갈이를 된장에 무친 나물도 있었다. 이미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여기서 안심하긴 일러.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막 나온 제육 볶음을 입에 넣었는데.


아니, 이거 맛있잖아!


실망했던 식당에 애정을 갖는 일은 그나마 간단한 패자부활전일 것이다. 홀린 듯 샀는데 입고 나갈 때 보니 영 안 어울리는 옷이나 반쯤 읽다 재미없어서 덮어둔 책도 마찬가지다. 다시 입거나 읽게 되어도 혹은 그렇지 않아도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아닐 테니까. 더구나 식당과 책과 옷은 세상에 많고 또 많다.


그렇지만 이런 건 어떨까. 한 몸처럼 붙어 다녔으나 지금은 별 이유 없이 연락도 않는 지인들. 상대는 모른 채 나 혼자 마음 상해 더는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 5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순식간에 떠나온 회사. 직장인이라는 타이틀과 경력.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당에 가지 않는 문제처럼, 그러다 또 문득 생각나 다시 가보는 마음처럼 어쩐지 간단하지가 않다.


나는 자꾸 뒤돌아본다. 내가 놓아버린 것들을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너무 쉽게 돌아서 버린 게 아닐까. 뭔가 더 있을 수도 있는데. 돼지갈비는 영 형편없지만, 제육볶음은 잘하는 그 집처럼. 그 친구에게도, 직장인이라는 내 이름표에도 분명 다른 괜찮은 것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쌈밥집만큼의 기회는 주었어야 했을까. 아니지. 실망했던 식당에 한 번 더 가보는 일과 애초에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 일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내 마음을 떠난 모든 것에 다시 기회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건 뒤 돌아보지 않고 떠나와야 할 테니까.


인생은 선을 긋는 문제라고 말했던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 번 그어놓은 선을 절대로 번복하지 않을 배짱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편할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나의 선택을 믿어보는 일. 그러나 삶의 긴 여정에서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일과 마주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한다. 핑계는 없이 담백하게 이야기하겠다.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이렇다고. 쓰고 보니 조금 모양 빠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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