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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y 10. 2020

내 삶에서 9 to 6를 지우기로 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아가는 40대 경력단절 여성의 기록



제주도에 와서 나는 잔뜩 불렀던 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지면서 엄마가 됐고, 25kg 불어난 체중은 아직도 복부에 10kg 남아 있는 산후회복 중 산모다. 그런 상태로 매일 아기 4kg를 수십 번을 더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체력장 같은 일상을 살면서 다짐한다.

나는 지금 일하러 가는 희망으로 버틴다고 말이다.
만약 반복되는 이 육아가 내 일상의 전부였다면 산후우울증에 벌써 12층 오피스텔에서 뛰어내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몇 주 후면 다시 안정된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 내 사무실로 복귀한다는 희망, 전망 좋은 그 15층 사무실 책상 회전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만나며 업무를 한다는 희망이 있어 지금 이 시간들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아침이면 거울을 보며 얼굴을 정돈하고 예쁜 옷을 입고 옷에 어울리는 하이힐을 골라 신고, 현관문을 또깍또깍 걸어 나서는 그 경쾌한 소리를 다시 만들어 내고 싶어 몸살이 나다.

평생 일하는 여자로, 일하는 엄마로 살고 말 테다.

- 산후 육아일기 25일 차, 2016년 10월-  




자신의 일에 애착이 높을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기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건 깊은 공감에서였다. 일하는 것이 좋았다. 몸은 편할지라도 끝이 없는 휴식을 원한 적은 없었다. 사회활동을 하면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도 좋았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도 좋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늘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왔지 타인과의 경쟁을 해 본 적이 없다.  만약 팀을 짜서 시합을 한다면, 내가 속한 팀은 운이 없는 것이다. 경쟁에 관심 없는 나는 그 어떤 승부욕 불타오르지 않 때문이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한 과정을 즐다. 지금껏 해 온 요가, 수영, 피트니스, 인라인, 테니스, 최근에 시작한 클라이밍까지 누구를 이겨보겠다고 한 운동은 없었다.


그러한 나에게 육아라는 무한 시간이 주어졌다. 어느 날  "육아? 이건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거야!"라고 외친 적이 있었다. 그러에 계신 친척 아주머니께서는 "이 바보야, 그럼 그걸 몰랐어?"라고 정리해 주시는 바람에 뒷말을 잇지 못했더랬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하루하루 힘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여유게 시작하는 아침 . 아이가 잠에서 깨어날 때, 아이의 궁둥이를 두들겨 주고, 등을 마사지해 주고, 볼에 뽀뽀하고 발가락을 지긋이 깨물어 주는 행동들이 너무나 좋았다. 아이가 엄마의 이 사랑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내 유년시절의 결핍 때문이었다. 순간이었지만 특히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의 부재가 너무나 싫었다. 것이 아를 하며 '더 이상 직장생활은 하기 힘들겠구나' 생각하게 된 여러 이유 중에 다.




나이 마흔에 '초보'가 되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실내디자인학과에 입학하여 실내건축 전반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관련 자격증에 도전했다. 매일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돌아서 새벽 공기를 가르는 어미의 심정은 고통스러웠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엄마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내 아이에게만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 그럼에도 '이 준비기간을 버텨내자' 끊임없이 다짐하다 보니 여름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도전했던 두 개의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였지만 이 분야에서 나는 여전히 '초보'였다. 마흔에 초보가 되는 심정은 '아무도 내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는다'정리된다. 한마디로 초보인 나에게선 배울 게 없기 때문이다. 자격증 두 개를 앞에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아. 무. 것. 도. 없. 었. 다. 무모하게 [뿌쌍 실내건축설계사무소]창업해 볼까 생각했지만 동종업계 지인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다시 일하는 멋진 엄마가 되려고 시작했는데, 현실은 추운 겨울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 종일 고민에 빠진 '아줌마'였다. 그즈음 캐나다에서 온 P는 한국출장을 마치고 떠나며 캐나다에 본사를 둔 그들의 회사 한국 대표를 맡아달라 제안했다.


