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과거 삼팀 팀장 Nov 08. 2023

퇴사를 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1

#1. 이제는 단체로 밥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1. 이제는 단체로 밥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어느덧 퇴사를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에 들어가서 12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했다. 물론 이곳저곳 근무지를 옮기기는 했지만 하는 일이 비슷한 곳들이어서 이직이나 퇴사라는 느낌은 없었다. 

남들은 힘들다, 어렵다 등 많은 불평들이 있었지만 나는 솔직히 괜찮았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보냈다. 

하지만 더 이상 여기 있는 게 내 삶에 있어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순간 앞으로도 내가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 생각은 순식간에 내 전체를 덮쳐버렸다. 그러자 나는 퇴사를 했다. 

진짜 순식간이었다. 고민을 하고 결심을 하는데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나는 지쳐있었던 것 같다. 앞서 말한 고민들은 지친 나라는 병을 따는, 적당한 시기의 병따개 역할을 했을 뿐.


퇴사를 하고 나서 6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물론 진짜 방구석에서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기에 '아무것도 안 했다'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며 쉬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앞으로 뭐 먹고살아야 할지 생각만 하고 구상만 할 뿐 다음 직장에 대한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12년 동안이나 근무한 그 직장은 보통 사회의 회사들과는 조금 다른 곳이어서, 거기서의 내 이력들이 일반 회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 나는 무경험자, 무직자가 된 것이다. 


퇴사를 하고 6개월 동안 내 마음대로 지내면서 10가지 정도를 느꼈다.



오늘은 그중에 한 가지를 말해보려 한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는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식사나 회식을 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에 이 시간에 혼자 밥을 먹을까? 혼자 밥을 먹는 게 눈치 보이지는 않을까? 혼자 밥을 먹으면 메뉴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서 좋긴 하겠다" 등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생각을 할지를 생각했다. 잠깐 그러고 나서 얼른 다시 현실의 나에게 돌아왔다. 단체로 밥을 먹는 나의 현실로. 

퇴사를 하고 나니 내가 그렇게 밥을 혼자 먹는 사람이 된 적이 많다. 이렇게 되고 보니 지금 식당에 가면 예전처럼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에 지금은 단체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상사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를 잡는 사람

- 메뉴는 어떤 걸 시켜야 눈치 안 보이나 고민하는 사람

- 어제 먹은 청국장을 오늘 왜 또 먹냐는 표정의 사람

- 밥을 먹는다기 보다는 말로 일을 시키는 상사

- 밥 먹을 때만큼은 일이야기 하지 말자는 표정의 부하직원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표정을 밥을 먹고 있다. 

근데 웃긴 건 분명 내가 회사를 다닐 때도 똑같았을 텐데 그때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때는 내 앞사람이 어떤 표정을 하고 밥을 먹는지, 이 사람의 생각이 뭔지 등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남은 노동을 하기 위한 에너지 섭취, 업무 장소를 기존 컴퓨터 앞에서 식탁으로 옮긴 시간, 그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퇴근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 정도였다. 그때는 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이 안보였을까?

아마 그때는 내가 살기 급급해서 그랬나 보다. 지금은 줄어가는 통장잔고를 볼 때만 아니면 마음은 항상 편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아니 6개월 전 나의 얼굴이 보이나 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고, 어떤 밥을 먹더라고 그 시간 만큼은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당신도 꼭 그러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