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낯선 말이기는 하지만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가장 가까운 자신도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전에는 사랑이란 말에 신중했는데 요즈음은 너무 쉽게 쓰는 말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원래 고유어로는 '다솜'이라고 했었는데 아마도 기독교의 Love를 ‘사랑’으로 번역한 것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思量’사량이라는 불교용어가 있었는데 ‘이성(理性)적으로 생각하고 짐작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사랑, Love하고 의미나 발음으로 닮은 데가 있어 그 유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물질적, 육체적, 개인적인 것하고는 거리가 있던 말이다.
어쨌든 지금 ‘사랑’이라는 말은 기독교적인 사랑과 이성, 육체적인 사랑으로 의미확대 되어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면 본의와는 너무 먼 말이 아닐까? 우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고, 어찌 생각하면 이기주의, 또는 나르시시즘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삐딱하게 생각하면 사랑이란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하도 많으니 우선 너부터 소중히 생각할 줄 알라는 뜻은 아닐까? 아무리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도 자신은 위할 줄 아니까- 자신을 위하다 보면 남도 배려할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그렇다면 이는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사랑이 메마른 현대인에 대한 간절한 호소이거나 거꾸로 말하기에 해당할 것 같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다 보면 정작 남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함부로 하기 쉽다. 그렇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은 아무래도 보편적이고 윤리적인 생각일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말이 그럴 듯하게 통용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역설이 아닐까? 이런 우려를 실제로 입증해 주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公人, 지도층의 첫째 덕목은 멸사봉공(滅私奉公)- 개인을 버리고 나랏일을 위하는 것이다. 한자로 돼 있다고 해서 낡은 가치관이 아니라 ‘개인에 앞서 나라를 사랑하라’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공인, 지도층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회 도덕률이다.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 가족을 먼저 사랑하는 이기주의자가 공인이나 지도자로 나서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 공인이나 지도층에 득실대고 있다. 깜도 안 되는 이기주의자 소인배들이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법을 만들고, 법을 지켜내겠다고, 교육을 바로 하고, 사회윤리를 건강하게 하겠다고 설쳐대고 있으니 나라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이 좋아서인지 검찰개혁의 책임자로 들어선 법무부 장관이 검찰은커녕 자신의 가정 하나 건사하지 못해 절체절명의 검찰개혁을 날려 버렸다. 검찰의 적폐청산을 부르짖고 나선 장관이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양심 하나 챙기지 못했으니 사회의 개혁자로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궁지에 몰려서는 ‘아내와 딸의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했다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개혁자를 자처하고 나선 사람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다. 가족을 지키려면 앞치마 두르고 집에 있을 것이지 그 자리에 왜 올랐는가? 그 잘잘못이야 법정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잘못은 지도자로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처사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부의 실세로 지도층의 핵심이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정부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아파트 가격의 안정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청와대 직원의 다주택 정리를 독려해 왔었는데 정작 자신도 다주택 보유자였으니 겨 묻은 강아지였든지, 똥 묻은 강아지였다. 자본주의에서 사유재산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는 하나 적어도 정부의 핵심 지도층으로서, 개혁의 주도자로서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강남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배려해 달라고 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부모 덕에 수십 억짜리 집에서 살고 있는 자식이 불쌍하다면 취준생, 청포, 사백, 최저임금 알바생, 라이더 배달원, 기약 없이 전세 월세방에서 전전하는 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는 일개 지도층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 전체가 위험한 일이고, 개혁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을 좌절시키는 짓이다.
나라를 책임 진 대통령이라면 가족은 물론 부하들도 나라의 이익에 상충된다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신임이 가는 부하라도 필요하다면 희생도 시켜야하는 것이 통치자의 능력이요, 도리이다. 부하들이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의 용인술을 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부하에 대한 개인적인 정을 버리지 못해 나라의 일을 그르친다면 역사에 책임질 일이다. 부하의 과오가 분명히 드러난 뒤에도 처결하지 못하고, 국민 앞에서 부하를 두둔한다면 그 부하들이 제 자식부터 챙긴 치졸한 짓과 다를 바 없다. 지금도 한 장관을 두고 말이 많지만 최고 통치자라면 부하를 아낄 자유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갈량은 가장 아끼던 부하 마속마저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목을 베었다. 썩은 발가락을 아끼다가는 발을 통째로 잃는 법이다. 대통령은 그런 과단성과 통치술도 갖춰야 하는 자리이다.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라면 평범 이상의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무나, 아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다. 적폐를 부르짖던 정부는 어디 가고 이런 어중이떠중이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가? 기껏 가족이나 챙기는 소인배들이 어떻게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할 수 있겠는가?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 정치인이야 그렇다 치고, 정부가 부르짖던 개혁을 믿다가 개가죽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자신보다는 남을 더 사랑한 '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