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서른두 번째- (단편소설)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파괴했다. 이해한다는 것은 사랑을 잊는 것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나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해를 잘못 알고 있었더라. 이해란 누군가가 나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아닌지를 파악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이해(理解)란 이해(利害 :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요 그리고 나는 멀리서 당신을 항상 응원할게요”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더 이상 곁에 둘 수 없었다. 나는 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불가항력적인 상황들로 의해 나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둘의 만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만나온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준 가치관은 그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살아온 시간은 현실의 잔혹함과 냉혹함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잔혹은 견디니 안정이 찾아왔고 냉혹을 참으니 여유가 찾아왔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그것들을 견디고 참는 시간은 또한 그 잔혹함과 냉혹함을 내 안에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들은 내 안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이해라는 도구로 판단하고 그것들을 싹을 틔울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10년 만에 찾아든 사랑이었다. 내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10년 동안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 느낌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냉기를 데워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도 몸이 따뜻했다. 여름에도 어름장 같은 나의 손과는 달리 그의 손은 항상 온기로 가득했고 그의 손이 나의 손을 잡고 나의 몸을 만질 때 나는 그 온기가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온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
"왜요?"
나는 그가 필요했지만 그 필요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정확히는 지금 안정되고 여유 있는 생활에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 현실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의 나의 심적인 필요를 충족해 주는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돈을 지불하면 상품은 온전히 내 것이 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돈으로 소유할 수 있는 건 인간의 몸과 그 몸이 제공하는 서비스일 뿐 그 안에 있는 영혼은 영원히 가질 수가 없다. 그것을 느낄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이 누군가의 몸과 서비스를 계속 찾게 되는 것은 가질 수 없는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 떠나요 잘 지내요”
“잘 가요”
이해한다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한다고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한다고 공유할 수 없다. 이해는 멀리 관중석 앉아서 박수치는 것이고 공감은 무대 위로 올라가서 끌어안는 것이다. 이 모두는 아직 상대가 타인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서는 관계, 즉 삶을 공유하는 관계는 앞의 두 가지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이해와 공감을 넘어서야 비로소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이해와 공감까지 갔지만 그와 삶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이해와 공감은 필요할 때 찾아가서 하면 되는 것이지만 삶의 공유는 이 시공간의 통제가 나의 손에서 벗어난다. 일상의 삶 속으로 누군가가 들어와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함은 삶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해와 공감보다는 난해함과 이질감이 더 많이 가지고 온다는 것을 이미 지난 10여 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경험했다.
그래서 나에게 타인을 이해(理解)한다는 것은 이해(利害)를 판단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다만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나고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건 누구나 다들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이고 내 주변도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당신과 미래를 함께할 준비까지 되지 않았어요”
나는 나의 결정과 그에 따른 행위를 통해 그를 곁에 둘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나의 곁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현재 내가 가진 것과 내가 누리고 있는 것 그리고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를 선택하고 곁에 두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여태껏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쌓아온 것들을 스스로 무너뜨릴 순 없었다. 공든 탑을 자기 스스로 무너뜨릴 자가 있겠는가.
나는 그를 현실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 밖 없다는 그 사실과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그가 나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양자택일의 순간에 직면했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지만 나는 이런 양자택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은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불가피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다.
현실은 오로지 나에게 양자택일의 두 가지의 옵션만 허락했다. Yes or No였다. 나는 언제나 1안, 2안, 3안 그것들도 안될 경우까지 모두 생각해 놓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한두 가지가 빗나가도 또 다른 대안들이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만약 다른 대안들이 모두 빗나가면 또 다른 대안을 준비하는 시간을 버는 대안을 마련해 놓았고 그 시간 동안 또다시 다른 대안들을 강구했다. 끝이 없는 대안들을 계속 만들어 갔다. 그래서 결국엔 그중 어느 한 대안에 얼추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첫 번째 대안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사장은 내가 그런 대안들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만족하는 듯했다.
