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살 것인지, 미래에 살 것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원하는 삶이 있으면 그렇게 살면 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 우리가 살면서 괴로움을 느끼는 여러 순간들은 나의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 어김없이 온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갈등 상황들은 모두 자초하기 마련이다. A를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B의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는 괴롭다. 누군가가 A처럼 행동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예측과 달리 B와 같이 행동을 할 때 마음이 불편하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 분노 같은 부정적인 마음은 사회생활을 위한 가면 뒤에서 더 증폭되고 변주된다.
'나' 이외의 것들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깨닫는 것은 쉽다. 하지만 매순간 일어나는 자의적인 판단과 해석에 의한 고통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 살아온 패턴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관성이 커서 고통의 원인을 안다 하더라도 실제로 원인을 통제하거나 제거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이 내 자신이라는 착각은 자아가 형성된 이후 유아기부터 수없이 반복하는 습관으로 이미 견고하게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자신이 경험한 내용 안에서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내면화된다. 이런 작동 원리를 알아채는 게 첫번째, 그 다음은 고리를 끊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기 중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습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이럴 수가? 왜 나에게만? 그 사람은 왜 이러지?"와 같은 질문은 대다수 자신기 기대하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와 다른 양상의 전개가 이루어질 때 생겨난다. 문제 발생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자신의 잣대가 완벽하게 옳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판단하고자 하니 억울함,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면 타인을 붙잡고 소위 자신이 당한 일, 괴롭히는 사람 등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면서 인정과 공감을 구걸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저런 방식의 에너지 발산이 자신의 감정을 삭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 그 행동이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처리하고자 타인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던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추후 또 다시 나타나 괴로움을 야기하거나 더 큰 문제로 확장될 것이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줏대없이 끌려다니면 과거에 얽매여서 항상 불만만 쏟아내고 타인까지 함께 괴롭게 만드는 볼품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즉, 자신이 현재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저런 패턴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대로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생각을 바꾸면 된다. 내 마음에 다른 것들을 맞추려고 애쓰면서 에너지 낭비하는 것을 줄이고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게 시작이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상식에 어긋난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기분이 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나에게만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다기 보다 높은 확률도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자신이 맞닥뜨리는 상황과 사람을 자기만의 기준과 상식에 빗대어 곱씹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만 중지해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상황과 사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만 버려도 지나간 문제에 집착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을 서서히 줄여나갈 수 있다. 그 시간에 문제 해결 방법을 강구하고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착수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한다면 정말 생각하는대로 살 수 있다. 결국에는 처음에 목표했던 것, 바라던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 원하는 삶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