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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May 12. 2024

우리 집 여름 맞이

사계의 축복은 살림에도 온다.

집 앞에 기가 막힌 수선집이 생겼다. 급하게 만든 간판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귀여운 블러셔를 하신 주인아주머니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맞이해 주셨다. 사람 마음이 한 끗 달라 고객의 컴플레인을 수시로 받아야 하는 게 수선집에 운명 아닌가. 주인장의 봄 꽃 같은 미소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야무지게 고쳐진 옷을 돌려받을 때마다 마음이 팔랑거렸다. 단정하게 정비된 옷을 찾아온 날이면 훌륭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밑창 닳은 신발 굽을 현금을 탈탈 털어 고친 날도 그랬다.


벚꽃 잎이 떨어지니 연둣빛 잎이 보인다. 계절이 변화하는 순간 겨울 아우터를 언제 세탁할지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작년에 맡긴 세탁소가 썩 맘에 들지 않아 안 입는 겨울 아우터를 꺼내 차곡차곡 쌓아둔지 몇 주째다. 의자 위로 산처럼 쌓인 옷더미를 바라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안타깝지만 뚜벅이는 모든 옷을 세탁소에 한 번에 맡길 수 없다. 이 지난한 싸움은 장기전이 될 운명이다.


커다란 배낭에 무작정 코트 두 개를 구겨 넣고 자전거를 빌려 탔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주택들 사이를 구불구불 오가야 작은 세탁소가 나온다. 세탁이 끝나면 옷걸이에 걸린 아우터를 자전거에 실을 수 있을까? 거리를 가늠하다 세탁소 앞을 맴돌곤 겨우내 입은 옷을 도로 집에 가져왔다. 기어코 세탁 앱으로 맡긴 겨울 옷은 각각 얼마의 세탁비가 책정될지 알 수 없다. 담당자가 내 옷을 받아 가격을 통보하면 등록해 둔 카드로 자동으로 결제되는 시스템이다. 독특한 소재가 재밌어서 산 패딩은 세탁하는 데 4만 원이 든단다. 배보다 배꼽이 커도, 울며 겨자를 먹어도 돌이킬 방법은 없다.


어쩐지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옷장 앞에 선다. 지나간 계절 옷을 전부 꺼내 옷장 구석부터 차례차례 걸어둔다. 상자 속에 꼭꼭 숨겨뒀던 여름옷은 옷장 1층으로 꺼내 둔다. 계절을 맞이하는 기준은 심플하다. 산책을 나가 숨을 깊게 들이쉰다. 곧 초여름 냄새가 나면 얇은 이불을 꺼내고, 작년 여름에 씻어 놓은 선풍기를 꺼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바람이 좋아 활짝 열어둔 창문 덕분에 빨래가 잘 말라 기쁘다가도 창밖 층간 소음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찬 바람이 불면 한 계절 잘 쓴 선풍기를 정돈해 창고에 넣어둘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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