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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by 글짓는 목수

“무엇보다 나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게 도와준 ‘선한 운명’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에서 –


선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일까? 아니면 쓰면서 선하게 변하는 것일까? 선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면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리기 위함일 것이고 쓰면서 선하게 변한다면 자신 안에 어둠을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쓰는 것이리라. 이 둘은 개별의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선후의 과정이며 서로 연결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작가가 아니고서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데 글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이건 쓰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바쁜 현대인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세상엔 해야 할 일과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 하물며 읽는 시간도 부족한데 어찌 쓰리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면 자신 안에 무언가를 토해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글쓰기가 혼자만 보는 일기에서 시작해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로 나아가는 과정이 쓰면서 스스로 선해지고 선해진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다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자신 안에 어둠을 밀어내고 빛의 영역으로 나가가는 과정이 글쓰기에서 드러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작가도 젊은 시절 오랜 시간 자신의 어둠을 글 속에 토해내는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글쓰기는 세상을 향한 반항과 모순을 향한 저항을 품고 시작되었다.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소리를 내지르는 과정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그것이 시간을 견디고 계속되면서 글은 정제되고 자신만의 글이 아닌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상생하는 글로 나아가게 된다. 글도 인간처럼 성숙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건 니체가 말한 것처럼 뜨거운 모래사막 위를 걸어가는 낙타처럼 주인 손에 끌려 노예처럼 살다가 반항하는 사자로 돌변해 포효하다가 다시 세상을 초연하고 신비롭게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 (서평참조)



김영하 작가는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내고 찾아온 시간 그들을 추억하며 산문집을 만들었다. 누군가가 살아있을 때 그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건 글이 그 상대를 향한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입 밖으로 타인의 험담을 내뱉으면 안 되듯이 글로도 타인의 나쁜 기억을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다.

김영하 (1968~)

그렇다고 동화처럼 마냥 좋은 기억만 쓸 수도 없다. 그런 글은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 글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품고 있어야 한다. 글은 경제성장의 그래프처럼 우상향의 스토리가 아니다. 롤러코스터와 같다. 글 속의 주인공이 현실에 살아서 저자와의 나쁜 기억을 담은 글을 읽게 된다면 아주 서운해할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이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과거 쇼팽의 연인 조르주상은 자신의 소설《루크레치아 플로리아니》 (1846) 속에서 쇼팽에 대한 서운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드러내었다. 결국 그 소설로 둘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서로는 죽을 것 같이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안에서도 서운함과 미움과 같은 감정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쇼팽과 조르주 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운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지만 그 감정들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마음속에 품고만 살며 얘기하더라도 당사자와 접점이 없는 이방인과 같은 이들에게 말할 뿐이다. 그래야 부메랑이 되어 현실의 삶으로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삶의 바운드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도 함께 가려줘야 하는 의무도 함께 짊어진다.


그래서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은 때론 짐처럼 무겁고 때론 가시처럼 따갑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 가족과 지인들은 우리의 기억에 타인들보다도 많은 기억을 남겨주고 떠난다. 그 기억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문득문득 감정을 품은 기억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건 너무도 익숙해 느끼지 못했던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3차원의 공간이 사라져 버리고 그 공간이 모두 기억으로만 대체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과 기억의 총량만큼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제는 그런 기억들을 꺼내야 할 시기임을 알았던 모양이다. 이건 어쩌면 작가의 삶에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최종 관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에는 무한한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삶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글을 쓴다는 것, 이제는 상상만큼 축적된 삶의 기억들을 재구성할 시기인 것이다. 과거 감정을 품고 있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든다. 장 자크 루소와 레프 톨스토이 같은 철학자와 문학가도 말년에 고백록과 참회록으로 자신을 삶을 되돌아보는 글을 남겨서 후세에 감동을 남겼다. 젊었을 때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이제는 자신 안으로 돌리는 과정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던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과 남들에게 관심이 팔려 살다 늙어서 다시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루소(1712~1778)와 톨스토이(1828~1910)

김영하 작가, 이제는 소설보다는 산문 에세이가 더 잘 어울리는 작가가 된 듯하다. 그도 이젠 상상의 영역보다는 기억의 영역에서 더 많은 소재들을 가져올 수 있는 나이가 된 모양이다. 인생의 중반부를 훌쩍 넘긴 노년과 중년의 가운데를 사는 작가는 이제 세상에 대한 반항적 태도가 아닌 관조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과거의 기억들을 반추하고 있다. 글에 초연함이 묻어난다. 젊은 시절 열정과 힘이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세상을 관조하는 능력이 무르익은 듯하다.