이런 나의 치밀한 계획과 생각이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지금의 최고 임원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원동력이었다. 사장은 그런 나를 전적으로 신임했고 나는 그의 신임에 수많은 대안들로 보답했다. 그렇게 나는 치밀한 나의 두뇌 회전의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랐다고 믿었다.
“삶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해요?”
“음… 글쎄요, 뭐 잘 먹고 잘 사는 거 아닐까요?”
“음… 그건 삶의 목적은 될 수 있어도 삶의 의미는 될 수 없어요”
“왜요?”
“그럼 모든 사람들이 삶의 의미가 같잖아요”
“같으면 안 되나요?”
“당신은 유일한 존재 아닌가요?”
“그렇죠”
“모순이네요”
“뭐가요?”
“유일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유일하지 않게 살려고 하니까요”
“예?!”
그런데 이상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종잡을 수 없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남자에게 내가 끌리게 된 건 그 남자가 그 종잡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그 뒤에 이어지는 그의 대답과 설명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는 항상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걸 감성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말하더라. 그럼 나는 그걸 반박하며 따지고 들었고 그는 차분하고 온화한 자세로 나의 반박을 다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말로 이해시켜 주었다. 그의 외모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그의 머리는 지극히 비범했다. 평범함 속에 드러나는 비범함은 사람을 끌어당기기 마련이다. 겉으로 비범하고 화려한 것들은 보통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기대 없는 평범함 속에서 드러나는 비범함은 오래 기억되고 계속 찾게 된다. 그래서 그와 만나는 시간은 항상 예상치 못한 반전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 즐거움이란 게 특별한 게 없다. 그냥 산책하고 식사하고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 느끼는 것이었다. 대화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손님~ 저희 카페 마감해야 하는데요”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네요”
“그러게요 얘기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와 함께 있으며 현실의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와 단 둘만 있는 세상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배웠는데 사랑은 잘 모르겠고 결혼하고 아이는 낳았다. 그런데 그 결혼과 아이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과는 더 이상 함께 살지 않았다. 나는 사랑 없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삶을 잘 살아왔다. 사람들의 칭송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이제야 한숨 돌리는 안정되고 여유 있는 삶을 성취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타나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불러왔다. 안정과 여유에 설렘이라는 것이 전에 없던 감정이 더해지니 삶의 안정과 여유 속에 흥미와 기쁨이 더해졌다. 안정과 여유가 계속되니 조금씩 따분함과 권태가 스며들고 있었다.
그가 불러낸 감정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제 아이들은 교복을 혼자 입고 학교에 갈 정도로 컸다. 이제 이전만큼의 보살핌이 필요치 않다는 말이다. 그건 나의 보살핌 전적으로 의지하던 존재가 그것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보살핌의 시간이 사라진 만큼의 여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여유를 즐길 줄 모르는 자에게 생긴 여유는 지루함과 권태로 그 모습을 바꾼다는 것을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권태에서 좀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좀 주세요”
어느 날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바람을 쐬러 간 절에서 불상을 바라보며 남들이 다하는 기도를 했다. 그 지루함과 권태를 채워줄 그 어떤 변화가 필요했다. 나는 그 지루함과 권태를 홀로 견디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소원이 이뤄졌다. 그를 만나고 지루함과 권태가 사라졌다. 삶에 활력을 찾아들었다. 그와 대화하고 함께 걷고 식사하는 시간은 여태껏 다른 누구와 함께 했던 그런 시간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꽃이 시들고 이미 열매를 맺은 고목나무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나는 내가 소나무로 변해버린 줄 알았다. 꽃이 피지 않는. 그게 아니라 계절이 너무 늦게 변하는 다른 별에 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언제나 계절은 바뀌고 봄이 찾아오지만 그 봄이 찾아오는 주기는 사람마다 다른 것뿐인가 보다. 인간은 언제나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살아가니까.
그것이 사랑인 것 같았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사랑의 정의와 부합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떤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아이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 생긴 건 그가 처음이었다.
