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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 Oct 25. 2024

분실물

언제부턴가 그림을 잃어버렸다

시시하고

지루하고

어디서부터일까

무엇이 잘못된 건가

나태해지지 않으려 했는데

점점 게을러졌고

점점 모른척했다

그러다 결국 잃어버렸다


시시하다는건 재미가 없다는 것이고

재미가 없다는 건 관심이 없다는 것이지

모든 게 시들해져간다

자연스레 멈출 수 없던 나의 손가락

밤새 부릅뜨고 응시하던 나의 눈동자

쉼없이 폭발하던 나의 감정들

잃어버렸다 모두

찾으려하면 찾을텐데

보려하면 어디선가 보일텐데

일부러 지나친다

그냥 잃어버리고 싶다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아직은 모른 체 하고 싶다

다 잃은것이 아니기에

잃어버린 곳도 알기에

잠시만 홀가분하고 싶다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마음이라

잠시만 놓아주고싶다


여백의 아름다움이

압박으로 얼룩져 있었다

새하얀 바탕조차 밀도있게 다가왔다

그 어디에도 틈이 없었다

잠시만 숨을 내쉴 곳

잠시나마 내 얼굴이 보이는 곳

그 흰 바탕이 안개처럼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이 막혀 있었다

유일한 나의 공간

유일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던 곳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잃어버렸다

나의 감정 나의 열정 나의 그림

나와 관계된 유일한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잃어버린 마음들을 보관하는 곳이 혹시나 있을까

분실물센터를 괜히 기웃거리다 혼자 피식 웃는다

누구든 찾는다면 그게 나라고 말하고 싶어서

아주 잠시만 방랑하는 마음을 공감받고싶어서

일부러 버려졌거나 모르고 잃어버린 그들속에서

나는 사실 돌아갈 곳을 안다고 말하고 싶어서

스스로 택한 버림이라 당당하다고

그나마도 나는 다르다고 위로받고 싶어서

참으로 빈약한 맘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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