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 Apr 14. 2024

아직 첫 번째 집에 삽니다만

서른 중반,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2년 전쯤 첫 차로 중고차를 샀던 친구들은 10년을 타고 새 차를 샀다. 가격만 보고 골랐던 첫 차는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반영된 기종과 디자인으로 변했다. 반면 열아홉 살 때부터 '어차피 차도 못 사는데'를 시전하며 운전면허 따기를 미뤘던 나는 이제서야 아차 싶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뚜벅이로 산지 30여 년. 차를 사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언젠가는 운전하는 삶을 살 거라는 막연한 상상은 기어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작년 12월 회사를 관두고 단호히 결심한 후에야 수능이 끝난 친구들 사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면허를 땄다. 물론 자차 없는 초보 운전자에게 운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비로소 아주 작은 중고차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을 꽤 진지하게 하고 있다. ‘운전하면 일상을 상상하는 바운더리가 넓어진다'는 가능성을 내 삶에서도 펼쳐보기 위해서.


서른 하나에 독립을 선언하고 4년이 지났다. 30대 초반까지는 언뜻 비슷비슷한 사정에서 사는 것 같았던 친구들의 주거 형태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누군가는 결혼했고, 누군가는 혼자 살 집을 더 단단히 정비했으며, 누군가는 다시금 부모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과거 10년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의 궤적과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계획이 반영된 선택이다. 일찌감치 독립을 시작했던 친구들은 이사를 거듭할수록 더 나은 집으로 향해갔다. 자신의 힘 혹은 부모의 도움을 받은 이들의 생활 격차 역시 자연스럽게 커졌다.


작년 한해는 유독 주변에서 이사를 많이 했는데, 청년버팀목대출에 해당되는 '청년'의 나이가 만 34세까지이기 때문이다. 치솟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청년들은 마지막 복지의 끄나풀을 잡고 이사를 단행했다. 대출이 되는 최대 금액인 2억과 자신의 전재산을 보태어 보다 나은 곳으로 이사 갔다. 원룸에서 거실이 있는 집부터, 구옥이지만 직접 리모델링을 감행한 집까지. 아마도 이들은 앞으로 최소한 6년 이상은 지금의 집에서 살아갈 거다.


'냉장고와 같은 공간에서 자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구한 첫 번째 집은 4년째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내년 봄이면 계약 기간이 끝나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앞으로 약 6년여간 어떤 삶의 모양으로 살 건지에 대해 곧 확신할 수 있게 될까? 더 큰 빚을 감당하며 살아갈 용기를 가지게 될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모르겠지만 내가 믿는 단순한 진실 하나는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변화가 시작된다.


이전 08화 소녀시대를 보고 다이어트한 여자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