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움에서 필요한 3 가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김종원

by 글짓는 목수

“배움에 있어서 나이는 중요치 않으며, 사랑의 감성이 함께 해야 하며, 항상 최선으로 최고를 지향해야 한다.”

- 글짓는 목수 -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사회는 이제 노인의 기준을 상향조정하고 정년과 은퇴의 시기도 조정하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줄고 노년의 시기가 길어지는 시대에 새로운 사회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길어진 삶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배움을 멈출 수 없다. 배움은 끊임없는 변화를 의미한다. 시대와 사회와 관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배워야 한다. 배움은 언제나 낮은 자세를 취하고 경쟁이 아닌 모두에게서 배울 게 있다는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그리고 최선을 다해 최고를 지향하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런 배움의 자세만이 나와 사회가 함께 공존하며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도서관에 가면 항상 도서관 서고 사이를 산책하는 것은 나만의 독특한 취미생활 중 하나이다. AI와 알고리즘의 통제에서 벗어난 배움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우연히 서고에서 눈에 띈 책을 꺼내 그 자리에서 읽는 것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배움이다. 요즘 같이 모든 정보의 습득과 관심사가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서버에 기록되고 그 기록들이 AI를 학습으로 나를 정의하고 복제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유전자 정보와 나의 온라인 상의 기록들은 언젠가 정말 나와 싱크로율 99.9%의 AI비서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AI가 나를 대신해서 살아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책장 사이

아날로그의 필요성이라고 해야할까? 이런 도서관에서의 나의 비공개 지식의 접근과 습득 경로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것을 기록하고 업로드 하지 않는다면… 그런 점에서 이렇게 독후감을 써서 업로드 했으니 이것도 결국 나의 뇌가 복제될 수 있는 또 다른 소스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자책처럼 모든 독서의 기록(습득정보, 시간, 밑줄, 메모등)노출되진 않는다. 이런 비공개 독서가 즐겁다. 왠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세계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도 도서관을 누비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서고 옆에 서서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거의 다 읽어 버렸다. 간결한 문체가 가독성이 좋다. 가볍게 읽히면서 곳곳에 인상적인 문장들 때문에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알지만 알지 못했던 지혜를 상기시켜 주는 책이다.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작가의 주관적 관념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언어의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언어와 삶의 연관성에 대해 지독하게 파고든 철학자이다. 모든 인간의 역사가 기록에 의해 전승되듯이 우리는 이 언어로서 나를 드러내고 알리며 내가 되어 간다. 그렇게 중요한 언어임에도 우리는 이 언어로 상처받고 고통 받으며 이것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언어(말과 글)를 통한 배움에 끊임없이 힘쓰며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 안에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야 한다고 제언한다.


1. 나이를 잊어라


“독서, 글쓰기등 지적 활동을 할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지 마라. 나이와 전혀 상관없이 하면 되는 거고, 안 하면 못하는 거다. 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 김종원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56장) 중에서 -

"When you engage in intellectual activities such as reading and writing, don't count your age

어른들로부터 종종 ‘배움에는 시기가 있다’는 말을 하는 듣곤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어른은 배움을 중단한 자일 것이다. 그런 어른의 특징은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이제 배울 것이 없어서 가르치기만 한다. 가장 우둔한 어른이다. 많은 어른들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 세대갈등이 만연하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 [잠언 18:12] -


배우지 않으면서 가르치려는 자는 독선적이고 권위적일 수 밖에 없다. 왜냐 배움이란 기본적으로 겸손을 품고 있다. 배움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바로 교만이다. 기독교에서도 교만을 가장 큰 악으로 친다. 절도, 살인, 간음보다도 더 큰 죄악이 바로 이 교만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변화에 둔감해지고 그 둔감함을 감추려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해간다. 권위와 보수적인 태도에 교만이 묻어난다. 만약 가진 것이 많고 지위가 높은 자가 교만해지면 사회는 위험천만해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이 배움에 더욱 힘써야만 한다. 배움만이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 사랑으로 임하라


“뭐든 그 지식을 창조하고, 만든 사람까지 사랑해야, 완벽하게 배울 수 있다. 강연과 책 그리고 모든 그의 텍스트와 언어를 깊이 사랑하라. 사랑의 깊이가 깨달음의 깊이를 결정한다”