아이는 사랑 없이도 생기더라. 사랑이 없이 생긴 아이한테 사랑을 배웠다. 하지만 원래 원칙은 서로 사랑하고 아이가 생겨야 맞다. 그리고 받은 사랑을 아이에게 돌려주는 순환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나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컸기 때문일까 아이에게 내가 받은 만큼의 사랑을 베풀었다. 아니 그렇게 생가했다.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할 진 모르겠지만 내 아이들은 만족하는 듯했다. 물론 그것도 내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아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 내 삶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더 강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과 행동을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하더라.
“넌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단다.”
언젠가 세상에 전염병이 돌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고향에서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게 다른 형제들보다 사랑과 관심을 베풀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형제들 중에서 부모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과 신경을 쓰고 있는 건 나였다. 가까이 있지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다른 형제들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나한테서 느꼈다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느끼게 해 주느냐의 방법론적인 문제라면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엄마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내가 먼저 그렇게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 주었다. 아니 가르쳐주었다기보다 엄마의 삶이 그러했다. 나는 그냥 그런 엄마를 옆에서 보며 자랐고 그걸 따라 했다. 그리고 엄마는 항상 일 때문에 바빠서 나와 놀아주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항상 엄마의 일터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보고 놀았다. 엄마가 나를 보고 있지 않았을 뿐. 나는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일이 끝나면 늦은 저녁 포대기에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장가를 불러주고 맛있는 과자를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하루 중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드문 드문 서 있는 시골의 논두렁 길을 1시간씩 걸어야 했지만 엄마는 나를 항상 등에 업고 그 길을 걸었고 나는 그때 엄마 뱃속에서 느꼈던 체온을 느끼며 잠들었다. 그래서 난 엄마가 보살피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어쩌면 지금의 독립심 강하고 당당한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난 그것에 감사했다.
“난 네가 독립심이 강해서 좋아하게 됐는데, 그게 너를 싫어하게 될 이유가 될진 몰랐어. 독립심은 독한 마음의 다른 뜻인지 몰랐던 거야”
전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나를 떠났다. 그땐 사실 잠시 엄마가 잠시 야속하게 느껴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자신의 밥벌이도 못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부모 집에 얹혀 있는 오라버니를 볼 때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지만 오빠는 어려서부터 주변에 친구가 많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난 사람 좋아하면 거지된다는 말을 굳게 믿고 살아왔다. 친구가 많은 것보다 거지가 되는 것이 더 싫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난 항상 엄마 붙어있던 시간 덕분에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냥 내가 바로 살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었더라면 난 아마 나의 아이들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나눠줄 사랑이 없다. 사랑은 카피되는 것이다. 카피할 사랑이 없다면 사랑은 사라진다.
“나 임신했어요”
다시 아이가 생겼다. 이건 사랑이 만든 아이였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도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뱃속에 생긴 아이는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다시 심각한 임신 중독으로 일상이 무너졌다.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래 왔듯이 평소처럼 프로패션널 하게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몸 컨디션이 갈수록 악화되었고 그전에 운동으로 극복하던 우울증이 다시 찾아들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항상 즐겁고 재미있던 그와의 대화도 이젠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회사에 병가까지 내고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누워만 있었다. 이 뱃속의 아이가 나의 모든 삶을 뒤죽박죽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9개월 동안 지속한다는 것은 지옥같이 느껴졌다. 더욱이 여태껏 쌓아온 커리어와 이제 곧 시작할 새로운 비즈니스 프로젝트에 나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사장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너희들은 엄마가 다시 결혼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싫어 절대 안 돼!”
