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잠을 자야 하는가] 매슈 워커
“우리가 꿈꾸는 사물은 하나의 면만을 갖는다. 우리는 사물의 둘레를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면을 영영 알지 못한다. 삶의 사물들이 지니는 한심한 점은, 우리가 그 모든 면을 전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당신이 지금 상상 혹은 꿈을 꾸고 있다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만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삶은 한 가지 장면만을 따라서 갈 수 없다. 삶은 예상할 수 없는 너무 많은 경우의 사건과 상황이 벌어진다. 카페에서 연인과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상상과 꿈속에서는 둘의 대화와 서로의 시선과 몸짓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어떨까? 갑자기 받지 않을 수 없는 직장 상사에게 전화가 오고 각종 핸드폰 앱에서 알람 날아들고 알람을 끄고 나니 옆자리에 한 무리의 수다쟁이 아주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이렇게 현실의 삶은 항상 수많은 다른 사건과 장면들이 뒤섞여 있다.
삶은 줄거리가 없다. 그래서 삶은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삶은 줄거리가 있는 편집된 장면들만 짜깁기되어 기억된다. 문제는 이 편집된 기억은 감정이 섞여 있다. 감정은 기억을 변형하고 왜곡시킨다. 진실 혹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건 꿈과 상상에 가깝다. 우리는 감정이 섞인 줄거리가 있는 편집된 기억으로 살아간다. 그럼 우리는 삶을 살았지만 삶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꿈)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 구조 내에서 한정된 수의 뉴런들과 연결들을 통해 저장 용량이 정해져 있기에, 우리 뇌는 기존 정보의 보유와 새 정보를 위한 충분한 공간 확보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 Sweet spot>을 찾아야 한다.”
- 매슈 워커 [왜 우리는 잠을 자야 하는가] 중에서 –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뇌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 뇌의 가능성으로 인류의 문명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다. 이 뇌가 가진 가능성은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와 기억을 적절히 편집하여 그 균형점 sweet spot들을 찾아내는 것을 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이제 인간의 뇌는 AI에 대체될 것이다. 그렇다. AI는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콘텐츠와 창조물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AI는 아직도 각 개별 인간이 원하는 균형점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요즘 영상 편집에 빠져있다. 작가가 무슨 영상 편집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무명작가는 스스로 자신을 홍보해야 한다는 어느 출판사 사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영상으로 알려보고자 한다. 물론 작가가 글을 잘 써야 하는 건 기본이지만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작가도 발견되지 않으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내가 잘 쓴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글을 그리 잘 쓰지 않아도 잘 팔릴 수는 있다. 그건 눈에 자주 띄는 글이다. 보석도 땅속에 묻혀 있으면 보석이 아니다. 큰 가치가 없는 것도 잘 포장하면 팔리는 곳이 시장(Market)이다. 작품은 상품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산업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이 아닌 것은 외면받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팔 수 있어야 글도 계속 쓸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안타깝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인간도 하나의 상품(재화- 몸, 서비스-정신과 육체노동)으로 존재한다.
내려놓기 = 잘라내기 (편집)
요즘 토론하는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서 그것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2~3시간짜리 영상을 몇 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편집의 기본은 내려놓기다. 포기와 체념의 정신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 영상편집을 오래 하면 아마도 내려놓기의 달인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도 퇴고를 하며 첨삭을 하지만 나 같은 경우 퇴고는 보통 삭제도 있지만 첨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초고의 분량이 크게 줄거나 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고는 뼈대만 잡는 경우가 많아서 퇴고 때 오히려 분량이 늘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영상은 완전히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2~3시간짜리 4k 영상은 용량만 해도 20~30GB 정도가 된다. 엄청나다. 편집을 위해 이것을 한 번만 더 재생해도 2~3시간이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AI 영상편집 툴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AI의 발전으로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상당히 좋아져서 영상 편집자들의 시간을 많이 절약시켜 준다.
