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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30. 2022

어차피 내려올 산이지만, 다시 올라갑니다.

“에세이 소재로 등산에 대해서 써볼까 하는데,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너무 진부하지 않나요?”


   독립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각자 무슨 글을 쓸지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등산을 소재로 글을 써보겠다고 하니 반응들이 떨떠름했다. 그럼 그렇지. 유쾌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등산에 대한 말을 꺼낼 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으니까.


미쳤냐그 돈 주고 네팔을 왜 가냐?”


   28살, 대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앞두고 네팔에 가겠다고 얘기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하나 같이 미쳤다고 했다. 그 돈이면 차라리 유럽이나 미국을 가겠다며.


아저씨도 아니고 무슨 등산이야.”


   24살,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언제 시간 되면 등산 한 번 가자고 말했을 때 동기들은 하나같이 아저씨 같다며 비웃었다. 등산은 아저씨들이나 가는 거라며.


어차피 내려올 산 뭐 하러 올라가냐헛수고하는 거 같아서 싫어.”


   21살, 취미가 등산이라고 말했을 때 처음 만난 친구들은 등산이 싫다고 말했다.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나면서, 뭐 대단한 것도 없는데 땀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가냐며. 친구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취미란에 등산을 적었고, 유럽 대신 네팔에 다녀왔지만, 점차 산에 오르는 횟수가 줄었다.  

   

  서른다섯, 내가 취업 준비로 2년, 어설픈 직장 생활로 8개월,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다시 2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선배들, 친구들뿐만 아니라 후배들까지 결혼 소식을 알려오기 시작했다. 빨리 결혼한 후배들 중에는 부모가 된 이들도 있고, 내 동기들 중에는 학부형이 된 친구들도 있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인생의 스텝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심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 있고 다들 저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하니 지독한 우울이 찾아왔다. 정말 친구들 말이 맞았나. 등산을 비롯해 내가 보낸 그 시간들은 쓸모없는 시간, 헛수고였나?     


   아니다. 헛수고가 아니었다. 매번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니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반 강제적으로 외톨이 삶을 살다가 오른 청계산에서 내가 등산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함께 등산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나에 대해서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청계산 등산은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동안 내가 올랐던 산의 이야기를 되짚어보았다.       

  아무 의미 없는 제자리걸음처럼 보였지만 산에 올랐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긍정적인 습관도 생겼고, 안 좋던 습관도 고쳐졌으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이 어우러져 저만치 앞서 나간 친구들을 보며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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