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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Oct 22. 2023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XVII

괜찮아, 제노


도보 한가운데에 엎드려 가쁘게 숨을 몰아쉴 때, 아빠는 차도와 신호등을 바라보던 제노의 뒷덜미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제노 괜찮아?”

“제노 왜 그래..”

“제노 어디 아파?”


그럼에도 끝까지 해주지 못한 말이 있어 작은 후회로 남았다.


“제노, 괜찮아”라고 말하며 다독여주지 못했다. 괜찮은 지 모르겠어서, 나조차도 불안하고 두려워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괜찮아”라는 말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 ‘괜찮지 않은’ 순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아빠였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들에 아프고 무서웠던 제노가 아빠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분명 사실과는 무관해도 상관없는 “괜찮아, 제노. 다 괜찮을 거야.”였을 텐데.




제노가 떠난 이후로 한 달 하고도 2주가 지났다. 떠났다고 표현은 하지만 견생 대부분을 우리와 함께, 우리 집에서 지낸 녀석이 가면 어딜 갔을까 싶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누워있다가 멀뚱멀뚱 올려다 볼 것 같은 기분


더 이상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기엔 흔적과 함께 했던 습관과 기억들이 너무 진하고, 이곳에 함께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엔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반려 동물이 떠난 심적 충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회복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은 약 2개월이라고 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제노 녀석이 없었던 첫 나흘간 흘릴 수 있는 모든 걸 흘려서인지 더 이상 눈물은 쉽게 나지 않는다.


지난 한 달 반 가량을 살면서 가장 놀란 부분 중 하나는 아이들이 각자 제노의 부재에 보이는 태도였다. 정확히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강인함에 놀랐다.


엄마와 아빠가 제노 얘기라도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쪼르르 나타나 엄마아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허벅지를 꼬옥 끌어안는 첫째 햇살이.


평소에는 늘 무심한 척해왔지만 벌써 몇 차례나 어느 저녁마다 제노 오빠 보고 싶다며 한참을 통곡하는 둘째 별님이. 이미 제노 오빠 보고 싶다면서 유치원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도 몇 차례나 된다는 소식도 애써 삼켰다.


식사 중에 “제노 형아 어딨어?” 하면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자기 유아 의자 아래에 엎드린 제노를 가리키곤 했었던 버들이. 아직 갓 두 돌도 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았던 버들이는 그때와 같은 질문을 던진 엄마와 아빠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마치 “형아 여기 없어”라고 답하듯이.


마지막 한 해, 너희들이 어떤 모습으로 늘 함께 했는지




2014년 10월 세상에 놀러 온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는 만 아홉 해를 채우기 직전인 2023년 9월,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이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돌아갔다.”


지난 36화가 게시되었던 것은 무려 3년도 전이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고 아이 둘, 나아가 셋으로 늘어나는 육아 행군도 있었다. 그러나 연재를 중단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부담감’과 ‘미안함’이었다.


그저 ‘이런 반려견 일기도 있습니다 ‘,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끼적거린 부족한 글들 덕에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많은 분들이 제노를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상황이 감사한 동시에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주제에 대해 편히 적어 내려 가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 반려견에 대해 적어 내려 갈 ’소재‘를 찾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더 이상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노를 이야기하는 마음에 있어 순수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너는 아빠의 세상에 있어 순수함 그 자체였으니까,




이제껏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생소하고, 어쩌면 현실적으로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여 여러 고락을 함께 겪는 새로운 삶. 나아가 늘어가는 가족들과 함께 서로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해 왔다.


마치 선물처럼 기적처럼 운명처럼 우리 삶에 들어왔던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는 스스로 비롯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늘 그렇듯 아직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위에 기술한 바 있듯 녀석이 정말로 없다기엔 너무나 우리 삶 깊숙한 부분까지 흔적이 많고,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흔적만 많은 상황.


그리하여 제노의 아빠로서, 그리고 햇살이와 별님이와 버들이의 아빠로서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제노가 떠난 세상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제노와, 녀석이 몸 담았던 우리 가족 이야기를 계속하려 한다. 반려견의 일생이 이른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 종결지어지고 그 이야기가 끝날 필요는 없다. 제노의 행복한 이야기와 즐거운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면 슬프고 아픈 이야기도 함께 나누어야 비로소 이 이야기 여정도 완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제 제노와 함께 산책할 수도 없고, 드러누운 녀석의 귀를 어루만지며 속삭일 수도 없지만 나는 녀석의 명실상부한 아빠이기에, 녀석의 이야기를 끝맺음까지 던지는 이야기꾼이고자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슬픔에 잠겨 있기엔 우리에게도 언젠가 제노와 만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언젠가 우리도 저 너머로 향할 것이기에 상실에 대해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것은 생명 현상에 대한 오만'일지도 모른다. 다만 기회가 있다면 제노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제노, 괜찮아. 엄마도, 햇살이도, 별님이도, 버들이도, 아빠도 다들 많이 슬퍼했고 여전히 슬퍼하고 있지만 우리 제노가 이제 편안하고 아프지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그쪽에서, 어쩌면 우리가 널 보지 못하는 바로 우리 곁에서 외롭게 기다리고 있다면 아빠가 약속할게. 언제나 그랬듯, 때가 되면 꼭 우리 제노 데리러 갈게. 늘 그랬듯 함께 산책하고 또 산책하자. 괜찮아, 제노. 아빠는, 우리는, 제노를 변함없이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괜찮아, 제노. 편히 쉬면서 기다려 주렴.”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이곳에 이렇게 있어주길,




다음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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