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동안 잘 몰랐던 우리 가족의 재발견
#5. 그동안 잘 몰랐던 우리 가족의 재발견
퇴사를 하고나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딱히 고정적으로 꼭 가야하는, 출근 해야하는 곳이 없어져서 그런것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마음과 물리적인 시간의 여유가 생기다보면 나 자신, 우리 가족, 내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생긴다.
이번에는 이런 기회에 알게 된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나는 경상도 토박이다. 부모님 두분 모두 다 경상도에서 태어나셔서 경상도를 떠나보신 적이 없으신 분이다. 나도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경상도에서만 자랐다. 누나들도 마찬가지.
그러다보니 가족 모두 개개인별로 자기 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있다.
1. 아버지
아 물론 그 중에서 우리 아버지의 성격은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옛날 경상도 남자라고 생각하면 딱 맞다. 오히려 더 강할지도 모르고.
하여튼 그렇다보니 어머니는 항상 상대적 약자셨던거 같다. 항상 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입장이었고, 어머니께서는 해명을 하시는 입장이셨다. 물론 이런 구도는 내가 대학을 입학하면서 집을 나올 때까지도 계속 되었다.
그래서 우리 남매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항상 무섭고, 엄격하고, 고지식하고, 고집이 있으신 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집에 내려가서 장시간 있다보니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있어 항상 1순위는 가족이었다. 그 중에서도 당연 어머니가 최우선이었다. 어머니를 위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부분을 자동화하기 위해 노력하시고, 그렇게 생긴 시간을 어머니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쓰셨다. 봄이면 진해 군항제를, 여름이면 계곡에 피서를,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가득한 들판으로, 늦가을에는 국화축제를, 겨울이면 근처 설산으로 나들이를 가셨다.
물론 아버지께서 자신의 일을 자동화하기 위해서 일은 만들어 하실 때면 어머니께서는 항상 "일하기 싫어서 저런다. 또 일을 만든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건 우리 아버지가 일을 적게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내면에는 그렇게 시간을 만들어 가족과 보내려고 하셨던 것 같다.
이번에 집에가서 아버지를 보니 예전에 너무 무섭고, 너무 크시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점점 굽어져가는 등만 보였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항상 성격이 급하고 무서운 그런 '영웅'이었는데... 이제는 점점 늙어가며 털이 빠지고 있는 숫사자만 남아 있었다.
2. 어머니
어머니는 항상 설명을 해야하시는 분이셨다. 아버지께서 언성을 높이시면 어머니께서는 설명과 해명을 하면서 아버지를 진정시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누나들과 나는 항상 어머니 편이었다. 어려서도, 크면서도, 커서도.
아버지는 독재자, 어머니는 핍박 받는 가여운 분이셨다. 앞서 말한대로 아버지는 키도 크시고 풍채도 좋으셨다. 어머니도 작은 키는 아니셨지만 아버지 옆에 계시면 한 없이 작아 보이셨다.
그래서 우리 남매의 어릴적 목표는 꼭 성공해서 어머니께 효도를 하고 싶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그당시에는 아버지께도 효도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이번에 집에 가서 보니, 아니었다. 엄연히 말하면 '지금은 아니다'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가면서 집에선 나와 살았고 그 기간이 벌써 15년이 넘어간다. 그러니깐 부모님 두분의 관계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이번에 보니 어머니께서는 생각보다 아버지께 불평을 직설적으로, 노골적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그게 아버지께는 상처가 될 만큼. 물론 그 동안 살아오시면서 상처 받으신 것에 비하면 아주 적겠지만.
그리고 어미니께서는 아버지가 우선 순위 1번이 아니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자식이 1순위라고는 하지만.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아니셨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를 보면서 서운하셨을 것 같다. 자신은 항상 자기 와이프가 1번인데, 와이프는 자식들도, 일도, 주변 사람들도 다 챙기는 스타일이니.
예전에는 그런 갈들에서 항상 아버지가 불평을 하고, 화를 내는 입장이었고 어머니는 그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관계가 변했다. 어머니는 더이상 아버지의 불평을 듣고만 있지 않으신다. 아버지의 불평에 매섭게 되받아치신다. 한편으로는 마땅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불쌍하기도 하다. 우선순위의 차이 때문인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와이프라니.
이번에 다시 본 우리 어머니는 매섭게 날이 선 암사자이다.
3. 누나
나는 누나들이 있다. 누나들도 다 각자의 성격이 다르다. 아니 같은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 다르다. 특히나 성격이 정말 천차만별이다.
얼마전에 바로 위 누나와 술을 먹은 적이 있다. 물론 주제는 나의 퇴사.
그런데 갑자기 누나가 우는 것이다. 그것도 펑펑. 나도 놀라고 누나 본인도 놀랐다.
울었던 이유는 '내가 퇴사를 고민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 누나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한 것은 남자 형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고민을 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누나들이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게 아니냐?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을 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 해야한다.'라는 매형의 말 때문이었다. 우리 매형이 또 쓸데없는 소설을 쓴 것 같다.
사실 내가 퇴사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누나들에게 의견을 안 구한 것은 아니다. 누나들에게 말했었다. 물론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단계에서 통보를 한 것이지만.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누나들이 여자형제라서 남자인 나의 삶에 대해서 공감을 못하고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니 오히려 가끔은 너무 많은 관심을 주는게 부담스럽기도 하였고, 내 삶에 여러 부분을 많이 도와준 부분이 너무 고마울 뿐이었다. 흔히 드라마에 나오는 남매의 관계보다 나와 우리 누나들이 관계가 더 돈독했다고 나는 자신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느낀바가 있다. 누나들은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이게 왜 미안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한다. 내가 남자 형제가 없이 자란것에 대한 미안함?... 아마 남들이 보면 욕할 것이다. 나의 형제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난 무조건 내 위로 형이 3명은 있는 그런 얼굴과 덩치, 그리고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뭐 하여튼 누나들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몰랐던 누나의 속마음을 들었는데, 결국 나도 그날 같이 펑펑 울었다. 번화가 술집 한 가운데서. 누가 보면 우린 영락없는 이산가족이었다. 하.. 정말 부끄럽다.
누나들에게 있어 나는 항상 떡을 먹기 싫어 울면서 집을 돌아다니던 꼬마인가보다.
그래도 난 우리 가족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이 세상이 다 나를 욕해도 가족들은 내 편일 것임을 알기에.
오늘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말해야겠다. "사랑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