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도 아니고 3, 5, 7로 울어대는구나! 3, 5, 7은 아랫집 닭들이 울어대는 시간이다. 닭들은 시시때때로 울어대지만 새벽 3시, 5시, 7시엔 더 많이, 더 크게 집단으로 운다.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4년이 넘었는데도 아랫집에서 들리는 닭소리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닭들은 날마다 나의 잠을 방해하고 있다.
서울이나 대도시는 열대야를 겪는 요즘이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해가 지면 시원해진다. 밤이 깊어지면 창을 열고 불을 끈다. 그러면 산 공기가 시원하게 가슴 안쪽까지 밀고 들어와 선풍기도 필요치 않다. 그럴 때마다 '아, 이곳에 집을 짓기 잘했구나.' 하며 감사했다. 의외의 복병이 있는 것도 모르고.
우리 집 아래에는 집 두 채가 있는데 그 두 집에서 모두 닭을 키운다. 은퇴한 사람들이다 보니 서울에서 오는 손자들을 위해 닭이나 거위 등을 키운다. 덤으로 날마다 신선한 계란을 얻을 수 있으니 그 아니 좋을까. 문제는 이놈의 닭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는 것이다. 소리는 위로 퍼진다는 과학적인 사실!!! 어쩌다 쉬는 날 낮잠을 자려해도 닭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요즘 같은 여름날은 더욱이 창을 열어놓기에 밤잠까지 설치게 된다. 몸이 피곤한 날은 더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많이 난다. 오죽하면 마을 이장님께 민원을 넣었을까.
"이장님, 저 놈의 닭소리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블라 블라 블라 굽신굽신 하소연 "
그러나 난감한 표정이 잔뜩 담긴 이장님의 답변을 받았을 뿐 닭은 오늘도 목청껏 울고 있다. 복날은 왜 그냥 지나간 거냐며 화를 내는 나에게 남편은 혀를 끌끌 차며 예전 집의 개구리를 잊었냐고 한다.
서울에서 처음 이사와 얻은 집은 대청마루가 있는 오래된 한옥이었다. 나는 그 집이 참 좋았다. 운치가 있고 제법 규모도 있는 집이라 그 집을 살까도 생각했다. 주변 논에 물을 대기 전까지 그 집은 이상적인 집이었다.
농사철이 되어 논에 물을 대기 시작하자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다. 개구리들은 선창자가 먼저 울고 나머지가 떼로 따라 우는데 그 소리가 아주 리드미컬하다. 사방에서 밤마다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나는 급기야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폭탄을 구해 그걸 던질까? 하는 유치하고 무서운 생각도 했다. 그러다 어느 해 여름, 지인들이 놀러 왔다. 아침 인사를 건네는데 모두들 괴로운 표정이다. 개구리 소리에 잠을 자지 못했다는 하소연이었다. 순간 나는 "개구리가 울었어??"하고 물었다. 친구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개구리 소리에 익숙해져서 내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란 글이 있다. <열하일기> 중에 나오는 글로 '하루 밤에 강을 아 홉 번 건너다'라는 뜻이다. 밤중에 무엇하러 강을 건넜겠는가. 연암은 황하강의 한 지류 옆에 집을 얻어 한동안 체류한 적이 있었다. 강 옆에서 지내다 보니 물소리에 귓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다 연암은 깨닫는다. 거칠고 누런 황하의 물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것을.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는 대나무밭에 부는 바람 소리로 들리고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 천둥 치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었다.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의 개구리 소리 때문에 폭력적이고 극단적 생각까지 한 나였으나 어느새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한 지 4년을 넘긴 여름이었다.
그래. 이곳에 온 지도 4년이 넘어가는구나. 나는 이번에도 조만간 개구리 소리에 이어 저 닭소리도 들리지 않는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그런데 그 도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애석하게도 오늘은 아닌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