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서먹하지만 친해지려고 노력 중
'운동'이랑은 나 혼자만 느끼는 섭섭한 감정이 많다. 왜 나는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그건 운동이 나를 싫어해서 그래.' 나는 태어나기를 운동과는 거리가 멀게 태어나서 그렇다는 핑계로 학창 시절 체육 수행평가는 항상 반에서 잘해봤자 뒤에서 3번째였다.
그래도 나는 원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화도 안 났었다. 살을 빼려고 했던 생각도 없었고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날씬하다면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던 내가 걷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차가 없어서 매번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데 정류장을 향해 걷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 때문이다. 10분이 20분이 되고, 1시간이 되고 쌓이다 보니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의식하고 걷는 것은 아닌데 걷다 보니 주변 풍경도 보이고 더워지는 나의 몸에서 삐질거리는 땀방울들이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핸드폰이 아닌 주변 나무와 풀을 바라보면서 걸으면 괜히 자연과 친해지고 건강해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나는 필라테스에 입문한 지 3년 차이다. 그동안 나는 줌바댄스, 스피닝, 줄넘기, 요가 등 다양한 운동에 도전을 했었다. 줌바댄스는 웨이브를 못해서 같이 하는 아주머니가 젊은데도 왜이리 못하냐며 한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도전을 하면서 얻게 된 감정은 뚜렷했다. 못해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줌바댄스와 스피닝을 하는 젊은 친구는 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내가 낸 돈이 아까워서 돈낸 만큼 갔었다. 간혹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의기소침해지면서 속상하기도 하지만 꾸준함이 나의 무기라고 생각하니 못할 것이 없었다. 못하면 매일 나가서 연습하면 되지, 누가 못한다고 점수 매기는 것도 아닌데 내가 못할게 뭐 있지?라고 생각하니 운동이 크게 부담스럽게 생각되지 않았다. 헛둘!
그래도 한 가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바로 편한 것을 찾는 게으름이 문제였다. 여행을 길게 가거나, 운동을 하기 힘든 컨디션이라고 생각될 때 운동을 하루 이틀 멈추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되었다. 일주일이 이주되고 이주가 한 달 되고 그러면 이제 나의 몸과 생각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운동하지 않아도 건강하고 날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차오를 쯤이면 운동이랑 사이가 멀어진 것이다.
다시 운동을 하려고 하면 무거워진 몸뚱아리 마저 나를 거부하는 것이 느껴진다. 중력을 거부하기 싫다면서 다리가 안 올라가고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이 상태가 되면 정말 힘들다. 운동이라는 것이 숙제로만 느껴지는 시기에 잘 극복을 해야 한다.
나는 이 주기를 매번 겪고 있다. 운동에 대한 자신감과 뿌듯함이 가득 차오르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파사삭 식어버리는 이 심장박동 같은 주기를 말이다. 운동이랑 친해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참 너무 어렵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야 머리가 돌아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운동으로 느낀 뿌듯함과 성취감이 내가 다른 무언가를 하는데 도움을 주고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 같다. 오히려 운동하면 책도 눈에 잘 들어오고 잠도 잘 온다. 일석삼조의 행동인 것이다.
우울한 날이거나 머릿속에 걱정이 많은 날은 오히려 땀을 흘리는 것이 좋다. 몸에 집중하다 보면 내 머릿속의 상념은 지금 생존의 기로에서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숨이 벅차서 죽기 직전인데 복잡한 걱정과 상념이 무슨 대수일까? 초반의 힘듬만 견뎌내면 운동으로 진이 빠진 나의 몸이 개운함을 느끼면서 걱정은 사라진다. 운동을 마친 후 먹는 물 한 잔의 여유가 나의 숨을 돌리고 나를 더 활기차게 만들어지는 기분을 느낀다면 오늘 하루도 정말 잘 보냈다는 신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