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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Mar 24. 2024

혼자 살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의외의 이유

나 진짜 혼자 산다.

바닥 노려보기. 어처구니없지만 독립하자마자 몇 달간 내려놓지 못하던 일이다. 갓 이사 온 내 집엔 먼지 한 톨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자꾸 바닥만 들여다봤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발견하면 곧장 청소기를 들이댔다. 젓가락 하나를 쓰고 곧바로 고무장갑을 끼던 정성도 이내 저녁에 몰아서 설거지하기로 극적으로 타협했다. 물론 지나쳤던 청소 병은 말끔히 나았다. 순식간에 너저분하게 쌓인 책을 지나쳐 침대에 곧바로 다이빙하는 강철 심장으로 성장하고야 말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신기하게 느꼈던 건  아침에 내가 아무 데나 내려놓은 물컵이 퇴근하고 돌아와도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모와 함께 살 때였다면 분명 누군가의 손을 거쳐 다시 원상 복구되어 있었을 거다. 내가 아침에 물컵을 어디에 뒀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독립에는 스스로가 저지른 어지름을 홀로 수습하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왜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엄청난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엄마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 끝이 야물딱진 애‘는 아니었다. 신경을 써서 정리 정돈한다고 해도 부모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무언가 노력하고 행동할 때마다 따라오는 잔소리 덕분에 되려 아무것도 안 하며 소극적으로 지냈다. 그런데 오늘의 나의 집에선 물을 엎질러도, 컵을 깨 먹어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내가 저지른 실수를 크게 자책하다가 눈치채 버렸다. 자꾸 수습하면서 살아도 그닥 큰일이 벌어지진 않는다는 걸. 그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엎질러진 물과 깨진 컵 그리고 나. 숨을 크게 내쉬고 마음을 다잡고, 어질러진 살림을 느긋하게 정리한다. 원하는 시간을 들여 원하는 만큼. 어떤 여유와 자존감은 이렇게 자란다. 실수하고 수습하며 살아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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