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군 관사에 찬바람이 불면.
너도나도 옷소매를 움켜쥐고 제일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겨울이 돌아왔다. 찬바람이 쌩쌩 불면 허술해져 단단히 붙어 있지 않던 지붕의 한편이 벌어지면서 큰소리를 내며 겨울밤의 찬 기운을 더해준다. 오래된 군 관사 한 귀퉁이에서 늘 힘없이 돌아가는 옥상 환풍기의 소리가 찬바람과 만나면 삐끄덕 거리면서 더욱더 존재감을 빛낸다. 창문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신생아의 빈약한 울음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것 같아 창문 밖을 쳐다보게 된다. 알고 보면 들고양이들이 밤새 서로 소리 내며 교감하는 소리인데 여름에 한 번 들리지도 않던 울음소리가 겨울이 되니 밤마다 들린다.
필요할 때 빼고는 집에서 있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만가고 있었다. 군 관사는 정말 따뜻하다. 20평대의 군 관사에서 꽉꽉 채운 물건들 사이로 냉기란 들어올 수 없다.
보일러를 틀어놔도 온기가 금방 퍼지기 때문에 정말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단점은 베란다부터는 그냥 밖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엄청 춥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베란다에 위치해 있는데 겨우내 수도관이 얼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건조기가 돌아가질 않는다. 수도관이 얼어버린 것이다. 히터를 틀어놓고 따뜻함을 쬐주면서 녹이려 해 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날이 좀 따뜻할 때까지 며칠 기다렸고 그때를 이용하여 녹이고 수도관을 수동 수도관으로 교체하는 수고로움을 더했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부분 리모델링을 해준 것이다. 정말 제일 급해 보이는 부분의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재정의 사정을 고려해 화장실과 베란다만 해준 것 같다. 싱크대도 너무 낡아 리모델링 계획에 들어갔으면 좋으련만 그건 내 사정일 뿐. 선택된 건 화장실과 베란다, 등 교체 등만 이루어졌다. 화장실은 워낙에 오래돼 아무리 킬라를 뿌려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생기는 초파리들에 정말 시름을 앓았다. 하수도관이 워낙 낡고 물 빠지는 배수구가 오픈되어 있어서인지 초파리들이 살기에 딱 좋은 화장실 환경이었다. 이런 화장실은 사실 군 관사에 와서 처음 보는 화장실이었다. 수세식이라 하기에 정말 애매한 화장실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화장실을 고쳐준다니 나로서는 환영할만한 소식이었다. 현재 계획은 두 동만 해줄 계획이란다. 그동안 아이들과 다른 비어 있는 아파트를 찾아 생활하게 되었다. 다들 여러 가지 생활을 계획하고 있었다. 친척집에 머문 다는 계획, 불편하지만 화장실과 씻는 문제만 주어진 빈 군 아파트에서 해결하고 기존대로 집에서 잠을 청하겠다는 가족들 등. 공사하는 동안 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묘안들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캠핑 장비를 꺼내 주어진 빈 아파트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가 없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화장실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에 빈 아파트에 자리 잡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단 결론을 내렸다.
한 달 넘어 긴 여정동안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힘든 부분이 있었으나 결론은 삶의 질을 더해주는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얻을 수 있었다. 항상 무용지물 같았던 욕조를 치우니 참 넓은 공간이 되었다. 하수구 들어가는 길 따라 오픈되어 있던 통로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더 이상 초파리도 꼬일 것 같지 않았다.
베란다 샤시 공사도 깨끗이 마무리 지어놔서 전보다 따뜻한 베란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베란다의 공기 온도가 다르다. 전보다 보온유지가 잘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 올 겨울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바람과 다르게 건조기 수도관이 얼어버려 고생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건 잠시였고 곧 만족하며 지낼 수 있게 됐다.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이어가는 시간들이 길어지는 탓에 더욱더 집안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거실에 뒹굴거리며 티브이만 보는 아이들을 보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운동이 참 중요한데 누워있기만 하니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태권도를 보내기로 했다.
이사올 때부터 보내려 했는데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면서 그 생각을 잠시 접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단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한 시간 정도 즐겁게 운동하고 오는게 체력관리도 되고 아이들 정신건강, 몸 건강에도 좋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학원가도 코로나로 많은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에 원장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듯하다. 본 학원에 군 관사 아이들이 엄청 많았는데 코로나로 많이들 쉬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그 와중에 두 명의 아이를 등록한다니 원장님이 큰 감동을 받으셨나 보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좀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다 보니 학원차가 군 관사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매시간마다 여러 학원차들이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데 외부인인 학원차는 출입증이 있을까 싶었다. 보아하니 출입증은 따로 없는 것 같고 매번 내려서 위병소 사무실에 허락받고 출입을 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매일 보는 학원차 선생님들이고 관장님인데 출입증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렇게 허술하게 했다가 구멍이라도 생기면 군대라는 사회는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군대라는 조직은 정확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되는 정말 요새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다른 세계이다.
첫째 아이에게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꼬맹이들이 꽁냥꽁냥 하는 모습은 참 순수하고 예쁘다. 세대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매서운 바람에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도 늘 찾아오던 남자 친구. 그 겨울. 첫째 아이와 남자 친구의 로맨스는 군 관사의 러브 스토리라 해도 무방할 만큼 행복함이 묻어났다. 지켜보는 난 그 광경이 너무나 재밌고 웃음이 나서 피식 웃고 있는다. 엄마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남자 친구. 아이가 매일 집에 찾아가서 미안하다며 얘기하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우리 집은 늘 열려있으니 언제든 보내시라고 웃으며 얘기한다. 덕분에 우리 집이 더 따뜻했다고, 웃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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