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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08. 2024

왜 그렇게 복잡해지고 싶어 안달이야?

나영석 프로듀서는 1박 2일 PD 시절부터 유튜브 플랫폼까지, 제작 환경의 변화를 경험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영상 제작 방식은 발전했다. 발달한 기술만큼 영상 제작도 단순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예상은 나영석 PD의 말을 들어보면 잘못된 생각이다.


옛날에 제가 1박 2일을 찍을 때만 해도 이거로 편집을(디지베타 편집기) 하던 시절이에요. 그러면 소스  테이프를 한 처음엔 5개씩 쌓아놓는데 나중엔 사람이 욕심이 있으니까 카메라 감독님을 더 부르는 거 야. 왜냐면 아까우니까. 이렇게도 찍고 싶고 저렇게도 찍고 싶고. 그러면 이게 소스 테이프가 점점 늘 어나는 거예요. 10개, 15개 나중에는 20개씩 가요. 그때도 그 생각을 했거든요. 아 이거 너무 많다. 소 스가 이거 너무 과하게 찍었다. 이렇게 찍지 않아야 되는데 안 찍자니 또 불안하고 놓치는 그림이 있을까 봐.

처음 1박 2일을 찍을 때는 디지베타라는 비교적 불편한 편집기를 사용했다. 처음에 5개의 소스를 찍었지만 욕심 때문에 20개까지 소스를 늘렸다. 그때도 나영석 PD는 이 소스 양이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재밌는 그림을 놓쳐서 방송의 재미를 떨어트리는 게 걱정 돼서 20개까지 소스를 늘린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로 영상을 편집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 영상 편집이 더 편해지고 시간이 줄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나영석 PD의 말에 따르면 그건 전혀 그렇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근데 이게 어느 순간 컴퓨터로 딱 바뀌고 진짜 광명을 본 거에요. 드디어 밤샘은 없어졌다. 밤샘은 안녕. 신세계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인간이 얼마나 우둔한지 알아요? 여기 20개 쌓아뒀잖아. 컴퓨터가 돼서 편해졌잖아. 그래서 다들 시간이 남아야 되잖아. 애들이 1박 2일을 할 때 하루 밤샜는 데 지금 이틀 밤새. 소스를 150개씩 찍어. 옛날에 소스가 10개, 20개였단 말이에요. 요즘 한번 예를  들어 소위 말하는 리얼리티 쇼 서진이네나 삼시 세 끼나 그런 것들이 설치되는 카메라들을 다 하면 100 대 이상이 들어가요. 그러면 100대 이상의 소스가 옛날 디지털 편집기였으면 여기에 150개의 테이프가 쌓여 있는 거야. 근데 이걸 누구를 욕할 수도 없는 게, 인간이 그렇게 지들이 그렇게 만든 거야. PD들이


신기술은 우리를 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옛날에는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동상을 감수하면서까지 빨래를 했다. 그리고 세탁기가  발명되었다. 세탁기로 우리는 빨래를 더 빠르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우리는 더 많은 자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빨래하던 양이 일주일에 3-4번을 빨래해야 할 양으로 더 늘었다.


이메일의 발명은 일일이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안 붙여도 되게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스팸메일과 광고메일 그리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메일 양 때문에 메일함을 수시로 새로 고침을 하면서 확인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우리는 더 빠르고 먼 거리를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절약된 시간만큼 우리는 더 먼 거리를 이동하려고 한다. 하루에 1개만 있던 일정이 이제는 자동차의 발달로 5 개까지 약속을 늘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복잡해지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더 갈아 넣으려고 온갖 애를 쓴다.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 쓴 《가짜노동》이라는 책에서 작가는 독일의 문화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허위 형성(pseudo_morphiosis)이라는 개념을 빌려, 우리가 이렇게 사서 고생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하는 이유를 ‘노동의 허위형성’ 때문이라고 한다.


노동의 허위형성은 기존의 구태의연한 노동 산업 의식 속에서 갇혀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허위 노동의식이 생겨난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노동 의식에 따라 상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고 제안서를 쓰고 리포트를 정리하고 매니지먼트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필요 없는 가짜노동임을 알지만 관성적으로 우리는 그 노동을 행하는 것이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 일이 없어 모니터만 바라보고 멀뚱히 앉아 있자, 팀장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할 일 없어?” 나는 솔직하게 “네 지금은 딱히 할 일은 없습니다. 뭐 혹시 시키실  일이라도 있을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팀장은 나에게 “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일을 해야지. 그렇게 수동적인 직원은 우리 회사에 있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마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회사가 이러한 의식 속에 있을 것이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 라도 해라.’ 여기서 만들어진 일은 딱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다. 철 지난 보고서를 만들고 진행되지도 않을 기획안을 쓰며 뭐라도 하고 있는 척 시간을 보낸다.


《가짜노동》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가짜 노동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하는 일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노동 안에 서 자신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 필요한 자기 인 식 개발이 불가능한 방식으로 노동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이라는 문 구인데, 즉 이 경우가 주로 가짜 노동을 만든다.(중략) 우리가 일 속에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함에도 불 구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해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로부터 이질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해오면서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인식되는지 알기 어렵다. 처음부 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마치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때 그 사실을 의식하고 사 용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노동에 익숙해졌으므로 그것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르고 이질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노동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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