풀 영상을 영상 편집기에 넣으면 AI가 자동으로 편집을 해준다. 문제는 이 AI가 잘라내고 짜깁기해주는 영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가 봐도 엉성한 느낌이다. 앞에서 말한 Sweet spot를 잘 잘라내어 연결시키는 것이 너무 미흡하다. 그래서 결국 이 작업은 감성과 자신만의 줄거리를 가진 인간이 개입해서 정리를 해줘야만 한다. 내가 촬영 현장의 상황을 모두 다 경험했기에 어느 부분에서 가장 감동 있고 인상적이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AI는 오프라인 현장에 없었다. 모른다. 그저 텍스트로 변환된 음성을 판단할 뿐이다. 오직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으로 해당 텍스트에 해당하는 음성이 섞인 장면들을 잘라낸다. 문제는 음성 인식도 완전히 정확하지 않기에 그 논리성에도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AI가 편집한 영상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결국 내가 그 감성과 인상이 있는 구간들을 잘라내고 붙여 넣으며 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영상편집 툴이 AI로 진화해도 결국 줄거리를 만드는 건 인간의 상상과 기억이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대화와 토론에서 상대의 눈빛과 호응과 표정과 반응을 기억하고 있는 건 바로 나다. AI는 그 미묘한 나와 상대방의 감정 변화와 어감의 변화까지 감지해 낼 수가 없다. 이것이 sweet spot이다. 물론 언젠가는 ai의 음성인식이 이런 감성과 어감에 포함된 비언어적 spot까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듯하다.
물론 인간이 찾아내는 Sweet spot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것이 어찌 보면 개별 인간의 개성을 가진 콘텐츠(글, 이미지, 영상)가 되는 것이다. 그 편집된 기억이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면 기억은 객관성을 띠고 대중성을 가지게 되며 결국 대중의 인기는 부를 가져온다.
인간은 삶 속에서 그 모든 기억들을 만들어 내고 대부분의 기억들은 버려지는 것이다. 인간의 뇌 용량을 GB 혹은 TB로 표시할 수 있을까? 물어보니 최대 2,500TB까지 저장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AI의 답변이다. 물론 이건 물리적이 반도체 칩처럼 정해진 것이 아닌 추정치이며 인간마다 적잖은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왜냐 시냅스의 활성화 수준에 따라서 누군가는 뇌를 복합적으로 쓰지 않아 퇴화되어 시냅스가 적다면 그만큼 뇌 용량도 작아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냅스가 많든 적든 결국 뇌 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24시간을 고화질 4k 비디오 영상으로 저장한다고 하면 무압축일 경우 16TB~30TB로 추정된다. 엄청난 용량이다. 이렇게 인간의 삶 전체를 영상으로 담으면 뇌는 터져버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이라는 상상으로 저장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이고 모든 생명을 가진 동물들이 잠을 자는 이유이다. 뇌 용량의 한계로 잠을 자면서 뇌는 낮 동안 입력된 기억 정보들을 잘라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것은 압축하며 해마 속에 정리해서 저장한다. 그 과정 속에 대부분 장면들은 버려지는 것이다.
내가 2~3시간 영상을 편집해서 2~3분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3시간의 풀 영상이 가진 의미와 2~3분의 편집된 영상이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영상은 선후 좌우 맥락과 비 맥락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일 수 있지만 2~3분은 그것들이 다 잘려 나갔기 때문에 그 기억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편집된 기억은 변형되고 왜곡된 것이며 우리 모두는 변형되고 왜곡된 기억들로 말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기록에 근거한다. 그 기록이 모두가 편집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인간은 진실과 사실과 역사에 근거해서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단지 우리가 믿기 때문에 진실과 사실이 된 것일 수도 있다. 과거 당시의 편집되지 않은 모든 풀 영상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만들어낸 편집된 상상의 기억들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그 편집된 기억이 이어져 이야기가 되고 콘텐츠가 되며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슬프고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역사와 고전과 경전의 이야기들이 현재 우리의 삶에 아주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누가 삶을 Sweet spot들로 연결된 줄거리 있는 기억으로 만들고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는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유일한 활동이 될 것이다. 이건 아직 AI가 하지 못하고 AI가 인간으로부터 계속 학습해야 하는 소진되지 않는 정보이다. 그래서 인류와 AI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줄거리를 만들지 못하는 인간은 AI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인간을 소외시켰다면 현대에는 물질이 인간을 소외시켰고 미래는 AI가 인간을 소외시킬 것이다.
“사물은 우리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오직 우리가 바라보는 그 하나의 면만을 갖는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우리는 현실의 삶에 보이는 모든 면을 다 보고 듣고 기억할 필요가 없다. 결국 우리의 뇌에서 펼쳐지는 줄거리가 있는 하나의 면들을 연결시키는 것으로 나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AI가 통제하고 지배하는 온라인 사회에서는….
당신은 동의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