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가 윤우는 태어날 때 태변을 먹고 나와, 산소포화도가 매우 낮은 상태였다.
나는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아가 걱정에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면회 온 남편에게 계속해서 윤우의 상태를 물었다. 다행히 태변은 모두 뱉어냈고, 산소포화도도 곧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했다.
‘약하게 태어난 아이가 자라면서 더 건강해진다’로 스스로 위로하곤 했었다.
얼마 전, 윤우는 생소한 이름의 병, '크룹'에 걸렸다.
크룹은 바이러스로 인해 후두가 부어 기도가 막히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특히 신생아에게는 더욱 치명적인이라고 했다. 며칠 전부터 컹컹거리는 기침 소리와 함께 숨 쉬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가족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엄마의 직감은 달랐다.
윤우의 숨소리는 마치 "제발 한 번만 더 봐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곧 119 건강센터로 연결되어, 수화기 너머로 아가의 호흡 소리를 들려주었다. 직원은 숨소리가 좋지 않다며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인근의 병원 리스트도 함께 보내주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걱정을 억누르며 짐을 챙겨 아가를 안고, 남편과 함께 24시간 운영하는 소아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우를 안은 채 터질 듯한 눈물을 겨우겨우 삼켰다. 도착하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로 아가의 숨소리를 들었고, 병명은 크룹이라고 했다.
산소포화도가 낮아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는 말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 힘겹게 울고 있는 윤우는 남편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연신 “미안해”를 되뇌이며 몸부림치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곧바로 고대 안암병원으로 전원이 결정되었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순간,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가를 지켜주세요.'
그렇게 윤우의 첫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가장 작은 환자복마저도 윤우에게는 너무 컸다.
양손, 양발에 주사 바늘을 꽂은 채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도, 윤우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엄마에게 힘을 내라고 이야기 하듯 옹알이를 했. 나는 그 모습에 눈물이 자주 흘렀다.
퇴원을 예정하던 날 아침,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퇴원이 연기 되기도 했었다. 또 한번의 시련을 경험하며 절망할 뻔 했을 때, 그날 밤 조용히 아가를 안고 있는 내게 나지막이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내 아이를 아프게 사랑하듯 나의 하나님도 나를 이렇게 안쓰럽게 사랑하시는구나.'
나와 내 아이의 사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위로를 받고 곧 퇴원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틀 뒤 퇴원을 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간의 입원 생활동안 나는 느꼈다.
나를 만나러 와준 첫날에도 그랬듯 우리 아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라는 걸.
작고 여린 몸으로 낯선 병실의 시간을 견디고, 숨이 가쁘던 밤을 이겨낸 윤우는 조용히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강인함 덕분에 나는 오늘도 아가를 믿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절망 끝에서도 항상 내 손을 놓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그 따스한 손 덕분에 나는 항상 이겨낼 수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