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취—자도의 출현

by 유하



잠은 한동안 나의 유일한 위로였다.


물론 삶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도 아주 많았다. 건조한 현실보다 생생하게 가슴을 울리는 음악의 선율, 좋아하는 곡들을 내 마음대로 피아노 치기, 온갖 예술이 조화를 이루며 감각을 자극하는 영화와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랑스러운 인물들, 진짜 자신을 살아 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기존 상식이나 사회의 패러다임을 파격적으로 뒤흔드는 철학적 개념들, 정교하게 쌓아올린 텍스트의 사랑과 권위, 나만의 자유로운 시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상상과 사색,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감과 구름, 자석처럼 이끌리는 달, 의미심장한 꿈의 파편들.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소용이 없어지는 때가 있었다. 잠이 주는 포근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들. 요동치는 감정과 날이 선 감각, 지칠 줄 모르는 의식의 활동을 도닥이며 가라앉힐 수 있는 잠만이 나에게 유일한 안식을 주었다. 관계 안에서 나는 더 추웠다. 한여름의 태양조차 마음을 데워 주진 못했다.


모든 생물체는 생명 이전의 무기물의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는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death instinct)’이라는 이론이 있다. ‘타나토스(Thanatos)’라고도 불리는 이 본능에 따라 생명체는 타자를 공격하거나 스스로에게 해를 가한다. 어릴 적부터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홀로 깨어 있는 채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면 슬프고 두려웠다. 우리는 왜 꼭 만나면 헤어질까, 인간은 왜 죽어야만 할까, 신께 따지고 싶었다. 외부 세계를 파괴하는 대신 나는 스스로를 잠으로, 즉 망각이자 의식의 마비로 처벌한 것일까? 세계는 엉망진창이어도 생기 있고 아름다우니까. 하지만 단순히 죽음 본능에 따른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기에 잠은 너무도 자애롭고 부드럽다. 소란으로 가득한 세상에 비해 조용하고 무해하다.


아니, 정말 그럴까?



-


늪처럼 소음도 색감도 푹 꺼진 적막한 개울가. 하늘도 나무도 물도, 주변은 모두 이끼가 낀 녹색이다. 나를 이리로 안내한 친구 솔의 눈가가 수상하리만큼 붉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솔처럼 역시 붉게 물든 눈가를 한 낯선 여자가 마취제를 들고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 여자의 표정을 짓누르는 복잡하고도 어두운 정서의 두께는 마치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다. 동시에 나를 알고 지낸 만큼이나 오래도록 그는 이 음침하고 눅눅한 풍경의 은밀한 곳에서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 것이다. 나에게 모습을 기꺼이 드러내고 마취제를 재빠르게 놓는 순간을. 발끝에 따끔한 바늘이 느껴지며 내 정신과 온몸은 즉시 마비되었다.



2025.3. 꿈 일기


잠에서 깬 나는 바로 그 꿈을 기억해 냈다. 태어나서 그토록 강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상스러운 말들을 쏟고 싶을 만큼 불쾌했고, 분노했고, 엄청난 적대감에 불타올랐다. 작은 반박조차 못하고 내 의식이 끊긴 게 너무 분했다. 정말이지 스스로도 경악할 만큼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런 감정의 강렬함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친숙함, 그 여자가 그런 정동을 끌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데서 오는 예민한 기시감이 있었다. 그는 대체 누굴까?



마취제를 든 여자 꿈을 꾼 이후로 나는 며칠 간 불 타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가장 크게 튀어 오르는 감정은 분노였다. 나는 몹시 분했다. 꿈속에서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도, 낯선 여자가 마음대로 내 의식을 끊어 낸 것도. 여자는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습진 감정과 본능을 불편하게 쑤셨고 확실하게 뒤흔들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본격적으로 그의 정체와 나를 휘어잡은 정동의 실체를 해부하기로 하며 그 여자가 누구였을까 골몰했다. 정리되지 않은 긴 머리나 야생적인 옷차림 등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울 법한 여자의 외형만으로는 절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가 꽉 쥐고 있던 강렬한 감정들은 나에게 익숙하다 못해 불에 데인 것처럼 너무도 가깝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 감정들에 오롯하게 집중해 본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겪어 봤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점을 유심히 파고들다가 칼 융이 제시한 ‘그림자(shadow)’가 퍼뜩 떠올랐다. 그림자는 우리가 의식에 담아내기를 거부하는 성격, 감정, 충동들이 억눌려 무의식에 축적된 모습들이다. 공격성과 이기심, 욕망 등 사회적, 도덕적 이유로 버림받은 나의 일부인 것이다. 이를 직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projection)하기도 한다.


비로소 깨달았다. 마취제를 든 여자, 그가 내 ‘그림자’였음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그림자를 직접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진실을 맞닥뜨린 순간,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벼락을 내리꽂은 파도처럼 밀려오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림자 안에 포화되어 있던 온갖 감정들이 이제서야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의식적으로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무너졌다. 그것은 꿈속 마취제를 든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만큼이나 비언어적으로 신묘한 체험이었다. 그는 나를 제대로 ‘찔렀다’. 인정하고 되뇌일 수밖에 없도록.


“너는 나야.”



-


2025.3.13. 메모


shadow : 그림자

j’adore : 열렬히 사랑하다

자도 : ‘자두’의 비표준어 / “자두해요” = 사랑해요



그림자가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것은 사회적 의무도 어떤 내적인 사명도 아닌 단순히 내 존재를 돌보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의식이 생긴 시점부터 부지런히 했어야 할 일이다. 융은 우리가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정신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와 화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내 그림자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그런 결심을 하자마자 즉각 여러 단어들이 떠올랐다. 샤도(shadow), 쟈도(j’adore). 곧장 그렇게 ‘그림자를 열렬히 사랑한다’라는 의미가 완성됐다. 이와 함께, 전에 빨간 자두(‘자도’라고도 부른다)를 사진으로 찍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 모양이 하트를 닮아 “사랑해요” 대신 “자두해요”라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이름이 지어졌다. 꿈속의 불가사의한 여자는 나의 억눌린 그림자에서 이제 ‘자도’라는 실체가 되었다.


자도의 깊은 아픔을 안아 주며 약속했다. 앞으로는 절대, 절대로 너를 잊거나 외면하지 않겠다고.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01화파란 새벽, 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