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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과 불확정 사이

[퀀텀의 세계] 이순칠

by 글짓는 목수

“불확정성 원리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지, 하나만 알려고 할 때에도 제한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위치나 운동량 둘 중 하나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 이순칠 [퀀텀의 세계] 중에서 -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간은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과학(물리학)은 불확실한 세상의 이치를 확실한 공식과 이론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그 과정은 증명이다. 우리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우리도 증거를 통해 모든 것을 말하고 판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의 옳고 그름과 그 경중 또한 모두 증거를 통해 증명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건 모두가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확정은 거시 세계에서만 통하는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에는 확정이란 없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확정하려고 한다면 그 무언가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는 불확실한 미시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삼라만상은 모두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 이순칠 [퀀텀의 세계] 중에서 –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가?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일단 빛이 두 가지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19세기 전까지 빛은 파동으로만 인식되었다. 입자는 질량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빛은 질량이 없다. 그리고 어디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파동(파도)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빛이 광자라는 입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자물리학이 태동한다. 그리고 양자물리를 연구하는데 전자라는 빛(광자)과 비슷한 속성을 가진 원자 속의 입자를 이용하면서 전자 또한 입자와 파동의 두 가지 성질을 지닌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런데 이놈은 질량이 있다. 세상 모든 물질(질량을 가진)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물리학의 대전제(증명된)를 생각한다면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라는 구성을 이루고 있고 그중 전자가 두 가지의 상태를 가진다. 그럼 모든 물질이 두 가지의 상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해 볼 수 있다. 왜냐 나를 이루고 있는 원자(양성자+중성자+전자) 속 전자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기 때문이다. 이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오게 되면 세상을 보는 관념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혼돈이 시작된다. 카오스다. 그 무엇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리처드 파인만 (1918~1988)

“양자물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리처드 파인만 -


20세기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가 말했다. 양자역학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이 세계에서 확실과 확정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확률과 경우의 수로서만 얘기하는 영역이며 그 확률 또한 확실하지 않다.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확실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누구의 설명이 좀 더 많이 이해하게 해 주느냐의 문제일 뿐. 그런 점에서 파인만이 가장 많은 이들에게 가장 많은 불확실함을 알려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물리학자이면서 또한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후임 양성에 힘썼다.


혼돈에서 혼돈으로


그리스 신화의 시작은 카오스(혼돈, 무질서) 에서부터이다. 신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카오스(혼돈, 무질서)가 신을 낳았고 신이 물질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양자의 세계가 바로 카오스와 다름없다. 혼돈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세계이다. 기존의 고전물리학의 관점, 즉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 자체가 카오스라기보다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즉 그 어떤 규칙성(패턴)도 허락하지 않는 상태라서 그렇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이다.

카오스 by George Frederic Watts

이건 칸트가 관념론을 통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인간의 뇌의 인식 능력의 한계로 인해 다른 생명체의 관념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30만 년 동안 호모 사피엔스를 지배하던 세상을 보는 (거시적, 가시적) 관념이 고작 발견한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양자물리의 세계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양자(量子, Quantum)의 가능성


여기서 나는 또다시 양자역학을 설명하고 싶진 않다. 과거 그에 관련한 독후감을 쓴 적이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해하고 썼는지도 모르겠다. [김상욱의 양자 공부](서평 참조)


뭐 파인먼이 말했듯이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다. 나는 물리학자도 아니고 그저 물리학 관련 교양과학 서적을 서너 권 읽은 것뿐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떠올린 통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고 그것을 좀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지금 글을 쓰는 것이다.

김상욱의 양자공부

우리는 양자의 세계처럼 예측할 수 없고 두 가지의 상황이 공존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세계를 연구하는 것은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힘을 가져다줄 수 있고 세상의 패권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능성, 즉 경우의 수를 다른 인간들보다 좀 더 빨리 많이 볼 수 있다면 이것이 권력이 된다. 세계 각국의 글로벌 IT기업들이 왜 지금 양자 컴퓨팅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는 이와 관련이 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또한 언제 실현될지 모를 이 분야에 목을 매는 것은 이 양자 컴퓨팅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순간 세상을 손에 쥐게 되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열쇠


이건 마치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으로 가는 황금 열쇠를 그에게 쥐여준 것과 같다. 알다시피 베드로는 기독교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교황이 무엇인가? 최고의 권력을 의미한다. 종교에서의 최고 권위와 힘을 상징한다. 물론 지금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고 신권보다 왕권(정치)이나 채권(경제)이 더 큰 힘을 가졌지만 옛날에는 신권이 가장 큰 권력이었다.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 - Pietro Perugino -

