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왼손잡이앤 Feb 08. 2022

시댁 주방에 출입금지가 풀렸다.

어설픈 여자의 결혼 이야기 3

이전 글->

시댁 주방에 출입금지를 당했다. (brunch.co.kr)

시댁 주방에 출입금지를 당했다 2 (brunch.co.kr)


나는 그렇게 결혼하고 쭉 주방 근처만 어슬렁거렸다. 

아이들과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문득 내 모습이 보였다.

나의 모습은 꼭 사자 주위를 배회하는 하이에나 같았다. 


그렇게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굉장히 불편한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다.




컵 하나 깨졌다고, 컵처럼 사소한 일 하나 틀어져 버렸다고, 

내 기분까지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중략)

대체품을 가진 어떤 물건이나 일 때문에 대체 불가한 유일무이의 나를 원망하거나 내 기분을 마치는 행동은 그만두고 싶다. 내 기분이 나를 홀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중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2022년 벌써 새해가 밝아왔다. 

주말도 바쁘게 일하는 신랑 때문에 시댁에 간지가 꽤 되었다.

설날이어서 시댁에 간 날... 나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잘해보자고'


"어머님 이젠 저도 손이 꽤 여물어졌어요. 설거지 제가 해볼게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시면서 시아버님이 일어나셨다.

"아니다. 그냥 있어라."


막무가내로 고무장갑을 끼고서 폭신폭신한 (수세미) 그가 좋아할

 진득하면서도 향기로운 퐁퐁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그 모습이 꼭 피곤에 지친 나에게 커피를 수혈해주는 모습과 유사해서 나는 피식 웃음이 난다.


집에서야 접시를 깨든 말든 누가 잔소리를 하나 

누가 보기를 하나

혼자서 치우고 나면 끝인걸...

이게 뭐라고  시댁만 오면 긴장이 되는 건지...


손에서 힘을 뺐다. 늘 긴장이 되어서 깨뜨리고 깨뜨렸던 수많은 접시들....(미안)

어쩌면 잘하려고 했던 나의 욕심의 결과가 아녔을까?


요리는 못하니깐 설거지라고 잘해야지 하는 나의 마음이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가게 하고

나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조심해 조심해 이런 신호를 보냈던 거 아닐까!!!



화, 분노, 두려움이 폭발하면 편도체가 주인이 되어 뇌를 끌고 간다.

<버츄프로젝트 수업> 중



나는 더 이상 전두엽이 아니라 편도체에 지배당하는 나의 뇌를 

두고 보지만을 않을 작정이었다. 


고작 접시 하나인데 뭘~깨면 어때서 

라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설거지를 하니 

드디어 드디어 나는 아무 일 없이 설거지를 끝내게 되었다.


안절부절못하시던 아버님을 보고 나는 활짝 웃으면서

"아버님 저 이번에는 접시 안 깼어요."

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래 , 수고 많았다."

안심하신듯한 옅은 미소를 지어주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신랑이 무심한 듯 툭 던진다.

"오늘 숙오했어. 고마워"


나는 내 손에게 말해주었다. 

"무사히 설거지한 내 손 잘했어."


물론 시댁 주방문이 활짝 열린 건 아니지만 

(요리를 못해서)

그 좁은 문으로 서서히 나를 들여보내는 용기를 내어보련다.








이전 02화 시댁 주방에 출입금지를 당했다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