“나도 반대야, 다른 남자 어른이랑 같이 살 순 없어”
아이들에게 지나가듯 넌지시 물었다. 아이들은 이미 나와 전 남편의 모습을 지켜봐 왔다. 전 남편과 함께 했던 마지막 3년간의 동거 기간 아이들은 부부가 아닌 부부의 모습을 여실히 관찰했다. 그래도 그와 난 책임감과 의무감에 아이들에게는 항상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대했지만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냉기와 적대의 기운을 아이들이 모를 리 없었다. 아이들이 눈과 귀로만 보고 듣는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그들이 이미 모두 느껴버렸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들이 반대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질 빌미를 미연해 차단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 또한 결혼과 출산은 내 삶의 계획에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저 심적인 안정과 행복을 얻기 위한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냥 연애를 하며 나의 몸속 호르몬 분비의 변화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 이제 이곳에 오래 머물기 힘들 것 같아”
그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해외이주 노동자였다. 내가 왜 그런 신분의 남자에게 빠져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빠져들고 난 후 알게 된 사실이었다. 뭐 사실 내가 그런 것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만약 알았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던 그런 류의 해외이주 노동자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주자들이 돈벌이와 더 나은 삶을 찾아온다. 그 돈과 삶에 자신을 갈아 넣는다는 사실을 나 또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걸 확신하는 건 나 또한 그런 이민자들 사이에서 그들과 생활하고 대화하며 항상 동질감만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너무도 남달랐고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나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듯했다. 그것은 내가 완전히 모르는 세계라서가 아니었다. 그가 나를 이끌어가는 영역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었다. 만약 지식이었다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말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지적 영역을 초월해 통찰과 영감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그런 류의 대화였다. 그리고 그는 성인의 몸을 가졌고 성인들 앞에서는 그들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아이들 앞에서나 혹은 동물들 혹은 자연 속에서는 마치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나와 단 둘이 있을 때에도 그런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했다.
'바보인가?'
가끔씩 아이처럼 유치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를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와 깊은 대화를 하면 반대로 그가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가진 게 없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그건 내가 패션업계에 몸담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냥 항상 같은 류의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때가 묻어 그 본연의 색을 알 수 없는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하지만 그는 항상 매일 걷기와 수영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옷걸이는 좋았다. 옷걸이가 좋으면 비루한 옷도 핏이 살아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패션산업은 이런 핏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성행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몸 좋고 잘 입는 모델들과 대화하고 일하다 보니 그런 그가 초라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빠져든 것이 나도 신기했다.
“미안해, 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그리고 결혼도 아이들이 원치 않아”
그는 아이를 낳길 원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가정을 일구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 하기 위해 현재의 것들을 놓을 순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심적으로 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실은 둘 다 가질 수 없는 두 갈래의 길 앞에 나를 세워놓았다.
나는 기존의 나를 선택했다. 변화가 불어오던 나의 삶에 그 변화의 바람은 두려움이 더 컸다. 나는 이곳에 온 이후 15년의 세월을 한 직장 그리고 같은 무리와 지인들 사이에서만 살아왔다.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 익숙함이 때론 지루하고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하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여행도 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려 새로운 모임에도 나갔고 그리고 그도 만났다. 하지만 그건 익숙함에 신선함을 더하고자 하는 것이었지 익숙함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그 익숙함의 영역에서 벗어나도록 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함을 벗어나면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익숙함의 밖으로 나를 끌어내려는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아이를 지웠다. 아이를 지우던 그날 그는 하루 종일 나의 곁을 지켰다. 자다가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그가 닦아주었다. 그리고 나를 안아주었다. 아이를 지우고 지나자 임신 중독증이 사라지고 우울증도 조금씩 나아졌다.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다시 달리기도 시작하고 육체적인 활력이 찾아들었다. 다시 냉정과 이성이 찾아들었다. 그 말은 열정과 감성이 사라짐을 의미했다. 아이를 지우고 이별을 예고한 후 그와의 만남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는 예전처럼 항상 밝고 환하게 아이처럼 나를 대했지만 그건 나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 하는 행동임을 알고 있었다.
[나 이제 떠나, 잘 지내~]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공항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나에게 보내왔다. 나는 그때 회의실에서 직원들의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뻗은 테이블에 앉은 직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문자메시지를 보고 샘솟는 감정의 울컥함을 울컥 삼켜버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끄고 여느 때처럼 회의를 진행했다.
나의 삶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또다시 일상이 이어졌다.
나는 그를 이해(理解)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나의 이해(利害)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해는 사랑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