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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05. 2024

단순함이 작동하는 원리

Deep Simplicity(단순함에 기반한 복잡성)

단순함과 복잡함은 공생관계다. 사람들 앞에서는 복잡함 넌 나쁜 놈이야 라고 말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오늘도 수고했다고 등 토닥여 주는 관계다. 본질에 집중한 아이폰은 단순하지만 아이폰과 얽혀 있는 네트워크와 생태계는 상상을 초월한 복잡함이다. 아이폰이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복잡한 네트워크를 아이폰 하나면 단순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함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복잡함이 따라와야 한다. 단순함은 복잡함 속에서 기능한다. 단순함은 거기서 나온다.


당신과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복잡하다. 분명히 오늘 낮에 구름 한 점 없다고 했지만 내가  나가자마자 하늘이 토하듯이 비를 쏟아낸다.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어제까지 오르던 주식은  오늘 아침에 지하 암반수를 뚫을 정도로 곤두박질치고 영혼까지 끌어 산 25평 아파트는 내가 우리 단지 내 최고가를 갱신해준 호구가 되어 더 이상의 반등은커녕 떨어지기만 한다. 급상승과 폭락이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움직여준다면 어정쩡하게나마 장단 맞춰 춤이라도 추겠지만 이 세상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이 복잡하다. 이 상황까지 오면 이  세상이 영화 트루먼쇼처럼 나 모르게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 들 정도다.


하지만, 갈릴레오 이후부터 과학은 이러한 세상의 복잡성을 이미 무시했다. 그들이 왜 위대한 과학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나는 왜 호갱노노나 눈알 빠지게 보는 범인으로 사는지  알 수 있는 행보다. 그들은 왜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지, 사과는 왜 땅을 향해  떨어지는지 등 단순한 문제에 답을 하면서 점차 과학을 발전시켰다. 과학자들은 이 세상의  복잡성 속에 단순함이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간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에서 말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를 들으면 복잡을 어렵고 난해함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과학에서 ‘복잡계란 사실 상호작용하는 몇 개의 단순한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계이다.’라고 말한다. 갈릴레오와 뉴턴 이후부터 과학은 복잡계를 단순한 구성 요소로  분해하고 이것들의 행동 법칙을 연구해서 성과를 얻었다. 마치 이산화탄소 분자는 탄소 원자 한 개와 산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한 구성물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산화탄소가  탄소와 산소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의  구성 시스템도 일종의 복잡계라고 할 수 있다. 과학 작가인 존 그리빈은 복잡계를 아래와  같이 쉽게 설명한다.


가장 단순한 기계는 바퀴와 손잡이다. (중략) 바퀴 하나 또는 기어톱니바퀴 하나조차도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바퀴와 손잡이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 달리는 자전거는 과학적으로 보자면 복잡한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의 부품의 상호작용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과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복잡성이 지닌 또 다른 중요한 특성 – 사물들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의  중요성 – 을 잘 보여준다.


과학자들이 복잡성을 만날 때 나타나는 본능적인 반응이 있다. 첫째, 단순한 구성 요소를 파악하고 둘째, 이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셋째, 자신들이 연구할 대상에 적용할  수 있는 단순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과학자들은 복잡성 속에는 필연적으로 단순함이 있다고 믿는다. 존 그리빈은 그것을 바로 ‘깊숙이 숨겨진 단순함에 기반을 둔 복잡성’  즉, 딥 심플리시티(deep simplicity)라고 했다.


단순함은 이제 종교다. 모두 단순함을 추구한다. 그럼 과거는 복잡했을까? 과거에 사회 구조는 단순했지만 그 구조를 이루는 요소는 복잡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를 보자. 한국에서 1990년대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여름 바캉스 문화가 만개한 시기다. 1990년대 여름 고속도로는 피서객들의 급증으로 늘 정체였다.


‘1990년 8월 2일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처음으로 여름휴가철 서울 톨케이트 차량이  추석 통과차량을 추월하기도 했다.’ 당시 명절 최고 기록은 1989년 추석 때 1일 52,000대였지만 1990년 여름휴가 때 1일 54,500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강릉으로 피서 가려던 사람들 중에는 올림픽대로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려 집에 되돌아갔다가 이른 새벽에 다시 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와서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설되고 활성화되면서 교통량은  분산되었다. 명절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소요 시간은 10시간 이상, 폭설로 막히면 최대 20 시간까지 늘어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6시간 이내로 훨씬 줄었다.


이제 나라 곳곳에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과거에 비해 고속도로는 숨 통이 트였다. 의식도 변했다. 이제 모든 사람이 명절 때 고향에 가야 한다고 생각도 안다. 간소화다. 사회 구조는 다각적으로 복잡해졌지만 그 구조를 이루는 요소들은 단순해졌다.


사회적, 문화적 수용력이 크고 많아지면 단순함은 따라온다. 높은 수용력은 조밀도 떨어트려서 평방 1m 안에 층층이 복잡하게 쌓았던 기능을 분산시킬 수 있다. 어렸을 적 한 방에  같이 생활한 우리 남매의 방은 혼종이었다. 각자의 독립된 방이 생기자 방은 고유의 정체성에 맞게 단순해졌다. 높은 수용력은 오리지널을 인정하는 여유를 만들고 그것은 고유의  가치에 집중한 단순함이 된다.


본질에 집중해라. 조금 더 단순해지라 말한다. 이건 마치 지금 세상은 너무 복잡하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들이 단순함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거친 콘크리트 면이 그대로 보이는 카페에  가도, 버튼 하나 달랑 달린 전화기를 봐도 사람들은 왜 만들다 말았냐고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양한 오리지널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는 각각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집안을  텅텅 비운 미니멀라이프가 가능해진 건 집 밖이 맥시멀해 졌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채우지  못한 건 집 밖에서 채우면 된다. 차가 없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고 밥이 없어도 배민으로 시켜 먹으면 된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무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각각의 기능들이 집안에 매몰되지 않고 집 밖에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다. 오리지널 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다면 그 기능은 더욱더 본질에 집중하여 단순해진다.


복잡성은 단순함에서 기인하고 단순함은 복잡성 안에서 기능한다. 복잡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자들이 복잡성에 접근하는 방식을 대입해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세계가 복잡하고 불가해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 단순함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과학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복잡성 속에서 단순함이 기반하고 있다고 말이다. 복잡성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단순함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반짝일 수 있다. 지금부터 함께 그 단순함을 함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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