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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9. 2022

10화. 너도 나도 추운 계절.

겨울. 군 관사에 찬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옷소매를 움켜쥐고 제일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겨울이 돌아왔다. 찬바람이 쌩쌩 불면 허술해져 단단히 붙어 있지 않던 지붕의 한편이 벌어지면서 큰소리를 내며 겨울밤의 찬 기운을 더해준다. 오래된 군 관사 한 귀퉁이에서 늘 힘없이 돌아가는 옥상 환풍기의 소리가 찬바람과 만나면 삐끄덕 거리면서 더욱더 존재감을 빛낸다. 창문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신생아의 빈약한 울음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것 같아 창문 밖을 쳐다보게 된다. 알고 보면 들고양이들이 밤새 서로 소리 내며 교감하는 소리인데 여름에 한 번 들리지도 않던 울음소리가 겨울이 되니 밤마다 들린다. 


추운 겨울이 되니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다. 

필요할 때 빼고는 집에서 있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만가고 있었다. 군 관사는 정말 따뜻하다. 20평대의 군 관사에서 꽉꽉 채운 물건들 사이로 냉기란 들어올 수 없다. 

보일러를 틀어놔도 온기가 금방 퍼지기 때문에 정말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단점은 베란다부터는 그냥 밖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엄청 춥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베란다에 위치해 있는데 겨우내 수도관이 얼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건조기가 돌아가질 않는다. 수도관이 얼어버린 것이다. 히터를 틀어놓고 따뜻함을 쬐주면서 녹이려 해 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날이 좀 따뜻할 때까지 며칠 기다렸고 그때를 이용하여 녹이고 수도관을 수동 수도관으로 교체하는 수고로움을 더했다. 


우리가 이사를 들어간 해에 살고 있는 군 관사의 베란다 샤시와 화장실 공사를 크게 했다.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 부분 리모델링을 해준 것이다. 정말 제일 급해 보이는 부분의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재정의 사정을 고려해 화장실과 베란다만 해준 것 같다. 싱크대도 너무 낡아 리모델링 계획에 들어갔으면 좋으련만 그건 내 사정일 뿐.  선택된 건 화장실과 베란다, 등 교체 등만 이루어졌다.  화장실은 워낙에 오래돼 아무리 킬라를 뿌려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생기는 초파리들에 정말 시름을 앓았다. 하수도관이 워낙 낡고 물 빠지는 배수구가 오픈되어 있어서인지 초파리들이 살기에 딱 좋은 화장실 환경이었다. 이런 화장실은 사실 군 관사에 와서 처음 보는 화장실이었다. 수세식이라 하기에 정말 애매한 화장실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화장실을 고쳐준다니 나로서는 환영할만한 소식이었다.  현재 계획은 두 동만 해줄 계획이란다. 그동안  아이들과 다른 비어 있는 아파트를 찾아 생활하게 되었다. 다들 여러 가지 생활을 계획하고 있었다. 친척집에 머문 다는 계획, 불편하지만 화장실과 씻는 문제만 주어진 빈 군 아파트에서 해결하고 기존대로 집에서 잠을 청하겠다는 가족들 등. 공사하는 동안 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묘안들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캠핑 장비를 꺼내 주어진 빈 아파트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냉장고와 세탁기가 없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화장실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에 빈 아파트에 자리 잡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단 결론을 내렸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린 또 다른 군인 아파트에서 생활을 이어갔다. 

한 달 넘어 긴 여정동안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힘든 부분이 있었으나 결론은 삶의 질을 더해주는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얻을 수 있었다. 항상 무용지물 같았던 욕조를 치우니 참 넓은 공간이 되었다. 하수구 들어가는 길 따라 오픈되어 있던 통로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더 이상 초파리도 꼬일 것 같지 않았다.

베란다 샤시 공사도 깨끗이 마무리 지어놔서 전보다 따뜻한 베란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베란다의 공기 온도가 다르다. 전보다 보온유지가 잘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 올 겨울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바람과 다르게 건조기 수도관이 얼어버려 고생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건 잠시였고 곧 만족하며 지낼 수 있게 됐다. 


겨울이 되니 모두가 꽁꽁 언 것만 같다.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이어가는 시간들이 길어지는 탓에 더욱더 집안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거실에 뒹굴거리며 티브이만 보는 아이들을 보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운동이 참 중요한데 누워있기만 하니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태권도를 보내기로 했다. 

이사올 때부터 보내려 했는데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면서 그 생각을 잠시 접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단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한 시간 정도 즐겁게 운동하고 오는게 체력관리도 되고 아이들 정신건강, 몸 건강에도 좋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티브이만 보겠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태권도 학원에 방문했다. 

학원가도 코로나로 많은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에 원장님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듯하다. 본 학원에 군 관사 아이들이 엄청 많았는데 코로나로 많이들 쉬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그 와중에 두 명의 아이를 등록한다니 원장님이 큰 감동을 받으셨나 보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태권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좀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다 보니 학원차가 군 관사 내부로 들어오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매시간마다 여러 학원차들이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데 외부인인 학원차는 출입증이 있을까 싶었다. 보아하니 출입증은 따로 없는 것 같고 매번 내려서 위병소 사무실에 허락받고 출입을 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매일 보는 학원차 선생님들이고 관장님인데 출입증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렇게 허술하게 했다가 구멍이라도 생기면 군대라는 사회는 타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군대라는 조직은 정확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되는 정말 요새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다른 세계이다. 


밖은 한없이 춥기만 했는데 우리 집에선 로맨스의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첫째 아이에게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꼬맹이들이 꽁냥꽁냥 하는 모습은 참 순수하고 예쁘다. 세대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매서운 바람에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도 늘 찾아오던 남자 친구. 그 겨울. 첫째 아이와 남자 친구의 로맨스는 군 관사의 러브 스토리라 해도 무방할 만큼 행복함이 묻어났다. 지켜보는 난 그 광경이 너무나 재밌고 웃음이 나서 피식 웃고 있는다. 엄마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남자 친구. 아이가 매일 집에 찾아가서 미안하다며 얘기하는 엄마에게 괜찮다고 우리 집은 늘 열려있으니 언제든 보내시라고  웃으며 얘기한다. 덕분에 우리 집이 더 따뜻했다고, 웃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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