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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01. 2024

당신의 인생은 가성비가 좋나요?

남매의 방은 카오스다. 단 1분이라도 남매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특히 사춘기 누나, 남동생의 방이다? 두말하면 혓바닥만 아프다. 나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내가 바로 그 남동생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3살 터울의 누나가 있다. 나는 6살까지 단칸방에서 컸고 7살이 되는 해 2칸짜리 방으로 이사했다. 그 말은 즉, 부모님과 우리 남매는 떨어 졌지만 누나와 나는 한방에서 생활해야 했다는 뜻이다. 처음 2~3년은 괜찮았다. 나는 어렸고 누나도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누나가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 우리의 방은 그 당시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H.O.T 브로마이드가 벽에 걸리고 H.O.T의 털모자와 털장갑이 방 한 편에 자리하게 됐다. 누나는 그 방에서 H.O.T가 [행복]을 부를 때 입었다는 체크무늬 남방을 뽐내고 있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누나의 팬심은 변했다. H.O.T에서 젝스키스로 갈아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방은 이제 젝스키스의 차지가 되었다. 누나에게 왜 이제는 젝스키스냐고 묻자 누나는 “꿈에 젝스키스가 나왔거든.”이라는 선무당 작두 타는 소리만 하고 나에게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3살 위의 누나는 남동생에게 취향의 변심 이유를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방은 2.5평 남짓했다. 거기에 누나 책상과 내 책상 그리고 그 당시 최고였던 586 팬티엄 컴퓨터까지 꽉꽉 들어찼다. 팬티엄은 내가 친구 집에서 보고 신세계를 경험한 후, 엄마를 조르고 졸라 쟁취한 제품이었다. 나에게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표현할 수 있는 자아가 생긴 후, 누나와의 충돌은 잦아졌다. 누나는 팬심 가득한 공간으로 방을 만들길 원했고 나는 나만의 놀이터로 만들고 싶어 했다. 나는 컴퓨터 아저씨가 PC에 깔아준 [레인맨]의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게임을 했고 누나는 [왜 하늘은]을 부르던 이지훈의 영 스트리트 라디오를 듣고자 했다. 방에서 누나와 나 사이에 충돌이 잦아질수록 그곳이 남매의 방인지 옥타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놀러 왔던 내 친구는 서로의 머리를 쥐어 잡고 강제 헤드뱅잉을 시켜주던 누나와 나 결투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컴퓨터 게임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드디어 휴전했다. 내가 12살, 누나가 15살이 되던 해에 우리는 방 3칸짜리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마치 미군과 소련이 남과 북으로 갈라놓듯이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각자의 방으로 분리 조치했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70년대에 지어진 4층짜리 구식 맨션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도 없었지만 괜찮았다. 내 방이 생겼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이 생기자 이제 방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뽐내기 시작했다 누나의 방은 젝스키스의 방이 되었고 내 방은 스타크래프트 BGM이 들리는 PC방이 되었다. 나는 누나가 젝스키스를 좋아하던 H.O.T를 좋아하던 이제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누나도 내가 내 방에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내가 15살 사춘기가 되고 누나는 18살 사춘기의 끝 무렵이 될 즈음 각자의 방은 이상하지만 고요해졌다. 나는 락 음악에 빠져서 친구들과 밴드 연습을 하면서 외부 활동이 잦았고 내 방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으로 변했다. 젝스키스를 향한 누나의 팬심은 대입 준비를 하면서 더 이상 요란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은 조금 더 간소해졌다.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누나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생활용품 양이 많아 졌지만 기본적으로 옷장 한 칸에만 자기 옷이 들어갈 정도로 단순한 생활 스타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단순함은 복잡함 위에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단순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려워한다. 단지 물건 절반을 눈 딱 감고 아무거나 내다 버리면 단순해지는가? 단순함은 걷어내고 버린다고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힘든 이유는 바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버려야 할 것을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안목을 기르는 것이 어렵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모든 책이 말한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너의 삶을 즐겨라. 넌 그저 존재만으로 축복이다. 등등 많은 메시지가 난무한다. 나는 이 말이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국을 벗어나서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라고 쿡쿡 쑤시던 책들도 있지만 그렇게 세계여행을 떠나고 난 후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살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다시 조그마한 어느 직장에 들어가 하루살이처럼 밥벌이하고 있을지 알 턱이 없다. 또,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책의 작가는 그 원고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했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커튼처럼 앞을 가린다. 


돛단배는 선체 위에 세운 돛에 바람을 받게 하여 움직인다. 만약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오독하여 ‘그래, 드러눕고 있어도 괜찮아 배는 파도 따라 알아서 움직일거야’라고 한다면 태평양 한 가운데서 변사체로 발견되기 좋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배가 편안하게 움직이도록 바람에 맞게 돛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의해 할 것은 바람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돛을 잡지 않기다. 


우리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건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열심히 무언가를 한 만큼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10의 에너지를 쓰면 적어도 10의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5의 결과만 나와서 힘들다. 만약 10의 에너지를 써서 15의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더 이상 힘듦이 아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쉽게 오독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에너지의 효율이 잘못된 것인데 에너지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거칠게 단순하다. ‘에너지를 쓰지 말자’ 다. 그래서 그들은 에너지의 효율을 생각하기보다 그냥 에너지를 쓰지 않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마치 돛단배 위에서 돛도 올리지 않고 드러누운 선장처럼 말이다.


이 책은 트렌디한 미니멀라이프 방법론을 전달하지 않는다. 단순함이 주는 효율성과 집중을 통해서 내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가 방점이다. 스타일만을 쫓지 않고 그를 통한 개인의 성장론, 앞으로 만날 이 책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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