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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Mar 24. 2020

귀신은 가짜로 있다고 할까요?

이름도 어려운 육식 공룡 오르니톨레스테스. 요즘 들어 공룡에 푹 빠진 첫째가 제일 좋아하는 공룡이다.

머리를 두 가닥 뿔처럼 묶어달라고 주문한 뒤, 자주 공룡 그 자체가  는데 나로서는 난감할 때가 많다.


제일 난감할 때는 이럴 때다.


신데렐라 읽고 난 뒤,

"엄마, 신데렐라 이할까요?"

"그래~ 좋아!"

"그럼 난 오르니톨레스테스!"

덩달아 둘째는 "그럼 난 포클레인!"


"그럼..... 엄마는 뭐할까?"

"엄마는 신데렐라 해요 "(요건 마음에 든다♡)


"그럼.. 모랑, 언니랑, 요정이랑, 왕자님은;;?"


음.. 가짜로 있다 할까요?


코코몽 시청 뒤

"우리 코코몽 놀이해요~~ 난, 오르니톨레스테스!"

옆에서 둘째가 "포클레인!"

코코몽을 비롯한 모든 진짜 주인공들은 가짜로 있다고 하기로 했다.


코코몽 나라에 공룡이랑 포클레인이 놀러 왔나 봐~~;;;


참 이상한 역할 배정이고 이야기는 항상 산으로 흘러 가지만, 이대로 아이들은 참 잘 논다. 가짜도 진짜 같은 아이들의 세계가 신기하다.




며칠 전, 오랜 기간 병상생활하신 70대 남자분이 점잖게 이야기하셨다.

"천정에 귀신이 있어요. 에어컨에서 빠져나와 나를 쳐다봐요."

소위 말하는 섬망 증상인데 일반적으로 횡설수설하시는 분이 많은데 반해 이분은 이상하리만큼 점잖게 이야기하신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말 하면 나만 이상해.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주치의한테 걱정하지 마라니, 이게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나름 이약, 저 약 써보고

원인을 알기 위해 혈액검사도 해보고,

간병 여사님들께도, 간호사 선생님들께도 잘 봐달라 부탁한 뒤  며칠 경과 관찰하니 다행히 증상은 꽤 많이 호전되었다.


오늘은 환자분이 많이 좋아졌다는 노티를 미리 받고 기쁜 마음으로 환자분께 갔다.

"아버님~ 좀 어떠신가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멀쩡해 보이셨던 것 같은데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씀하신다. 천정에 하나 있다고ㅜㅡㅜ


이럴 때는 가짜로 있다 해주시면 정말 좋겠다.



가짜도 진짜 같은 세계!


그런데..

그런데..


혹시 나만 모르고 있는 세계가 실제로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피터팬과 놀았던 때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환자분께 피터팬이 잠시 다녀간거라면, 부탁인데..


귀신은 가짜로 있다고 하자고 말좀 전해 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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