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몽상'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몽상가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즐겨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그보다 '꿈꾸는 자',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는 자'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어서 몽상가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나를 종종 망상가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기에 나의 꿈은 헛된 생각 그 이상으로, 비현실적인 데다가 확신만 가득 찬 망상으로 보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꿈이 헛된 생각일지 비현실적인 꿈일지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는 돌고 돌아 이제야 꿈을 향한 첫 발을 막 내디딘 상황이기에.
사실 그것이 몽상이든 망상이든 상관없다. 현재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그럼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평범한 나의 일상이 곳곳마다 알록달록하게 채워진다. 이 길의 끝이 가난일지, 행복일지 알 수 없어 조금은 두려워도.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꿈꾸는 자, 몽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신도 꿈이 있나요?"
내가 만나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꿈이 있는 사람이거나, 꿈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향한 갈증은 모두 달랐다. 나는 그 갈증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사람이었고, 남들처럼 평범한 회사생활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꿈이 있는, 꿈이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공감을 해주는 듯했으나 곧 현실적인 조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그런데 내가 왜 못하고 있겠어?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야."
"나도 꿈이 있어. 그렇다고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으니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면서 점점 키워나가는 거야. 꿈은 이렇게 이루는 거야, 갑자기 내일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는 없어."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거야."
나는 이러한 말들을 들을 때면 답답하기만 했다. '도대체 왜 꿈은 오랫동안 천천히 이뤄야 하는 거야? 앞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왜 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철없는 사람이 되어있는 거지?’ 이렇게 누군가 나를 공감해 주는 듯한 말로 시작해서 현실적인 조언으로 끝날 때마다, 나도 꿈이 있지만 현실에 부딪혀 참고 사는데 왜 너는 꿈을 쉽게 이루려 하냐는 것처럼 들린다. 꿈은 현실적이지 않고 추상적인 것, 어려운 것, 멀리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건 오히려 이런 생각들이 아닐까.
현실과 타협해서 취미생활로만 유지하는 것, 그냥 꿈꾸는 것만으로 행복했으니 만족하는 것, 지금은 일단 참고 현실을 살아가는 것을 누군가는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조언하지 않는다. 그러니 서로에게 꿈을 향한 그 갈망의 크기를 조절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어차피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사람은 그대로 있을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사람은 뛰쳐나갈 것이다.
나는 꿈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몽상가답게 현실보다는 이상을 좇는 사람이다. 나는 나만의 브랜드와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그동안 꿈꿔왔던 많은 일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고 싶다. 나의 꿈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유롭고 싶어서 프리랜서가 꿈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원하는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시간에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어떠한 꿈을 찾아 방황했던 긴 시간 동안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꿈'이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꿈이 있는지 궁금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그 일이 즐거운지, 혹시 꿈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람들의 대답은 보통 이러했다.
"일이 즐거워서 하나요, 먹고살기 위해 하는 거죠."
"원래 꿈이 있긴 있었죠..."
씁쓸했다. 물론 즐겁게 일을 하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내가 일상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즐겁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꿈을 좇아가면 먹고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가, 이내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생각이 많아졌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은 꼭 어려운 길일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꿈이 있다고 말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크게 두 종류였다. 첫 번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도 꿈이 있다며 서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두 번째는 나도 한 때 꿈이 있었다며 추억을 되새기듯 그 꿈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꿈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내 주변에는 없었다.)
꿈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쩐지 조금 슬퍼졌다. 또 하나의 빛이 희미해져 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꿈을 빛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이 활기차고 밝아지리라 믿는다. 꿈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고, 때로는 힘든 현실을 견디게 해주기도 하니까. 꿈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땐 그렇지 않은데, 꿈이 있었으나 현실에 부딪혀 포기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살기 힘든 이 세상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꿈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꿈이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 모두 즐거워했다. 꿈을 말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생기 있게 반짝였다. 나는 그 반짝이는 눈빛을 보는 일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