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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살불살조

by 룡하

전 글에 천도를 지키기 위해 병을 사용함과 동시에 와비차로 문무양도를 추구하며 사리일치의 수행을 통해 금강역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군사적 천재인 주인공의 카타르시스에 몰입하여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적었다.



첫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철학 4화 장자, "소요유" 편에서 명상을 정으로 봤다고 적었다. 명상록 때문에 명상을 정으로 봤다.



2. 삶에 대한 관조


우리의 영혼이 마치 별처럼 지상의 사물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미혹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명상록』, Ⅸ. 30.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서 인간사를 논하려는 자는 더욱 높은 곳에서 지상의 사물을 내려다보아야 한다는 플라톤의 명언을 강조하며 실천적인 관조의 내용과 그 영향에 대해 주목하였다. 그는 모든 변화하는 것들을 플라톤의 관점과 다른 방법으로 고찰하는 한 그것들은 허망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신들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섭리에 충만되어 있고 이러한 섭리에 의해 마련된 우주가 함께하고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실체와 하나의 영혼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임을 언제나 잊지 말 것을 주지시켰다(『명상록』, Ⅳ. 40.). 이처럼 우주의 성격과 우주 속에 나타나는 사물이 제각기 지닌 효용의 뜻, 각각의 사물이 전체와 관련되어 갖는 가치와 같은 면들을 잘 살펴봄으로써 신의 선물로서 하늘의 분배와 운명의 몫에 적합하도록 주어진 기회에 순응하고자 하면 자신의 쾌락에 매몰되어 있던 개인의 관점이 전환되게 된다(『명상록』, Ⅲ. 11.).


만물이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간파하는 관조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 방법에 의해, 철학의 이 영역에 관하여 그대 자신을 연마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너그러운 도량을 갖는 데 이보다 적당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몸의 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간 세계를 곧 떠난다는 사실이나 모든 사물을 이 세상에 남겨 두어야 함을 깨닫고 있으므로, 그는 자기의 모든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며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하여는 자기 자신을 우주의 본성에 맡긴다.

『명상록』, Ⅹ. 11.


이처럼 스토아학파는 인간이 충동적인 열정(pathos)에 사로잡히면 비논리적인 본능의 노예가 되어 순간에만 집착하게 되어 우주 대자연 전체와의 조화가 불가능하기에 거리를 두고 전지구적 관점에서 인간 삶을 관조하는 가운데 모든 사물과 사건의 가치를 평가할 것을 되새겨준다(Bénatouïl, 2013: 153). 주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시시비비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감정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성급히 행동하는 것은 후회스러운 결과를 낳기 쉽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이성적 관조 속에서 도출되어야 하며 이 우주를 질서 지우는 자의 의지와 조화(symphõnian)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와 자신이 처한 사태 전반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지적 인상을 분명히 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선행조건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우주 전체의 법칙에 대한 이해와 통찰 하에서 적합한 선택을 통해 도출된 인간의 선과 행복이라는 보다 넓은 견지에서 관조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주체적인 반성이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자신의 영혼을 우주 전체로 확대하여 모든 것이 단지 연속적인 변화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떤 것도 영원한 우주의 법칙을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그토록 욕망하던 대상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장영란,2012:49).


출처 : 장효민. (2015).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타난 스토아윤리적인 반성의 의미 연구. 도덕윤리과교육, 46, 59-82.


명상이라는 형식화를 통해 가려진 한계를 벗어나게 하며 있는 그대로 나와 대상을 바라보게 한다. 선의 마음은 주객미분(主客未分)의 공성(空性) 자체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음공부는 마음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라기보다는 마음의 공부이고, 삶의 공부”


출처 : 심정섭, "선불교 정신적 유산 현대언어로 소개 선지식 가르침 핵심, 마음공부로 해설", 법보신문, 2019.12.09,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317


살불살조’란 불교용 고사성어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친척을 만나면 부모친척을 죽여라’로 해석이 가능하나 실제로 이분들을 죽이라(?)는 뜻이 아닌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도중 진리를 저해하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 우상(偶像)이 누가 되었던 허황된 모든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송경태, "[송경태 칼럼] 살불살조", 호주 톱디지털 뉴스, 2020.09.23, http://www.topdigital.com.au/news/articleView.html?idxno=10747


살불살조에는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도중 진리를 저해하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 우상(偶像)이 누가 되었던 허황된 모든 집착을 버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에 앞서 석가세존께서 〈금강경〉에 이르시되 ; 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 즉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닌 줄로 보면 곧바로 여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출처 : 심재동, 殺佛殺祖(살불살조), 금강신문, 2012.07.13, https://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76



소설에 명상을 통해 살불살조를 깨닫는 장면을 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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