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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30분 종이 울렸다

기꺼이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에 대하여.

by BYEOT May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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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새벽 4시 30분. 누구도 벨을 누르지 않을 시간에 벨이 울렸다. 자다 깨 시계를 보고 심정이 덜컹거렸다. 1층에서 누른 벨이었다. 화면 속엔 한 남자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고요한 새벽. 아무도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무서웠다. 벨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려서 덜컥 인터폰을 연결해 다부진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세요!!" 잠깐의 적막 끝에 꽤 난처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팡 기사인데요. 현관문 비밀번호가 틀려서요." 아뿔싸. 오전에 주문한 식료품이 떠올랐다. 순간의 실수가 한 편의 공포 영화를 방불케 했다. 잠깐의 해프닝이었지만 불현듯 찾아온 공포는 진짜였다.


독신 여성의 집에서 벌어진 범죄에 관한 끔찍한 뉴스를 볼 때마다 문단속을 단단히 하게 된다. 이 시대의 혼자 사는 여성이 자신의 돈으로 현관문에 이중 잠금 고리를 달고, 험악한 가짜 이름을 지어 택배를 받는 건 그다지 유난한 일이 아니다. 구글에 '택배 이름'이라고 검색하면 곽두팔, 조북천 등 강한 어감의 남성 이름 리스트가 줄줄이 나온다. 프라이버시 따위 없는 서울의 집에 사는 나는 1년에 330일 정도는 집에 있는 커튼을 모두 닫고 산다. 앞 집과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 밤이면 건너편 건물에 사는 이가 TV로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지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오는 모든 택배를 아빠 이름으로 받고 있는 것도 물론이다. 이따금 관공서에서 오는 문서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아마도 낯선 이가 내 집에 어떤 성별의 사람이 사는지 쉽게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크고 작은 노력은 이사 첫 날부터 이루어졌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혼자 사는 일에는 퇴로가 없다. 누군가는 독립이 진정한 자유라고 노래하지만, 이는 불편한 타인과 제대로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새벽에 술에 취해 층수를 착각한 이웃이 나의 집 문을 열려고 하거나 윗집에서 밤새 천장이 울리도록 파티하는 걸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의 어려움은 스스로를 먹이고, 치우고, 재울 때만 있는 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문제를 홀로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할 때 진짜 삶이 펼쳐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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