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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07. 2020

엄마, 나도 이렇게 빨리 크고 싶지 않았어

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

세 아이들을 모두 다 재우고 나니 어느새 이 시간이다. 밤 11시.


남편은 워크샵을 갔다. 나는 저녁 내내 홀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밤 9시쯤 다 같이 잘자. 하고 인사를 하고 둘째와 셋째 사이에 누웠다. 어린 아이들은 금새 잠들었고, 나는 그 옆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하루 중 제일 달콤한 순간이다) 갑자기 문이 삐그덕 열렸다. 순간 무슨일이지? 하고 일어나보니 안방에서 자던 첫째가 동생들 방문 앞에 서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평소엔 아빠와 함께 잠을 자는 아이지만, 오늘처럼 아빠가 집에 없거나 늦는 날에도 혼자 자는 데 별 문제 없었는데.


"엄마. 머릿속에서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잠을 못 자겠어."


시계를 보니 밤 10시. 한 시간 동안 깜깜한 방 안에 누워서 버티고 버티다 안되겠는지 엄마한테 SOS를 치러 온 모양이다. 지금까지 혼자서 잘만 자던 큰애라 웬일인가 싶기도 하고, 이럴 때 보면 아직 어린애구나 싶어 안심도 된다. 잠들 때까지 옆에 누워있어주겠다 했는데 잠이 안 온단다. 그래, 그런 날도 있는 법이지. 내친 김에 나도 그냥 큰애랑 주절주절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둘째 때문에 24시간 엄마모드로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치여살고 있는데, 그나마 가장 친구같고 말이 통하는 첫째랑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나도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기분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을 읽고 그 감상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동생들 방에서 잠들기 전 동생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내가 9살때, 그러니까 딱 우리 큰 딸 나이때 얼마나 어리광을 부리고 막내 짓을 했는지.

내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려주며 그러니까 너도 더 어리광 부려도 된다고. 더 천천히 커도 된다고. 너도 아직 내 눈엔 아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랬더니 큰 애가 하는 대답이 가관이다.


엄마. 나도 이렇게 빨리 크고 싶지 않았어...


그 대답을 듣는데 말하는 큰애도 울컥하고, 듣는 나도 코끝이 찡해져서 둘다 울어버렸다. 큰애는 겨우 울음을 참고 있었는데 눈이 벌개져서 눈물이 고이는 엄마 얼굴을 보더니 왈칵 울음이 쏟아져 버렸다. 울다가, 동시에 울음을 터뜨린 서로의 얼굴을 보고 조금 더 울다가, 어후 엄마는 눈물 때문에 코 막혔어. 너도 막혔니? 응, 나도나도. 이러면서 한바탕 또 웃어버렸다. 울다가 막힌 코는 금방 풀어지니까 잘 때 불편하진 않겠지? 하니까 첫째는...


"근데 엄마 그거 알아? 울면서 막히는 코가 더 매워."

"어, 맞아맞아. 그게 더 매워. 그래서 나도 지금 엄청 찡해."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들. 그냥 이 시간이, 이 순간들이 모두 아쉽다. 네가 자라는 모습을, 그래서 점점 엄마 품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가는 것을. 내가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너는 알지 못하겠지. 그래서 때론 이렇게 나를 애타게 찾아주는 네가 고맙고, 나를 사랑한다 꼭 안아주는 네 품이 소중하고, 이 시간을 아주 고운 비단주머니에 담아서 간직하고 싶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너는 알까.


첫째를 흔히들 영원한 첫사랑이라고 말한다. 큰애가 태어나서 엄마가 되었고, 너를 통해서 엄마로서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겪어보고, 그러다보니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래서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네 경우엔 특히, 장녀라서 다른 또래 친구들이 겪지 않아도 될 큰 책임과 부담을 얹어 준 것 같아 더 짠하다.


오늘처럼 엄마 품이 필요할 땐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내게 올 수 있기를.

무슨 일이 있든지 힘들거나 외롭거나 슬퍼질 땐, 가장 먼저 엄마를 찾아와 주기를.

그리고 그런 너에게 짜증내지 않고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그런 여유와 체력이, 오늘만큼만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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