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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지 Dec 21. 2023

오리발 데뷔탕트

물 만난 물고기 되기 프로젝트 26

  드디어 초급반을 졸업했다.


  거기에 더불어서 수영장도 옮겼다. 내 수영 인생에 크나큰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직장 바로 옆에 있는 구민체육센터에 상급반 수강신청에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너무도 용이하게 등록이 되어버려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된 거 맞아? 나 다음 달부터 여기로 수영 다니면 되는 거야?” 라며 되뇔 정도였다. 겨울이여서 그런가, 아니면 상급반이여서 그런가.


  무튼 야무지게 서울페이를 사용하려고 결제수단 변경도 하고, 사물함도 서울페이로 결제했다. ‘이래서 공립 수영장을 다니는구나’ 싶은 놀라운 가격이었다. 가임기 여성 할인과 할인된 가격으로 산 서울페이의 활용으로 나의 주머니를 잘 지킬 수 있었다.

  (이제껏 다니던 수영장은 사립이고, 가임기 여성할인도 없어서 무척이나 비쌌다..ㅠ)




  새로운 수영장에 처음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부터 아주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는 짭 교정반인데, 바로 오리발 수업부터 했다. 나는 오리발을 난생 처음 껴보는데 말이다.

  심지어 나는 물속 출발도 할 줄 몰랐다. 친구네로 원정수영을 가서, 갓 물속출발을 배운 친구에게 대략적인 방법을 흘려들은 것이 전부였다. 더 깊게 물속에 들어갔다가 발을 빵! 차야하는데,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서 계속 머리를 갸웃하게 됐다.


  새로운 달이 시작하고 첫 수업이라 당연히 오늘 처음 온 회원을 찾아서 적당한 레인을 배정했는데, 중간 레인 강사님이 일단 자기 레인에서 시작해 보고 안되면 내려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오리발을 처음 해본다. 그 강사는 내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그 레인에 들어갔고 내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다들 오리발을 능숙하게 활용하면 물속을 휘젓고 다니셨다. 정말 물고기 떼의 헤엄을 직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그저 송사리인데..? 갓 태어난 기린인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나는 슬금슬금 움직여서 제일 초보레인으로 이동했다. (그래봤자 상급반이라 다들 물 만난 물고기 같긴 했다.) 강사님들이 나의 상황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빠르게 나의 상황을 잘 전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물밖에서 “자유형 3바퀴~ 배영 발차기만 2바퀴 하고 배영 3바퀴 이어서 갈게요~” 하시는 초보레인의 강사님에게로 손을 뻗어 보였다.


  “제가 오리발도 오늘 처음 껴보고요.. 물속출발도 안 배웠어요.. 그.. 정말.. 양팔접영이랑 자유형 팔꺾기까지만 할 줄 알아요..”

  네? 강사님도 적잖이 놀라셨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강사님도 그 레인 담당 강사님이 아니라, 하루 대체근무로 나온 강사님이셨던 것이다. 그렇게 강사님께서 자신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시고는, 일단 위험하니 킥판 잡고 자유형 발차기 3바퀴만 돌아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의 오리발 적응기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오리발 데뷔탕트를 막연히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더 혼돈의 도가니탕인 오리발 적응기로 첫날 수강시간 전체를 잡아먹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클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던 오리발은 홀랑 벗겨지지 않고, 내 발에 잘 붙어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발목이 아프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내가 ‘오리발을 끼면 발목이 엄청나게 아프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어서 발목 상하 근육 강화운동을 따로 조금씩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물속 출발을 못 배워서 출발부터 어버버 한 것은 물론이고, 멈추는 법도 몰랐다. 속도도 너무너무 무서웠고, 발끼리도 엄청 부딪혀서 뚝딱이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수영복 위쪽으로 물이 세차게 들어왔다. 아주 맨몸으로 수영하는 줄 알았다. 정말 상체의 앞부분을 타고 물이 흘러가는 느낌이 고스란히 들었다. 남자들은 이 느낌을 매번 느끼면서 수영을 하는 것인가. 놀랍다. 약간 소름이 돋으면서 물의 차가움이 직접적으로 바로 느껴지는 것이 정말 별로였다.

  처음에 다른 수영인들이 ‘가슴으로 물 들어오는 거 진짜 싫지 않아요?’ 할 때, 뭔 소리지? 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정말 끔찍했다. 내 수영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정말 나는 그 정도로 하수였다.

  그래서 나의 최애 수영복이자 첫 수영복으로 입었던 보라돌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늘어날대로 늘어나 버렸으니 수영장에서의 네 쓰임은 다 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다음에 바다수영할 때 입어줄게. 고마웠어!




  오리발을 신고 수영을 하니까 25미터가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렇게 빨리 벽에 도착한다고? 하루치 운동량을 다 못 채운 느낌이었다. 이렇게 계속 오리발로 수영하고 먹는 건 그대로면 살이 찔 것만 같았다. 이래서 자유수영을 꼬박꼬박 나오시는 거구나. 또 이렇게 배워간다.


  접영 출수킥이 늘 말썽이고 아직도 모르겠었는데, 확실히 오리발을 끼고 출수킥을 차니 정확하게 출수! 하는 느낌이 나서 새로웠다. 이게 출수구나, 내가 하던 건 그저 작은 날갯짓에 불과했다...

  말썽이던 것들이 오리발을 신음으로써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접영 출수킥이 가장 크긴 했다. 오리발 수영이 점차 무서움에서 조금씩 재미있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수업 막바지에는 아쉽기까지 했다. 이제 오리발을 조금 알 것도 같은데 벌써 강습시간이 칼 같이 끝나버렸다.

  더구나 이 수영장은 휴식시간이 법과도 같아서 50분이 되면 모두가 물밖으로 나와야 했다. 고로 수업 끝나고 연습시간은 없다. 무조건 자유수영을 나와서 연습해야 한다. 물론 자유수영 때는 오리발을 못 쓴다. 그러니 오리발을 연습하고 싶으면 수업시간에나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었다. 맘처럼 되는 일이 없구나..


  그래도 그토록 염원하던 오리발을 데뷔했고, 새로운 수영장에도 다니게 되었다! 이건 정말 내 수영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임이 분명하다. 교정반 수영은 이런 것인가, 예방주사를 빡 맞은 느낌이라 앞으로의 교정반 수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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