- 김종원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56장) 중에서 –


배움에 사랑이 더해지면 아주 오래 기억된다.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의 뇌는 감성을 자극하는 기억을 오래 기억한다. 편도체는 이런 감성을 품을 기억을 해마에 저장한다. 일상의 기계처럼 반복되는 상황은 좀 처럼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서 배움을 잘 찾지 못한다. 감수성이 부족한 탓이기도 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일상 속에서도 감동을 주는 것들을 잘 관찰해서 찾아낸다. 그럼 이건 편도체를 자극할 수 있고 해마에 저장되어 오래도록 나의 기억회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중에 다른 배움과 몰입의 상황 속에서 그 기억이 되살아나 연결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발견과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앎과 삶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삶에서 감동을 얻고 그것이 앎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 감동 중에 최고의 감동이 바로 사랑이다. 인간이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Love each other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 [요한 복음] 13:34 –


왜 모든 종교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지는 이 배움과도 연관되어 있다. 당신이 상대를 사랑의 시선으로 대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 그 안에서 깨닫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외우고 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그건 배움이 아니다. 배움은 기억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기억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사랑의 순간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배움의 순간이 사랑과 함께 했다면 그 배움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며 배우라. 그럼 당신의 배움은 사랑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3. 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


“작은 것을 목표로 삼지 마라. 작은 것에는 우리의 일상을 바꿀 힘이 없다. 물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하든 당장 능력은 없어도, 최고의 퀄리티를 추구하라는 의미다.”


- 김종원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56장) 중에서 –


뭐든 대충대충 시간을 때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차피 시간 만 때우면 돈이 나오는 노동을 하는 자들은 이렇게 자신의 노동을 돈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또한 과거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직장인들은 어차피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대한 대가(돈) 또한 정해져 있다. 물론 성과에 대한 다른 보상도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불확실의 영역이다. 추상적 노동에 길들여진 사람은 노동을 단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돈이 안 되는 노동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태도가 물질만능주의를 세상을 만들었다. 시간은 유한하다. 하지만 돈은 무한하다. 돈(화폐총량)은 지금도 무한복제와 증식을 반복하며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계속 고갈되고 있으며 나의 세포들은 그 시간 속에 노화되며 증식되는 돈을 가져갈 수 있는 시간 또한 줄어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노동시간=돈 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일상을 기계처럼 바꾸어 놓았다. 당신이 무엇을 할때 가장 몰입하고 흥분되며 환희를 느끼는가, 물론 이건 술이나 마약, 쾌락적 유흥은 제외하고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런 건 배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중독이다. 배움의 중독은 성장을 가져오지만 쾌락의 중독은 몰락을 가져올 뿐이다.

Do your best with love

아무리 사소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그런 하찮은 일이라고 할 지라도 당신이 그것을 할 때 환희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해야할 일이다. 그건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가장 위대한 일이다. 모든 일을 세상에 기준에서 생각할 수 없다. 당신은 그것에 임하면서 이것이 나중에 어떤 꿈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그것이 너무 멀고 허황된 것 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방향성이고 지속성의 힘을 가져다 준다. 리얼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이론은 항상 어느 자기 계발서에서도 쉽게 발견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태도이다. 그러니 계속 강조할 수 밖에 없다. 당신이 시작한 사소하지만 당신을 흥분케 하고 즐겁게 하면서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고 또한 그것으로 그들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럼 그건 결국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실현가능성을 따지고 분석하며 정하는 목표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기업과 국가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발전해나가는 방식이다. 인간은 실현가능성만 따져서는 안된다. 추구 가치성을 보고 목표(꿈)을 정해야 한다. 꿈의 실현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노력만으로도 가능하진 않다. 운과 기회가 함께 따라야 한다. 그 운과 기회가 살아서가 아닌 죽어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살아서 자신이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는 것이 꿈이라면 그건 실패한 삶이겠지만 꿈이 내가 아닌 타인과 세상에 그 어떤 선한 영향력과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죽어서 이뤄져도 그 그 삶은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들 때문에 오늘날 지혜와 감동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후자가 아닌 전자의 목표만을 추구하는 것은 오랜 시간 그렇게 세뇌되고 훈련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배움은 그런 의무교육과 세뇌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배운대로 훈련받은대로 가려는 관성의 법칙 때문에 울타리를 열어줘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책 속 인용문 -


진정한 배움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과 인식에서 출발한다. 세상이 끊임없이 던져주는 문제를 풀기에 급급하다. 그 문제가 사라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항상 난이도만 올리고 풀이의 속도를 올리는 것에만 혈안되었다 . 삶이 갈수록 어렵고 힘겹게 여겨지는 이유가 아닐까? 잠시 멈추고 문제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이는 잊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항상 사랑으로 대상을 대하고 생각하며 최고만을 향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김종원


keyword
이전 08화무명과 유명 사이