관조하는 능력이 길러지면 사람들과 부대끼며 얻는 동적인 경험보다는 가까운 주변의 사물과 환경같이 정적인 것들로부터 새로운 경험과 영감을 얻게 된다. 이건 마치 거시적 물리 세계의 법칙에서만 살다가 이제는 미시적 물리 세계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작가들이 장편을 집필하기 위해 칩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일상의 만남과 관계로부터 잠시 떨어져 지내는 건 이와 연관이 깊을 것이다. 작가는 결국 현실의 새로운 경험과 만남과 사건 사고들부터 글감과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어찌 보면 젊은 시절의 경험담이 글이 되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작가는 현실의 이렇다 할 새로운 경험이 없이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방구석에 앉아 있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남들 보다 뛰어난 관찰력과 호기심 때문이다. 카뮈의 <이방인> 속 주인공 '뫼르소'처럼 독방 감옥에 갇혀서도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그런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무관심하고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

백선(白鮮), '조화(Harmony)'의 꽃말을 가진

매번 걷는 같은 산책로와 등산로에서 새로운 꽃과 벌레와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것들이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같은 곳에서도 다른 것을 보고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멀리 새로운 장소를 다니는 여행 가이드도 이런 관찰력이 없으면 매번 새로운 여행지를 가더라고 그의 눈에는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귀찮고 힘든 관광객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들의 니즈에 맞춰야 더 많은 팁을 받을 수 있다.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 장소가 바뀌어도 볼 수 없는 자는 결국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등산 중에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어찌 보면 가장 손쉽고 저렴하게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종이와 펜 혹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자신 안에서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가난해도 계속 쓸 수 있는 이유이다. 사실 배부르면 쓸 수 없는 게 글이기도 하다. 나는 삼시 세끼 다 챙겨 먹으면서 글을 쓰는 전업 작가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요즘 거의 매일 한 끼만 먹고 있다. 물론 간간이 간식을 보태기도 하지만 식탁 앞에 앉아서 먹는 식사는 한 끼가 보통이다. 물론 지인과의 약속이나 만남이 있을 때는 간혹 두 끼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읽고 쓰는데 배속에 음식물은 도움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쓰려면 뱃속을 비워내야만 한다. 비워내야 글을 채울 수 있다. 음식물로 가득 찬 배는 뇌로 갈 산소를 빼앗아 갈 뿐이다.


선한 영향력


며칠 전 부산역에 갈 일이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역사 안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나의 뒤를 밟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점점 나와의 거리를 좁혀오더니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뭔가 웅얼거렸다. 그녀는 야구모자에 후드티의 모자까지 덮어쓰고 입에는 마스크까지 한 채 눈만 내놓고 다가왔다. 눈빛도 힘이 없어 약간 흐리멍덩해 보였다. 더욱이 후드티 앞에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있어 혹여 흉기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저기, 뭐라구 하셨어요?”


나는 뒤돌아 멈춰 섰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고 말했다.


“밥을 못 먹어서 그런데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미안해요, 현금이 없네요."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나는 현금이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 젊은 청년이 역사 안에서 구걸하는 모습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왜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나는 다시 등을 돌려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자꾸 그 청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역사 밖을 나와서 잠시 멈춰 섰다. 역사 안에서 들었던 감정과는 다른 감정들이 나의 깊은 곳에서 샘솟아 나고 있었다. 그 감정들은 나의 청년 시절의 고단함과 힘듦을 담은 해마 깊은 곳에 있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편도체를 자극해서 감정을 싣고 나의 전두엽에 재생 되었다. 사람마다 그 힘듦의 경중은 절대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근처의 편의점에 ATM기를 찾았다. 현금을 뽑고 1+1음료를 사서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미안함과 아쉬움이 섞인 것이었다. 5분여 동안 역사 안을 두리번거리다 포기하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4번 플랫폼 에스컬레이터에서 빠져나오는 승객들 속에 그녀가 서서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방금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에게 구걸을 할 모양이었던 모양이었다. 바삐 자신의 길을 재촉하는 인파 속에 홀로 멈춰 서서 구걸의 대상을 물색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어눌해 보였다. 그녀는 전문가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저래서 어디 밥 빌어먹을 수 있을까?

복숭아 or 자두

“저기요, 복숭아와 자두 중에 뭘 좋아하세요?”

“네?!”

“여기 이 돈 받으시고요, 꼭 밥 사드세요. 다른데 쓰지 마시구요”

“감…감사합니다”


그녀는 좀 전에는 거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이젠 좀 들렸다. 그녀는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나는 자두를 들고 빨대를 꽂아 그녀가 보는 앞에서 한 모금 빨아 마시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보이고는 역사를 빠져나왔다. 뿌듯함과 슬픔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역사 앞에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 동안 그 감정에 취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는 전에 없던 행동이 생겨났다. 언제나 나의 처지만 생각하고 걱정하던 나였다. 그런 자들에게 돈과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나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았다. 만약 읽기만 했다면 아니었지도 모른다. 쓰면서 읽은 것과 나의 삶이 연결되면서 변화가 생겨난 것 같았다.


문학과 철학 책 속에서 피어나는 타인의 삶과 타인의 생각이 기존의 나의 삶과 나의 생각이 충돌하고 섞이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그 읽고 쓰는 시간이 8년이 흘렀다. 그리고 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이것을 스토리로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방금 전 역사의 행인들처럼 그녀를 스쳐지나 갔다면 스토리는 없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멈췄고 되돌아가서 그 청년을 다시 만남으로써 나와 그 청년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짧지만 강렬한 스토리를 하나씩 가져가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 나의 글 속에서 재현되고 그 청년은 살다가 어느 순간 역사에서 복숭아 쿨피스를 건넨 아저씨를 떠올릴 날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게 도와준 ‘선한 운명’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내가 독후감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건 나 또한 김영하 작가처럼 쓰면서 어둠을 밖으로 밀어내었고 때문에 그 빈자리에 선함이 조금씩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선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선해지고 쓴 것은 선한 영향력이 된다. 그럼 우리가 선한 운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선한 영향력으로 한 편의 글을 쓰고 하루를 시작한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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