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와 포도주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마치 상냥하게 웃으며 사람을 휘두르는 것처럼 오늘 날씨가 그랬다. 햇살은 환하고 맑은데 공기는 매우 쌀쌀하고 바람은 차다. 건들거리는 파라솔을 걷고 담요를 내다 무릎을 덮었다. 해가 머리 위에 있는데도 제법 춥다. 이런 차가운 날씨가 나는 참 좋다. 따뜻한 차가 들어가니 정신이 더욱 맑아진다. 앞산은 물들어 가고 날씨는 쌀쌀하고, 따뜻한 차에 슈베르트... 이런 호사가 없다.


겨울 옷 주머니에서 잃어버린 묵주를 찾았다.

참 기쁘다.

저녁 식사 때 남편이 두 달 전에 담근 포도주를 내왔는데 맛을 보니 조금 덜 익었다. 단맛과 포도의 시큼한 맛이 따로 논다. 다시 뚜껑을 닫고 더 익히기로 한다. 다용도실 어두운 구석에 놓아두었다.


오늘 맛본 포도주는 텃밭에서 난 포도로 담은 것이고 묵주는 지인이 직접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에 상관없이 귀하다. 포도주가 잘 익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날이 더 추워진다고. 눈이 내리는 날 포도주를 꺼내 마실 생각을 하며 묵주를 들었다.


'어머니 호흡이 순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부신 날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시음 포도주, 되찾은 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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