양자 컴퓨팅은 이런 황금 열쇠와 같다. 열쇠가 무슨 의미인가. 잠겨진 문을 여는 도구 아니던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반은 온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이제 온라인이 비중은 반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손에 들여있는 스마트폰의 온라인 세계를 통해 보고 있지 않는가. 온라인 세계가 없이는 오프라인 세계가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모든 제어는 이제 메카닉이 아닌 전자식으로 변해버렸다. 자동차도 이제 기계적 고장이 아닌 전기적 혹은 전자적 결함이나 손상으로 멈추는 시대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온라인 세계에 매일 접속하고 그 접속은 언제나 당신의 열쇠를 요구한다. 그 열쇠가 바로 암호이다.


암호 세상


당신이 아침에 잠에서 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을 암호를 푸는 일일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당신은 알람 소리에 핸드폰을 눈앞으로 가져와서 패턴을 풀거나 지문으로 핸드폰의 암호를 풀고 각종 메시지와 정보들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가? 그런데 일어났는데 패턴을 잊어버렸거나 손가락이 모두 잘려서 없어졌다. 기억에 의존하던 우리는 나의 신체가 가진 유일한 암호(패턴, 비번, 지문, 안면, 홍채등)를 이용해서 암호를 해제한다.

암호화 기술

우리의 일상생활은 이렇게 모든 것이 암호로 되어있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혹은 수백 번 그 암호들을 풀면서 살아간다. 다만 그것이 사용자인 나에게 아주 간편한 방식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불편함이나 암호를 푼다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패턴(무질서의 질서)을 거쳐서 풀리는 것이다. 이건 너무도 복잡한 알고리즘이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고전) 컴퓨터 CPU의 연산으로는 풀기가 너무 어렵다. 물론 유능한 해커들이 비상한 머리와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CPU를 동원해서 금융전산망을 뚫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한 번 뚫리면 다시 다른 암호문으로 바꿔서 또다시 며칠 혹은 몇 달 몇 년을 다시 풀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 컴퓨팅은 그것을 단 몇 초 혹은 길어야 몇 분 만에 계속 동시다발적 풀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크고 또한 심각하다. 모든 세상의 시스템이 온라인으로 돌아가고 누군가가 쉽게 나의 암호를 풀어버린다면 나의 은행 잔고가 순식간에 다른 계좌로 옮겨질 수도 있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책상 위에 있는 핵미사일 버튼을 내가 누를 수도 있고 또 다른 더 빠른 양자컴퓨터를 가진 자는 날아가는 그 핵미사일의 방향을 바꿔 돌려보낼 수도 있다. 이것의 관건은 누가 암호를 빨리 풀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Gold & Bit coin

금값과 비트코인


화폐는 무한 증식한다. 화폐는 희소성이 없다. 왜냐 조폐공사에서 마구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힘없는 나라가 마구 찍다가는 한순간에 골로 간다. 그래도 미국 정도의 힘을 가진 나라라야 그나마 좀 눈치 덜 보고 찍어낼 수 있다. 화폐의 가치는 국가의 파워이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희소성 없는 화폐에 대한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모든 화폐가 그저 온라인상의 숫자로 찍혀 있는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 양자 컴퓨팅의 혁신은 온라인 화폐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금값과 비트코인의 가치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것이다. 금은 제조할 수 없다. 연금술은 생산이 아닌 마법이다. 금은 순수한 원자를 가진 광물로 희소가치가 있고 비트코인은 암호가 깨질 우려가 거의 없는 온라인 화폐이다. 둘 다 양자 컴퓨팅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 희소하다. 가치가 올라간다.


확정과 불확정 사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무시했다간 순식간에 내 재산이 사라질 수도 있다. 나만 알고 있는 허접한 암호쯤은 양자 컴퓨터에겐 껌이다. 왜 세상이 양자 물리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이제 이해가 되지 않는가? 눈에 보이는 머나먼 우주를 탐험하는 건 돈이 되지 않는다. 그저 순수한 호기심에 의존한 과학(천체 물리학)이다. 하지만 부와 권력의 욕망으로 넘쳐나는 과학이 바로 양자물리를 이용한 양자 컴퓨팅이다. 핵(양자물리학)과 암호(양자 컴퓨팅)가 미래의 힘에 중심에 있다.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세계에 집중해야 할 때가 왔다. 누구에게나 보이는 확실한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이제 보이지 않는 것과 불확실한 것을 믿어야 한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퀀텀의 세계] 이순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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