"뭐? 회사를 설립하라고?"       

"응, 우리 회사의 한국 대표를 맡는 거야. 한국 진출을 위해 네가 반드시 필요해"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나를 필요로 한다'는 말 가슴이 뛰었다. 그는 캐나다 돌아가자마자 임원진 회의를 통해 트너사 설립 동의를 알려왔다. 동시에 P의 회사 한국 내 세일즈 마케팅 & 컨설팅 계약서를 보내왔다.  


P의 제안대로 회사명을 정하고 법인 설립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P의 회사 제품 수입을 희망하는 국내업체와의 식약청 인증에 관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캐나다와 한국, 이메일과 전화통화(컨퍼런스콜)만으로 대부분의 업무가 진행되니 본의 아니게 재택근무가 시작된 셈이었다. 2019년 12월 그렇게 지나갔다.


아이를 등원시켜 놓고 돌아와  국내업체, 캐나다 회사와 전화 업무를 밤새 온 메일에 대해 회신하 정오 즈음이었다. 덕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정신적인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워졌다. 오랜 시간 해왔던 업무의 연장이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나는 '고수'였다.         




플랜 B 일을 하는 동안 플랜 A를 위한 고민도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리모델링 브랜드에 대해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실내건축에서 '초보'인 나는 뜻밖에도 내 이력을 인상 깊게 생각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해당 팀장의 전격적인 결정에 따라 해당 브랜드 예비사업자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틀 만에  자체 교육을 받기 위해 교육원에 입소했다. 강한 추진력이 장점인 해당 팀장 덕분에 나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잠을 4시간 밖에 못자면서도 매일 시험을 통과하고 교육을 수료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뭐든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던  초보자의 눈물어린 시간들.


교육기간 잠을 쪼개가면서 한 달 동안 열심히 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나는 한계를 느꼈다. 우여곡절 끝에 교육원 수료 후 현장교육을 시작다. 해당 팀장의 부탁으로 무지한 나를 받아주기로 결정한 대리점 대표의 호의에 힘입어 다시 새벽바람을 가르며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가야 하는 춘천을 매일같이 왕복했다. 현장교육에서는 배워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많았다. 점차 체력은 한계에 달했지만, 플랜 A와 플랜 B를 동시에 행하면서 무엇인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다시 여름의 문턱 5월이다. 겨우내 준비하고 또 쉼 없이 2개월을 달려온 덕분에 아이와 함께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여유 생겼다. 준비해 온 것들은 조금씩 생산적인 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이론교육과 현장교육을 통해 나름대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여 '2020년 여성창업경진대회'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 모든 과정은 즐거웠다. 창업에 필요한 상가 건물주와의 논의도 마쳤다. 그리고 며칠 전 트남 투자로 기울어  있캐나다 회사를 설득하여 캐나다 주정부부터 국내 진출을 위한 20만 불 투자지원을 확정했다. 또한 식약청 인증을 함께 준비해 온 국내 기업은 본격적으로 발주를 시작했고, 대형 유통망을 갖춘 국내 모기업과는 마케팅 전략에 관 논의 중이다.


지금까지 플랜 A 실내건축업에서는 '초보'가, 플랜 B 해외 마케팅에서는 자칭 '고수'가 하고 있는 시작 기록이다.  플랜 A와 B를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지게 일하는 엄마가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아마도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시간이다. 쩌면  모든 것은 아이가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당당히 말하련다.


 "더 이상 내 삶에서 [9 to 6]는 없다"  



[사무직의 배신]으로 시작해 초보가 역경을 딛고 창업을 향나아가는 과정의 기록은 계속됩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하여]

1. 사무직의 배신

2. 직업의 자유 국경과 대륙을 넘다

3. 엄마 회사에 왜 안 가요?

4.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5. 내 삶에서 [9 to 6]를 지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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