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라 하기엔 잡풀인 것 같고 풀이라 하기엔 꽃으로 보이는 봉오리를 달고 있는 풀이 마당 끝 펜스를 따라 잔뜩 피어 있다. 줄기와 잎은 진한 갈색과 녹색으로 물들어 있고 줄기가 갈라지는 곳과 줄기 끝은 자줏빛을 띤다. 꽃봉오리는 노란색을 머금은 뭉툭한 머리의 작은 바늘을 빈틈없이 꽂아 카키색 손수건으로 싸놓은 것 같다. 잎과 꽃, 줄기의 모양은 여린 듯 하지만 꿋꿋하며 색감은 진하면서도 차분히 가라앉은 것이어서 청명한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산이나 들에 나갔을 때 옷이나 신발에 달라붙어 떼어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도깨비풀 씨앗은 알았는데 도깨비풀은 몰랐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한 움큼 꺾어 올리브색 물병에 꽂아본다. 잘 어울린다. 그런데 창가에 둔 물병이 적막하다. 햇살 때문이다. 가을 햇살 아래 사물은 쓸쓸하다. 그래서 가을 풍경이 마음을 건드리나 보다. Rachael Yamagata의 노래를 들으며 그려본다.
요즘 들꽃을 그리면서 특유의 몰입감이 생겼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 그리는 그 자체에 집중하면서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잊는다. 결혼 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서운함도 노쇠한 어머니에 대한 걱정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코로나로 인한 위기도 모두 잊는다. 그림을 그리는 나도 잊는다. 억지로 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사라지고 내가 염려하던 사람들과 번잡한 일상이 사라진다. 특히 이런 들꽃과 같이 작은 사물을 그릴 땐 더 몰입하게 된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잊고 그림에 몰입하면서 기분 좋은 해방감을 맛본다. 시간이 더 지나버리기 전에 글쓰기와 그림을 선택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내 글을 읽고 내 그림을 본 누군가가 나를 비웃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지만 그 두려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다행히 나는 안다.
도깨비풀이 누군가에게 달라붙어 씨를 퍼뜨리고 번식하는 것처럼 글쓰기와 그림은 나를 몰입하게 하고 해방감을 가져다주는 씨앗이다. 이 씨앗이 내 몸에 붙어 글을 쓰게 하고 그림을 그리라고 속삭인다. 이 씨앗이 맺는 열매 또한 해방이다. 해방 -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놓여나 자유로워지는 것.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인 '깃발'이 그토록 하늘을 바라보며 '푯대'로부터 놓여나길 '절규'하던 그 '아우성', 춘향이 향단에게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달라'며 달을 따라 '서쪽 나라'로 가고자 원했으나 그넷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의 슬픔은 모두 해방과 자유를 향한 '몸짓'이었다. 나는 또 한사람의 '춘향'이며 또 하나의 '깃발'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넷줄'과 '푯대'에서 놓여나 자유롭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내 자유에 대한 확인이다. 그것은 내면의 근육이 벌크업 되며 내가 묶인 채 놓여나지 못하는 '그넷줄'이나 '푯대'에서 나를 풀어주는 해방을 맛보는 일이다. 도깨비풀과 물병에 비친 햇살을 보며 나는 세상에서 놓여난다. 이런 행운이 또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