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을 하기보다 행동한다. 누군가, '아, 머리 아파'라고 하면 잠시 보이지 않다가 어느 결에 사 왔는지 두통약을 말없이 내미는 사람이다. '쌀이 떨어져 가네. 내일쯤 사야지,' 하면 퇴근길에 어김없이 쌀을 사 들고 온다. 물론 장을 본 박스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며 내가 좋아하는 맥주, 우유 등이 들어있다. 가족이 다 함께 장을 볼 때도 나와 애들은 각기 자신이 원하는 것 한, 두 개를 손에 들고 있지만 남편은 늘 자신은 필요하거나 먹고 싶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물건을 한, 두 개 더 사지 못할 정도로 돈에 쪼들리지도 않았는데 그는 늘 그랬다. 괜찮다고.
남편이 사 온 간식들
그런 그가 요즘엔 자신이 먹을 간식을 사기 시작했다. 단팥빵, 카스타드, 곡물 쿠키.... 처음엔 누가 먹는다고 이런 걸 사 오냐고 했더니 자신이 먹을 거라고 했다. 당신 이런 거 좋아했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처음엔 미안했고 어느 날은 어이가 없었다.
늘 괜찮다고 해놓고 뭐야!
속으로 자책이 되면서 한편으론 화가 났다.
드라마를 보며 몰래 눈물 흘리는 그에게 따져 물었다. 왜 그런 거 평소에 말 안 해주었냐고.
본인도 몰랐단다. 자신이 단 음식을 좋아하게 될 줄을.
갱년기를 겪는 것이 무슨 벼슬이라고 나는 나의 변화와 감정만 보느라 그의 변화는 보지 못했다. 안 먹던 과자를 먹는 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쓰디쓴 인생의 맛은 충분히 봤으니 이제라도 단 것이 필요했던 것일까.
중요한 것은 갱년기를 나만 겪고 있는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드라마보다 자연 다큐를 보던 사람이 드라마를 챙겨 보고, 별스런 장면도 아닌데 크게 웃거나 눈물을 흘린다.
번잡한 걸 싫어하던 사람이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열성적으로 나가고 자신이 먹고 싶다며 음식을 사 온다.
결혼 한 지 30년.
남편을 잘 안다고는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의 말없는 성품이 이젠 답답하지 않으며 , 어떤 일에 분노하고 집중할 땐 두 입을 모으고 입술을 앞으로 삐죽 내밀며, 중요한 일일수록 마음에 품고 말을 아낀다는 것은 안다. 우리와 함께, 혹은 우리 모르게 희로애락을 겪었고 늘 자신을 뒷전에 둔 연민한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다 보니 큰애 가졌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입덧이 심했는데 그는 그때도 나와 함께 입덧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