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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Apr 07. 2024

소녀시대를 보고 다이어트한 여자들

깡 마른 소녀들을 보며 자랐다.

마른 몸에 열광한 시절이 있었다. 보통보다 약간 작은 몸으로 10대를 살아가던 내게도 TV 속 아이돌처럼 깡 마른 몸이 근사하게 보였을 때가 있었다.


애처로웠던 나의 스물 하나는 갑자기 시작된 기숙사 생활에 텅 빈 자유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았다. 누구든 붙잡고 앉아 별 탈 없는 감정에 트집을 잡기도 했고, 평생을 걸쳐서 나눴어야 할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빼꼼한 지식으로 나눈 대화가 끝으로 향할 때쯤 누구 하나 작은 카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침묵한 채 앉아 있었다. 텅 빈 방으로 돌아가 외로움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마주 앉은 이들과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선 자주 음식이 필요했다. 평소에 잘 먹지 않았던 야식을 꾸역꾸역 먹었고 치킨과 맥주를 시켜 침묵을 꼬빡 채웠다. 불면증과 함께 불어난 몸뚱이는 스키니진을 입은 소녀시대의 몸과는 많이 달랐다. 자기혐오를 견딜 수 없었을 즈음 인생 최초의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나의 첫 다이어트는 덴마크 다이어트다. 계란, 자몽, 블랙커피. 식사를 최소한으로 줄이자 나도 모르게 뾰족해졌다. 일주일 가량 제한된 음식을 먹자 3kg가 쭉 빠졌다. 물론 체중계 위의 작은 숫자에 갇힌 인생은 기쁘지 않았다. 아니 비참했다. 강렬한 다이어트가 끝으로 더 헛헛해진 마음을 금세 음식으로 채웠다. 당시 나는 술안주로 나오는 견과류에 완벽하게 꽂혔었는데 대형 마트에 가면 김치통만 견과류가 만 원쯤이었다. 한 줌, 두 줌 오독오독 씹으면 달큼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불안으로 뒤덮인 날엔 그 커다란 통을 이틀, 삼일 만에 비우는 지경에 다 달았다. 이쯤 되니 '먹는다'는 행위는 불안함을 일시적으로 해소시키기 위한 구강 운동처럼 변모해 버렸다. 끔찍하게 외로웠던 시절이었다.


독립한 삼십 대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먹는 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 20대 때보다 몸무게가 훌쩍 늘었지만 더 이상 내 몸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몸을 부분 부분 쪼개서 평가하지 않을 때 내 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눈치채 버렸다. 오늘의 나는 좁디좁은 작은 부엌에서 때때로 엄마가 해줬던 시래깃국을 끓이고, 이따금 깻잎을 듬뿍 넣은 소라를 무쳐 먹기도 한다. 고기를 혼자 다 골라 먹어도 등짝 맞을 일 없는 김치찌개와 겨울 무를 넣은 굴밥을 밥상 위에 올린다. 나만의 작은 부엌에서 시작된 집밥의 역사가 최초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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