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늘 어머님이 계시는 큰댁으로 가서 명절을 지내곤 했다. 그러다 올봄 치매가 진행된 어머님은 요양원으로 가셨고 조카들까지 졸업 후 각자 생활로 집을 비우면서 큰댁엔 형님과 시숙 내외만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며느리를 맞이했다.
내 직업 상 추석 때가 되면 학생들 학교 시험과 수능 준비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늘어난 수업과 상담, 교재 준비 등으로 바빠진다. 명절 분위기로 다들 고향을 간다, 어쩐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추석 특강을 하거나 보충 수업을 하느라 시댁에 갈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추석이나 설 당일 아침에 가서 인사드리고 시댁 식구들과 밥 한 끼 먹고 오는 게 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형님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형님은 장을 보고 김치를 담그며 대부분의 음식을 혼자 만들었고 손님맞이와 배웅도 모두 형님 몫이었다. 시댁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친정에 갈 때도 있었으나 교통체증을 핑계로 점차 친정에 가지 않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변명이지만 나는 늘 피곤했다.
올해 나는 고3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시댁에 가지 않고 며느리와 처음으로 명절 준비를 했다. 장보기 목록을 만들고 남편이 장을 봐 왔다. 아들 내외는 추석 전 날 오후에 도착했고 며느리와 나는 전을 부치고 산적을 만들었다. 줄어든 식구와 시대 상황 때문에 방문할 손님도 없어 장보기와 음식 준비를 간략하게 했고 음식 종류나 양도 두 끼 먹을 정도만 준비했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우리는 10시 전에 일을 끝내고 쉬었다. 추석날도 게으르게 움직였다. 늦은 아침을 먹고 얘기를 나누다가 점심은 생략한 채 아들 내외는 처가로 갔다.
다시 남은 우리 세 식구는 아침 식사 때와 다르게 단출한 저녁 식사를 했다.
주방 정리를 끝내고 큰아들 방을 보니 침구 정리를 해 놓은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큰 방도 아닌데...왜 이리 휑하냐. 아들이 묵고 간 침대에 앉아 본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든다. 머리의 판단과 가슴의 감정이 따로 놀고 아들의 어린 날이 떠오르면서 모든 감정이 한 데 뒤섞여 내 감정을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뜨겁고 낯선 것이 치밀어 올랐다. 마당으로 나갔다. 찬 기운이 훅, 얼굴에 닿았다. 달이 뜨지 않아 더욱 어둠에 잠긴 앞 산을 바라보며 한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아무 말없이 TV를 보았다.
횡성에 계신 엄마와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두 아버님은 세상에 없고 한 분씩 세상에 남았으나 그 어머니들은 날로 야위어 가신다. 한 분은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고 한 분은 질환으로 투병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나라에서 가지 말라하니 오지 말라며 굳이 전화하신 어머니. 아뇨, 엄마. 엄마가 반대로 얘기하시는 거 이제 알아요. 내가 아들이 묵고 간 빈 침대를 보고 말았거든요.엄마의 말을 그동안 알아듣지 못한 건 저 빈 침대를 보지 못해서였어요. 이것도 핑계지만요.
자식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빈 침대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면 너무 늦은 변명일까. 때 늦은 변명과 그동안 모른 척했던 죄책감 사이에 놓인 자식은 어리석다. 발 빠른 움직임만이 부모를 향하는 최선이며 전부인것. 그래야 더는 풍수지탄에 빠지지 않는 기회를 얻을 것이기에.지금 내겐 분가하여 자신의 가정을 꾸린 아들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더는 기다리지 않도록 어머니께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