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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Mar 10. 2024

부모와 안전 이별하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혼자 살아갈 결심.

아빠가 그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죽음이 가깝게 느껴진다고. "두 다리 두 팔로 건강하게 살아갈 날 10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시들어가는 10년이면 삶이 꺼져가지 않을까" 육십을 앞둔 아빠는 묵묵히 말했다.


나의 부모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에도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고민한다. 젊었을 때와 다르게 힘에 부치게 버는 돈을 쪼개 여생을 보낼 준비를 하는 거다.




그럼에도 서른이 훌쩍 넘은 자식인 나는 아직도 결혼이 낯설다. 규칙적인 수입이 생긴 후에 약소한 생활비를 부모에게 건넸으나 그 돈마저도 조금씩 모여 결국 내 청약 통장에 입금되는 식이였다. 가사노동에서 은퇴하고 싶은 나의 엄마 그리고 자식들을 계속해서 부양하는 게 부담스러운 나의 아빠. 그 생존과 아주 밀접한 고민이 장성한 자식의 세계와 지속적으로 마주치면서 전과 다른 새파란 스파크가 튀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집에서 생활하는 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일처럼 위태로워졌다. 내가 삼십대라는 말은 부모가 나를 곁에 둔 지도 삼십 년이 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장실을 가거나 요리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부모의 살림살이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사사로이 지적당했다. 집에서는 자주 큰 소리가 나거나 날 선 침묵이 오갔고, 우리는 오직 상처만 주고받았다. 서로가 각자의 세계를 지키고자 몸부림쳤다. 퇴근 후 나는 방 문을 걸어 잠근 채 몸을 최대한 작고 낮게 웅크렸다. 마음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 영화를 쏟아지게 보고,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었다.






독립을 선언하는 순간은 날렵하고 정확하게 꽂히는 화살촉처럼 분명하게 온다. 집 밖에서도 어깨를 움츠리며, 세상을 뾰족하게만 바라보는 나를 발견할 때. 이런 생활들이 모여 내 성격이 되고, 부모의 삶을 구성할 거라는 확신이 들 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선명한 결심이 선다. 혼자 사는 일은 막연한 상상과 닮아 있다. 고요한 방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조용히 문장을 적는 걸 가능하게 한다. 그렇지만 독립이란 인생에서 벌어본 적도 없는 큰돈을 빚지며 심장을 부여잡게 하는 일이기도 하고, 10년 넘게 정든 동네와 갑자기 이별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독립한 첫 주에는 바지런하게 집안일하다 녹초가 되어 까무룩 잠들기도 했다. 부모에게 낯간지러운 안부를 묻고, 세대주의 자격으로 주민세도 내봤고, 녹슨 주방도구를 말끔하게 세척하는 법을 알게 됐다. 배도 자주 고팠고 사소한 걸로 깔깔거렸다. 반면 부모의 일상에도 숨 돌릴 틈이 생겼다. 어쩌면 아주 진작에 당연히 누렸어야 할 안도감이 우리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하루를 오롯하게 내 힘으로 끌어가는 일은 삶에 대한 태도를 큼직하게 바꿔 놓는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들여다볼 수 없던 소중한 것들을 비로소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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