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영은
늘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정물화였다
짙은 갈색의 원형 테이블 위엔
창백하게 빛나는 하얀 레이스가 늘어져 있다
태양 빛을 머금은 붉은 장미와
새벽녘 이슬 방울 간직한 생생한 초록잎이
투명한 유리병 안에서 서로 지지않는 빛을 발한다
나는 늘 그렇듯 꿈인걸 안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분홍빛 물잔 하나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커다란 직사각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을 본다
하늘빛 커튼이 바람에 살랑거릴 때
애착 붓 하나 들고 햇살좋은 풍경을 담아본다
분명 시작은 정물화였건만
늘 마무리는 풍경화다
보고싶은 것과 봐야 하는 것
지우고싶은 것과 지워야 하는 것
이 괴리감이 늘 나를 꿈꾸게 한다
하고 싶은 마음과 해야 하는 마음의 거리
잊고 싶은 마음과 잊어야 하는 마음의 길이
이 차이가 늘 나를 잠 못들게 한다
꿈과 현실사이의 거리는 이미 사라졌다
꿈에서도 현실에 있었고
현실에서도 늘 꿈을 꾸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나의 세계는 괜찮은 건가
괜찮은 현실에서 나는 왜 허상을 보는 가
허상은 허구이자 헛된 꿈인 건가
헛된 마음과 가상의 공간에서 나는 괜찮은 건가
내가 꿈꾸는 것은 내가 맞닿은 곳인가
마주보는 것
바라보는 것
나를 지치게 하는 기억의 쳇바퀴
마치 꿈처럼 마치 현실처럼
오늘도 들락날락,
노오란 물컵 뒤로
회색 장대비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